남편과 얘기하고 여기에 글 올리고 댓글들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정말 바보 호구였구나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아요. 어릴때부터 내가 많이 당하고 살았고 그걸 아는 부모님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구나.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골목대장이었어요. 놀이터가 언니의 활동무대, 목소리 크고 운동도 잘 하고 전 소극적이고 집에서 책읽고 엄마랑 얘기하고 인형놀이 하는게 제일 좋았고요. 자매가 많이 달랐는데 엄마는 저를 참 예뻐 하셨어요. 언니는 엄마 말을 너무 안 들었거던요. 피아노 학원 가라고 보냈는데 매일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방 들고 나가서 놀이터에서 한 시간 신나게 뛰놀다 들어오다가 한 달 만에 잡혔어요. 엄마가 사주신 비싼 미제 어린이 비타민이 있었는데 하루에 한 알만 먹어야 된다고 했는데 언니는 엄마만 나가시면 그걸 과자같이 꺼내 먹었어요. 달고 맛있었거던요. 고등학교때도 가방에 사복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독서실 끊어달라고 하고 단 한 번도 안 가고 놀러 다녔대요. 대학교때는 제가 알바를 많이 해서 용돈이 많았는데요. 저는 무슨 물건을 그렇게 못 찾겠는거예요. 어리버리해서 그런가 싶었어요. 친구들이랑 이대앞에서 예쁜 스웨터 샀는데 아무리 봐도 없어서 관찰력 좋은 언니한테 좀 도와달라고 하면 몇 분만에 찾아다 주면서 만원! 그랬어요. 그 때 만원은 큰돈이었죠. 매일 물건이 없어지고 전 언니한테 찾아달라고 하고 언니는 매번 바로 찾아주고 만원씩 받아갔어요. 혹시 언니가 제 물건들을 숨겨놓고 그러나, 싶은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의심하다니 제가 더 나쁘다고 그 생각은 접고 넘어 갔어요. 이제 생각해보니...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언니가 초등 3학년 조카를 무료 연수 보냈을 때도 귀여운 조카를 저한테 보내준 게 너무 고마워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두 달 동안 아이 캠프 보내고 영어 튜터 붙이고 매일 맛있는 거 해주고 심지어 아이 담임 선생님이 '선생님 선물은 뭐 사다 줄거야, 잘 생각해봐'라고 하셨다길래 코치백 신상 제일 좋은 거 사서 보냈어요. 언니는 말은 안 하지만 고맙다고 생각했겠지요.
이 6억 이야기로 이런 생각들이 꼬꼬무 떠오르는데 괴롭네요. 잘 살아오고 화목한 가족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걸 의심을 가지고 다시 돌아보는게요. 부모님이 제 명의로만 집을 사주신 것도 언니한테 바보같이 다 뺏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나 싶고요. 엄마가 치매신데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가지고 계신 폐물 다 절 주셨어요. 언니랑 나눠달라고 해도 걔는 지 몫 알아서 챙기니까 니가 먼저 갖고가라고 하시고요. 아버지도 집에 있는 도자기나 서화 같은 거 값 나가는 거 갈 때마다 주시면서 언니가 모를 때 얼른 가지고 가라고. 엄마는 심지어 절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해 놓으셨어요. 믿을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요.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네요. 저는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요. 지금의 훈훈한 분위기 끝까지 유지하고 둘이 사이좋게 지내라는 아버지 유지는 지켜야지요. 엄마 돌아가시면 그 때 언니하고 얘기해 보려고요. 지난 번에 언니가 많이 가져갔으니까 이번에는 그러지 말라고요. 그렇게 하고 덮어야 그래도 일종의 해피엔딩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