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서태지 표절설이라는 낭설에 대해

가끔 서태지는 표절꾼이라는 식의 얘기가 인터넷에 떠돕니다.
오늘도 서태지는 사기꾼일 뿐이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표절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단순히 비슷하게 들린다고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듣기에 비슷하니까 표절이라고 한다면
그린데이는 조영남을 표절한 것일 거고
엔카나 데스메탈 같은 건 다 서로가 서로를 표절한 것들이겠죠.

 

전문가들과 음악인들은 서태지의 앨범을 대체로 명반으로 평가하며 호평을 남깁니다. 
반면, 인터넷 악플러들은 표절에 대한 정확한 근거 없이,

(그리고 표절이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도 없이)
'내가 듣기에 비슷하니까 표절이다'라는 주장을 하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뒤늦게 밀리 바닐리의 음악을 접하고서 (당시 빌보드 1위를 할 정도로 유명한 그룹이었는데 말이죠)
마치 감춰진 진실을 알아낸 듯이 "서태지가 표절했다"며 호들갑을 떱니다. 
이건 "딱 보면 지구는 평평하잖아. 과학자들을 믿지 마. 내 느낌을 믿어" "어떻게 동물이 진화를 할 수 있냐. 과학은 이론일 뿐이고 내 느낌이 정확해"라는 수준의 말이죠.

 

표절꾼인데 인터넷이 없어서 안 걸렸을 뿐이라는 황당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표절곡이 나와도 인터넷이 없어서 몰랐던 시절이 아니라
표절곡을 잡아내고 조리돌림하는 게 국민스포츠였던 시절이었습니다.
PC통신에서는 별별 곡들의 표절 의혹을 갖고 불타올랐고
그걸 언론사가 받아서 TV뉴스나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일이 흔하게 있었죠.

 

법원까지 갈 것도 없이 방송국에서 자체적인 표절 심의기구를 만들어서 잡아내기도 하고
룰라 김민종 같은 경우는 곡이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 속전속결로 걸려서 온 나라가 떠들썩했고
가수들이 자살소동을 하고 퇴출되고 은퇴하고
이승환 신해철 같은 사람들이 표절 잡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좀 하라고 인터뷰를 하던 시기였어요.

 

외국인들 중에도 슬레이어, 아이언 메이든, 메탈리카 등 수많은 밴드들 표절꾼이라고 열심히 전도하는 부류들이 있어요.
실제로 표절이면 소송이 걸리고 배상금이든 합의금이든 내고 작곡가명도 병기하는 등 조치가 취해지죠.
레드 제플린, 너바나, 마이클 잭슨, 비틀즈, 오아시스 등등의 쟁쟁한 음악인들도 표절 시비는 꽤 있고, 
실제로 표절 판정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태지 곡 중에 표절이 있었으면 벌써 소송이 걸리고 합의하든 배상을 하든 했겠죠.
그렇지도 않은데 그런 밑도끝도 없는 주장을 하는 건 일종의 음모론이죠.
그가 전세계의 음악인들과 법조인들을 매수라도 했을까요.


서태지에 대해서는 유독 헛소문이 많아요. 표절설 이외에도 사탄설 임신설 게이설 등.
음모론자들의 양상은 비슷합니다.
소수의 자기들만이 진실을 알고 있고 남들은 속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증거들은 배척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강화해주는 것 같은 것들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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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는 서태지는 대중문화에 있어 독립투사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정태춘, 김민기 같은 양반들도 그렇고요)
그의 반대편에는 기득권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들이 퍼뜨린 루머들이 표절설과 같은 헛소문에 자양분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합니다.

 

서태지가 '문화대통령'이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호칭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음악적 성취뿐만 아니라 자본, 국가권력, 방송사로부터 독립을 이뤄낸 것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조폭들이 운영하기도 하는 음반사, 기획사 시스템에서 음악인들이 제 몫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조용필이 자기 곡에 대한 권리가 없었다는 유명한 얘기처럼,
수익은 회사가 다 가져가고 음악인들에게는 용돈이나 쥐어주는 정도인 경우가 많았죠.
서태지는 이런 구조를 거부하고 법적 투쟁 등 자신의 수익과 권리를 지킬 수 있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수십년동안 '금지곡' 같은 것으로 음악인들을 검열해왔는데 
정태춘 등의 음악인들이 이에 맞서왔었고
서태지도 3,4집 활동시기에는 공윤으로 대표되는 이런 국가권력의 검열에 맞선 끝에 
마침내 공윤이 폐지되기에 이르렀죠. 

 

또한 서태지 이전까지 방송국과 대중음악인의 관계는 갑과 을이었습니다.
음악 활동을 위해서는 음악인들이 방송국에서 하라는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까라면 까고...
서태지는 그런 관행에 맞서 음악인이 방송사와 독립적으로 활동하거나 
혹은 방송사와 대등하게 협상을 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서태지의 투쟁 등으로 자본, 국가권력, 방송사로부터 대중문화인들이 독립하지 못했다면, 
이전의 후진적 구조가 계속되었을 것이며, 
오늘날 K-POP의 성공은 그와 같은 선배 음악인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겠지요.

 

그에 대한 음모론적인 비하는 이런 변화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된 면도 크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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