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이렇게 계속 살아야한다니 막막하네요.

저는 결혼 20년이 가까워 오는데 남편이랑 있는게 

아직도 너무 불편하고 싫을 때가 많아요. 

남편이 돈을 안버냐 가정폭력이 있냐 주사가 있냐 담배를 피냐 도박을 하냐 모두 아니고요 외도는? 모르죠. 하는지 안하는지 저는 알 길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1년의 시간이면 평균 9개월 이상? 같이 있을 때 이런 패턴이에요. 

퇴근하면서 전화함. "지금 퇴근해 저녁메뉴 모야?" 대답 듣고 뚝 끊음. 나는 밥 차려둠. 신발 벗고 들어옴. "안녕?" 화장실 들렀다가 손씻고 화장실에서 식탁에 오는 세 걸음 정도에도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고 이동. 앉아서 핸드폰에 시선 고정하고 밥먹기 시작. 뭐 중요한 거 보나 보면 대부분 쇼츠같은 거임. 다 먹으면 바로 티비 앞 소파로 옮겨앉음. 티비 보면서 핸드폰으로 게임하거나 sns 구경함. 애들이랑 대화라도 좀 하거나 아니면 시끄러우니까 티비소리라도 줄여라 하니까 블루투스 헤드셋 사서 끼고 혼자 거실 독차지. 

 

밤에 잘 땐 내가 안방 침대에 자면 베개 들고 거실 나와서 아무데서나 굴러다니며 잠. 내가 거실 소파에 티비라도 보려고 앉아있으면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서 문닫고 잠. 마치 침대 내가 선점하니 넌 들어오지 마 라는 제스쳐처럼. 

 

아침. 알람 들으면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한 삼십분 보내고 나와서 내가 애들 아침 차려주느라 부엌과 식탁 왔다갔다하는 동안 안방 드레스룸에서 자기 옷만 후다닥 입고 틀어박혀 앉아서 핸드폰함. 하루 일정을 보는지 뭐하는지 알길은 없음. 애들한테 빨리 나가자고 윽박지른 뒤 거의 눈 마주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나감. 

 

영화도 혼자 보고 운동도 혼자 하고 뭘 같이 하자거나 그러는 법이 거의 없음. 나 영화보러 갈거임. 운동하러 갈거임. 애 교육은 이렇게 할거임. 집 매매는 어떻게 할거임. 무조건 선결정 후통보. 내가 낮에 뭘 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먼저 궁금해하거나 배려하거나 신경쓰는 일도 없음. 같이 전철이나 버스 타도 옆자리에 안앉음. 일부러 저러나 싶을만큼 따로 뚝 떨어져 앉음. 네 가족이 걸어가면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서 먼저 걸어감.

 

신혼 때부터 한결같이 이러고 이유는 모르지만 어쩌다가 자기 기분 좋은 주간에는 밥상 앞에서 잘먹겠습니다~ 하거나 아침에 눈뜨고 잘자떠요? 하거나 말수가 좀 많아지는데 그런 날은 한달이면 4-5일 있을까말까 함. 아닌 날은 한 집에서 눈도 거의 안마주치고 차려놓은 밥 먹고 눈뜨면 핸드폰 보고. 눈감을  때까지 핸드폰보고. 뭔가 일상의 톤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으니 남편이 기분이 좋을 때도 솔직히 찜찜하고 왜 저러나 싶고 별로 받아주고 싶지가 않음. 뭐가 기분이 나쁘면 이러저러해서 나쁘다 말을 하든가. 이런 생활을 참다참다 폭발해서 뭐라고 한마디하면 역반하장 왜 짜증을 부리는지 모르겠다며 말도 하고싶지 않다함(언젠 했냐) 

 

서로 죽고못살아 결혼한 것도 아니고 어쩌다 연애를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이 끝이 결혼이어야 했다, 서른 넘어 다시 연애하는 것도 너무나 귀찮다, 인간으로서 나이 먹었으니 결혼하고 애는 낳아봐야지 이런 마음이었다고 해도. 그저 육아동반자로서 의리 / 동거인으로서 다정함 살뜰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는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너는 그걸 살림이라고 하냐? 고 맞대응하는데는 정말 질려버림. 너는 살림도 잘 못하면서 나한테 다정함을 바라냐는 논리에 너무 충겯받음. 자기가 나에게서 받아야하는 것은 결국 가사도우미서비스라는 인식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 없으므로. 서로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고 그런 추상적 관계에 대해서는 개나 줘 오글거려 그런게 어딨어 라는 스텐스. 백날 말해도 이해를 못하고 못알아듣고 자기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며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함. 나 정도면 훌륭하지 라는 인식이 매우 강함. 내가 저렇게 행동하는 남편한테 대단한 애정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구차하게 더이상 같이 시간보내자고 하고싶지도 않고, 한 번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하면 반드시 다투게 되고 다툴 때마다 오만정이 떨어져서 회복이 힘들어 더 이상 대화를 먼저 시작하지 않음. 이딴 식으로 행동하면서 요즘 나는솔로 돌싱클럽? 이런걸 하도 몰아보길래 모야 다시 솔로가 되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돌아오는 답이 "뭘. 귀찮아" 

 

날씨가 춥네 덥네에서부터 아이들 교육 노후 경제에 대해 아무런 대화를 제대로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음. 이야기를 꺼내면 몰라? 모르겠는데? 하고 입을 막음. 하다못해 얼마전 사춘기 아이가 이성친구를 사귀는 거 같다고 말했는데도 반응은 헐. 이 끝임. 가정이 산으로 가고 있는게 느껴짐. 아이 둘은 정망 내성적이고 친구도 거의 못사귀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의지박약이고 핸드폰에 고개 처박고 살고 있음. 아이들마저 어쩌다 함께 대중교통 이용하면 따로 떨어져 앉는걸 당연하게 여김. 가족간의 대화 없음. 성적은 둘째치고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음. 이런 고민 진지하게 얘기하면 내 탓이냐며 화를 벌컥 내거나 내가 유난이어서 애들이 압박을 느끼는 거라고 내 탓을 하거나 정상적 대화가 되지 않음. 그냥 공동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음. 

 

위에 썼듯이 남편이 자기 기분 좋을 때 가뭄에 콩나듯 자기 일상을 말할 때가 있는데 언젠가 한 번은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서 누가 이혼하고 누가 이혼했다.. 나는 자기랑 사이가 이렇게 좋은데 주변에서 이런 친구들 보니 딱하더라. 라고 말함... 벌써 몇 년전인데 하도 기가 막혀서 잊혀지지가 않음. 사이가 좋다고?? 사이가??? 그 얘기를 듣고 분노가 차오르는데 대꾸하지 않았음. 

 

지인들한테 하소연하기도 그렇고 친정에 말하기도 엄마한테 미안하고 남편들이 그렇게 뭘 같이 하고싶어한다고 귀찮다는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하려니 내 꼴이 우습고. 우연히 가벼운 상담 받으러 갔더니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걱정되는 눈빛으로 나를 보심. 

 

어디까지나 끌려와서 결혼한 것도 아니고 내 선택이고, 나도 모자란 부분이 많은 걸 남편도 참고 감수하고 있을테니 대부분의 날들을 참고 사는데, 이런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면 더더더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하기 싫음. 앞으로 이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야한다고? 까마득해지고 그럼 또 댓글 뻔하게 달리겠지 왜 그러고 사냐 한심하다 경제력 없으니까 이혼 못하는 거 아니냐 어쩌고. 뭐 것도 맞는 말이고, 경제력이고 모고 이 상황을 개선할 의지와 기력 자체가 없음. 어쩌라고. 나도 너무 귀찮거든. 정말 이생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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