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타인의 친절에 힘입어 살아요.

남미 여행을 몇 번 했는데, 혼자 간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어요. 

 

호르헤 차베스 공항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다른 비행기를 타기 전에 좀 어슬렁 거리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어떤 남성분이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걸어왔어요. 너는 비행기도 탈 수 있는 강아지구나. 우리 개는 너무 커서 비행기에 태울 생각도 못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는데, 이 강아지가 갑자기 제 발목을 물었어요. 공항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너무 당황에서 어버버 하고 있는데, 이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다급히 뭐라 하는데, 전 여행용 스페인어만 간신히 하는 사람이어서 영어로 말하니 이 아저씨는 답답하다는듯이 또 급하게 말하다가 저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 그냥 그대로 가버리더라고요. 

 

주위에서 상황을 보던 사람들도 놀란 눈이지만 어찌 하지는 않고 있는데, 젊은 청년이 다가왔어요. 저에게 괜찮냐 묻더니 같이 물린 곳을 확인하고, -다행히 피가 살짝 나는 정도로 얕게 물렸어요. - 그 아저씨에게 뛰어가 상황이 이러저러 하다고 얘기하더군요.  아저씨와 청년이 저에게 함께 와서 그 이후로는 그 청년이 통역을 해주었어요. 저는 생각도 못했는데, 청년이 아저씨에게 광견병 주사 확인서를 보여 달라고 하고, 아저씨는 모든 서류를 보여주며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괜찮으면 자기 비행기 수속하는 줄에서 얘기할 수 있냐고 몹시 급박한 상황이라고 했어요. 

 

사정을 알고보니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강아지를 맡길 사람도 없고 그래서 공항에 데려올 수 밖에 없었다고. 지금 비행기를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해서 그러면 어머니 임종을 놓칠 수도 있어서 조금 전에 제가 못알아 듣는 것 같은데도 자기말만 하고 갈 수 밖에 없었다고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괜찮다고 조심히 잘 가시라고 했어요. 

그리고 괜찮다는 청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서 모닝 세트 사주면서 정말 고맙다고 했어요. 

이 캐나다 청년이 아니었으면 저는 여행 기간 내내 불안했을테고, 상황이 급박한 사람의 사정도 모른 채, 나쁜 x 하면서 욕을 했을지도 몰라요. 

 

이것은 제게 조금 큰 일이었지만 살면서 얼마나 많은 친절을 받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결혼 전에는 거의 혼자 여행을 다녔는데,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한국인에게도 또 외국인에게도 끊임없이 친절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큰 두려움 없이 여행을 잘 다녔고, 지금 해외에 살면서도 큰 무리가 없어요. 

학생 때 부족하게 여행할 때, 이런 분들이 맥주 한 잔 사서 툭툭 건내셨어요. 그래서 저와 남편도 같이 여행하다가 돈 아끼면서 여행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맥주 한 잔 씩 사서 건내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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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저희 길 건너 앞집 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저와 남편 둘 다 목공이 취미라 웬만한 것들은 둘이 뚝딱뚝딱 만들며 살아요. 지금 집에 이사와서 이것저것 수리하면서 노는데, 앞집 할아버지 보시기에 귀여웠나 봐요. 이것으로 하면 훨씬 쉽다고 저희가 갖고 있지 않은 비싼 공구들 빌려주시고 그러면서 친해졌어요. 연세 많은 두 분만 적적하게 지내셨는데,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어요. 자녀분들이 자주 오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저희가 장도 봐 드리고, 비상용으로 앞집 열쇠도 가지고 있었네요. 할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면 경찰은 할아버지를 못찾아도 남편과 저 그리고 우리 개가 할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왔어요. 

 

위의 글의 원글님이 댓글에 이렇게 쓰셨어요. 

"저도 연세드신 부모님이 멀리 계셔서.. 신경이 쓰이거든요"

저 이 마음 정말 잘 알아요. 멀리 계시는 엄마에게는 자식인 제가 못하는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그러니 저는 제가 가까이 사시는 어른들에게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요. 막연하지만 이런 믿음 비슷한 것이 멀리 있는 자식에게는 그나마 위로가 되요. 

 

그리고 이 공간에서도 친절함을 놓치지 않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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