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하숙비 안 내는 하숙생 남편

또 한 판 했네요. 이제는 싸울 애정도 에너지도 안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밥만 먹고 가족들과 말도 안 섞고 언제나 컴 앞에만 앉아있고 언제나 너무 바빠서 설거지 한번 못 하세요. 제가 같은 분야에 있어서 뭘 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아는데도요. 저랑은 투명인간같이 지낸지 여러해 되었어요. 당연히 각방 쓰고 서로 필요한 거 있으면 잠깐 얘기하고 주로 아이 이야기, 아니면 제가 따다 주는 일 이야기고요. 12년 전 명퇴당한 다음 계속 이러네요. 우울증인지. 남편은 아직도 자기가 짤렸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나봐요.

 

쇼윈도 부부로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벌어오는 돈과 제가 친정에서 받은 유산으로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는데, 저는요, 이제와서 남편이 돈을 벌어오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요, 따뜻한 말 한마디, 고맙네, 여보가 진짜 애쓰네, 자기 없었으면 나 많이 힘들었을것 같애, 고마워 사랑해. 그런 걸 바라는 마음 인가봐요. 다른 것도 다 안 되면 립서비스라도. 얼마전에 여행하다 예쁜 선물 가게에 들어갔는데요 어디서 돈이 났는지 여자 동료들 선물을 고르더라고요. 선물을 하고 싶다니 저도 도왔어요. 이것보단 이게 낫겠다고요. 근데, 한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하니, 저는요? 저도 거기서 갖고 싶은 반지가 있어서 하나 샀어요. 관심도 없고 당연히 돈도 제가 다 냈고요. 

 

남들은 금요일이 불탄다고 해서 밥만 먹고 또 서재로 쌩 달려가는 남편한테 여보, 우리 영화라도 하나 볼까 했다가 싸움이 났네요. 도대체 뭐가 보고 싶어서 나까지 같이 앉아있어야 하냐고, 너는 영화 틀면 조는데 내가 왜 그걸 앉아서 다 봐야 되냐고요. 이 정도면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진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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