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물 한 잔으로 생긴 트라우마

그 애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였어요

절친은 아니었고 그 애는  친구가 저와 또다른 한명 둘뿐이었어요. 30대까지 각자 다른 지역에  살면서도

종종 연락이와서 통화도하고 가끔 만났어요

좀 4차원이었고 물질에 인색하다는건 알고있었어요

고등때는 집이 어려워서 그런가보다했고

성인이되고 직장생활하면서 만나도 대부분은 제가 비용을 부담했어요.  저도 부유한건 아니었어요. 반복되는 제가 돈을 내는 상황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1년에 한두번 만나는 거였고 저의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짝꿍이었기에 추억을 함께한 친구라 생각해서 돈에 대한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각자 타지역에 살다가 그 친구가 사는 지역에 일이 있어 가게됐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더군요

친구가 혼자 살고 있었어요. 부모님은 시골에 가 계셨구요.

저녁을 밖에서 함께 먹고 제가 계산을 했어요

아침에 먹을게 없다고 장을 보러 가자 하더군요

마트에 가서 반찬거리를 조금 사고 그 친구가 계산을 했어요. 

집에 가서 목이 말라 물을 좀 달라하니 '없어'라고 

딱 한마디 하길래

얼굴을 쳐다봤는데 다른 곳을 보며 시선을 피하고 물을 끓여주거나 대체할 어떤 음료를 줄 생각이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좀 더 대화를 나누고 목이 마른채로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에 나가니 그 애가

소파에 앉아서 유리컵에 물을 천천히 마시고 있더군요

그 물은 냉장고에서 갓 꺼낸것처럼 차가워서 컵에 이슬이 맺혀있었고 약초를 다린 물인지 차를 끓인 물인지 보리차와는 다른 색깔이었어요, 분명한 건 아침에 끓인 물은 아니었다는 거죠

저는 그 순간 그 친구에게 물 없다며? 라고 물어보는 게 의미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친구는 태연하게 천천히 그 물을 한 컵 다 마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리고 저에게 물을 권하지도 않았어요

빨리 가야 한다고 나왔고 그 이후로 저는 그 친구 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당시 저는 결혼을 한지 1 년 정도 되었던 때였고

제 결혼식에 그 친구가 와서 축의금을 3만원 했었어요

2시간 거리 타지역 결혼식에 그 친구가 왔었기에 저는 차비로 5만원을 주었어요

그 물 사건이 있은 후 2년쯤 후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연락을 했고 제 결혼식에 왔었기에 저도 3시간 거리의 그 친구 결혼식에 갔어요.

그 뜨거웠던 한여름  8월 지하철에서 15분을 걸어 예식장이 아닌 찾기도 힘든 어떤 회관에서 하는 결혼 식에 갔고 축의금을 5만원 했어요. 그 회관 지하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식사 뜨거운 갈비탕이 나오더군요.

제 결혼식 때도 그 친구의 결혼식 때도 갈비탕을 하객들 식사로 대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죠. 다 부페였으니까요. 새벽부터 빈속에 나가서 땡볕에 길 찾느라 헤매고 허기도 지고 배도 고팠지만 너무 지치고 더워서 뜨거운 갈비탕을 먹을 수가 없더군요. 심지어 그 지하식당 안이 냉방이 되지 않아 얼마나 덥고 지하 특유의 냄새가 나던지요.

축하한다고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역시 차비 따위는 주지 않더군요. 

가끔 그 친구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저한테 전화를 했고 저는 무덤덤하게 그 친구의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는 친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냥 고등때  같은 반 아이 정도의 존재였죠

그 애는 친구가 없었고 유일하게 고등학교 때 친구들 중에서 저만 연락하는 사이었어요

그러다 그 친구가 임신을 했다고 연락이 왔고 출산이 다가올 즈음에는 저희 아이가 쓰던 유모차를 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출산을 했을 때 아이 돌 이었을 때도 내복 한벌 사주지 않았는데 당당하게 유모차를 달라고 하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저도 당당하게 거절을 했어요

아니 나 이 유모차 비싼 거라서 중고거래로 판매할 거야

라구요

그 이후로도 드문드문 연락은 왔지만 제가 잘 받지 않았고 지금은 번호를 바꾸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연락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가끔 아침에 일어나서 갈증이 심하게 나는 날

그 아이가 생각이 나요

 그 아이가 소파에 앉아

태연하게 유리컵에 그 정체 모를 물을 마시던 모습이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는데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이런 게 트라우마일까요

저의 절친도 아니었고 죽고 못사는 친구도 아니었는데

전 그날의 일이 너무 충격이었던 거 같아요

그깟 물 하나가 뭐라고

끓인 물 주는 게 아까웠으면 그 물의 정체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수돗물이라도 좀 끓여주지....

앞으로 살면서 아침에 눈 떠서 목마른 날

더 이상 그 아이가 생각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아이의 물 마시던 모습이 제 기억에서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두 번 그런 날이 있어요

오늘 아침 늦잠을 자고 심하게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면서 그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네요

제 절친들은 모두 자기껄 아낌없이 퍼주는 친구들이라서 우리끼리는 늘 계산이 없었어요

누가 돈을 쓰든 중요하지 않았고

받으면 그 배로 더 해주려고 하는 사이예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베푸는 스타일이이구요

그 애가 저에게 중요한 존재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문득 그 물 사건이 생각이 나는 건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했던

 존재였기 때문이겠죠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가끔 생각이 나요

특히나 갈증이 나는 아침에 생각이 나면 기분이 별로네요

어떻게 하면 그 물 사건을 잊을 수 있을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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