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인생에 꽃길만 걷지 말길

아이 둘 낳고 가족 전체가 해외에 1-2년 체류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4계절 태양 나라에서 휴양하듯이 보내려했으나

후에, 생각했던 곳과 거리 있는 이름없는 작은 타운으로 결정되었다.

기후를 검색해보니 우울했다.

우기가 거의 일년의 3분의 1.

매우 실망한 마음으로 갔던 변두리 마을에서의 생활.

소문대로 우기는 길었으나

뜻밖에에 초록의 생명력이 엄청난 곳이어서

미대륙 전국 각지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내는 곳이었다.

 

잠시 여행으로 들른 해가 4계절 내내 내리쬐던 어떤 도시.

누렇게 뜬 나무 잎사귀와 말라가던 잔듸.

(딱 식물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각 지역마다 다 장단점은 있음)

아하..인생에 우기가 필요하구나.

 

다시 돌아와서 그 우기 긴 도시에서 사는데

바람이 좀 세게 분 날(한국 여름 태풍보다 훨 약)

쉽게 나무들이 넘어가고 뿌리가 뽑히고..난리.

지역 주민 얘기 들어보니

여기는 토양이 좋고, 비도 많고 , 기후도 마일드해서

식물 성장에 최상인데

그렇다 보니 오히려 뿌리가 깊이 뿌리내릴 필요가 없단다. 

수원을 찾아 뿌리가 깊이 여기저기 헤맬필요가 없다보니

야트마한 곳에 뿌리 대충 내려 쑥쑥 자라던 나무는

(나무 입장에서는 축복받은 입지)

조금만 바람이 불면 잡아주질 못해

쑹덩 뽑히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겨울엔 눈이 거의 안오는데

한 번 폭설 내린적 . 여기에 대비가 안되있던 나무들.

가지에 눈과 비가 섞여 프로즌 겨울왕국처럼 보석이 주렁주렁.

그날 밤새도록 나는 소리,

뚝 촤르르르르 뚝 촤르르르르

약한 가지가 눈얼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 부러진 다음에 전체가 촤르르르...하면서 넘어가는 소리

아침에 일어나니 도시 대마비...

 

인생이 양광찬란한 일만 계속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수원 바로 곁에 자리잡아 갈증날 새도 없이 물 빨대 꽂을 수 있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물어도 봤다가, 물에 쓸려도 봤다가, 바람에도 휘청거리며

살아남을 때 내공이 깊어지는 나무들.

생노병사, 희노애락이 있다는 건

내 인생에 나이테와 뿌리깊음을 더하는 축복의 기회였더라는 걸

그때 쬐금 배웠다. 

 

나도 한때는 왜 나만 이리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고

더러운 꼴 많이 봐야할까 억울했다

인생의 사계절을 고루 경험한다는게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해준다고 느껴서 지금은

아무 원망이 없다. 

참 마음 졸이며 살았다 싶었는데

그 덕에 여러 감정을 홀로그램처럼 다 맛봤고

그 덕에 정서적으로 유기방짜 수저 정도...되는 듯하다.

좀 손은 가나,

나름 멋도 있고, 의미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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