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전에 과외했던 고1 남학생이

몇 년 전 과외했던 고1 남학생이

완전 귀남이 과인 아이였어요.

누나 한 명 있는 학생인데

그 누나 가르칠 땐 어머님이 참 쿨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남동생을 이어서 가르치게 되니, 웬걸

완전히 다른 어머님이시더군요.

제가 봤던 단호함과 정확함은 없고

아들이 하자는 대로 쩔쩔매며 다 끌려다니고 다 들어 주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어쨌든. 그 애가 고등 입학을 하고 

남녀공학에 다니게 되면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었나 봐요.

저한테 속마음도 말하고 조언도 구해 가며 그냥 그 학생이랑 조금씩 친해지나 싶던 어느 날

 

애가 과외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안 와요.

전화해도 안 받더니 겨우 연락이 됐는데 노래방이래요.

 

뭐지? 하고 사유를 물으니

그 여자애한테 고백했는데 거절당해서 자기는 오늘

수업 들을 기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은 나와서 기다리는데 미리 연락도 없이 멋대로 안 오는 건 아니지~ 라는 말을 하려는데

 

제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지도 않아요. 

연락 안 하고 안 받을 땐 언제고, 저랑 연결이 되니 그때부턴 하소연하려고 들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더럽다, 거지같다 이러면서

 

그때 정말 깜짝 놀랐던 건요.

얘가 딱 그러는 거예요.

 

아~ 씨 기분 너무 나쁘다 이러면서,

"저 이 기분 어떡하죠? ...때릴까요?"

 

자기를 거절한 그 여자애를 찾아가 때리고 싶다는 거였어요.

 

 

아니... 거절을 당할 수도 있는 거지

어떻게 자기가 좋아했던 대상을 때리겠다는 생각이 가능하지????

저는 너무 놀랐고 어이없었는데

 

그 후...

그 전에는 들어본 적 없던(적어도 저는요)

여자를 짝사랑하다 흉기로 해친 사건, 죽인 사건들이 아주 꾸준히도 보도되더군요. 처음에는 너무 놀라웠으나 갈수록 '또야' 싶던 그 사건들.

(혹시나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싶어 말해 두자면

그 학생은 그냥 고딩으로 학교 다니고 있었을 거고 그 사건들과는 무관합니다.

그러나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문득문득 그 애 생각이 났던 거죠.)

 

'나를 거절한 너를 해치고 싶다'는 끔찍한 사고 회로의 소유자가 한 명이 아니란 말이야?

이렇게나 여럿이 있단 말이야...? 하는 걸 목격하게 되는 느낌이었어요.

 

이유가 뭘까, 어떻게 하면 인간이

그런 식으로 생각이 이어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곤 했는데...

 

저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 유지했던 그 어머님을 크게 뭐라 하고 싶진 않아요.

그러나...

 

거절의 경험, 실패의 경험을 가르쳐 가며 아이를 키웠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그걸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경우,

여러 곳에서 문제가 생겨요.

거기에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는 단순무식함과 신체적 체력적 우월성을 갖추는 경우... 사회에서는 약자를 향한 폭탄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고 봅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울분을 토하는 것 같던 "때릴까요?"

 

 

...거절했다고 해서 때리고 싶다니...!

...

 

 

 

 

 

(그 날 저는 그 아이에게 좀 강하게 뭐라고 했고

때릴 생각 말고 수업에 당장 오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을까요 ㅎㅎ

 

그 애는 수업에 나타나지 않았고

몇 년 이어오던 과외 수업은 그 날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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