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목련나무 피던 집에 살던 소년 2

 

 

어릴때 처럼 청아하니 예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 친구만의 쌀쌀맞은 매력이 있었다

 

외골수적인 면이 있었고 고생하고 자라지 않은 표가 났다.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너그러운 면이 없었다. 스무살짜리의 패기와 자기만의 고집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약했다.

 

 

나약하고 어두웠다. 그러면서 매력이 있었다. 어릴 때보다 부드러운 것 같기도 했지만

 

여전히 차갑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나는 가끔 저 애는 다 가졌는데 왜 저렇게 행복해보이지

 

않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다 가졌는데. 이제는 좋은 학교까지. 모두 다 가졌는데 왜 저렇게 행복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무렵에 우리는 가끔 전화통화를 했다. 그 때는 핸드폰이 없었다. 늦은 시간에 전화가 걸려오면

 

전화기를 방에 가져와서 통화를 했다.  늦은 시간 가족들이 다 자고 있을 때 아주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럴 때는 제법 친해진 것 같다가도 만나면

 

또 낯설었다. 

 

 

 

 

친구들은 자주 어울렸다. 형편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몹시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 친구가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여전히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쌀쌀맞고

 

그리고 멋있었다. 그 친구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몇 있고 또 그 친구도 누구를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누굴까.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그 친구가 내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 애는 지적이야. 나는 그 말을 전해들었다. 그런 칭찬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더구나 비슷한 나이의 남자에게 그런 칭찬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름답거나 예쁘지

 

않았으므로 그런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그 말을 생각했다.

 

 

그 말을 생각하면 자랑스러웠다.

 

 

 

나는 그 칭찬을 오래 기억했다.  그 애는 지적이야. 우울한 날 그 말을 떠올리면 위로가 되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뿔뿔히 흩어져 자기의 길을 갔다. 더이상 동창회도 없었고 더 이상 만남도 없었다.

 

 

친구는 휴학을 하고 고시공부를 위해 서울로 갔다. 

 

 

모두 잊었고 잊혀졌고 스무살 후반의 두려운 삶이 시작되었다. 힘든 날들이 지나갔다

 

 

친구의 집은 없어졌고 목련나무도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높은 빌딩이 들어왔다.

 

동네가 달라졌다. 동네는 번화가가 되었다. 나도 그 동네를 떠나왔다.

 

 

그 동네에는 더이상 친구도 목련나무도 아무도 살지 않았다.

 

 

 

어린시절은 끝이 났고 스무살도 끝이 났다. 우리는 정말 어른이 되었고 삶은 고단했고

 

 

고비고비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다시 동창회였다. 우리는 마흔둘이었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흘러갈 거라는 것을 스무살에는

 

몰랐다.

 

 

 

스무살의 경주가 있었다. 봄이었고 4월이었고 아이들은 막 스무살이 되었다.

 

 

남자친구들은 어른들이 입는 양복쟈켓같은 옷을 입었고

 

여자친구들은 핑크색 립스틱을 바르고 핸드백을 들었다.

 

 

다들 어색하고 어수선하고 그리고 푸르고 예뻤다.

 

봄의 경주가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지 스무살은 처음 알았다.

 

 

종일 경주를 걷고 잔디밭에서 처음 소주를 마셨다. 모두들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소주를 마시고 올려다본 하늘이 빙글빙글 돌았다. 스무살이었다.

 

 

 

 

어떤 중년남자가 들어왔다. 나는 그 남자가 내 앞에 다 와도 몰랐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중년남자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중년남자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시간이 지나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갔다. 세월이 우리를 지나 흘러갔다.

 

 

청아한 목소리로 교실 뒤 벽을 바라보며 등대지기를 부르던 소년이 아니었다

 

 

경주에서 얻어탄 짐칸의 트럭에 앉아 빙긋 웃던 스무살이 아니었다

 

 

그 애는 지적이야 하고 어느 술자리에선가 내 이야기를 해 주었다던 그 친구가 아니었다

 

 

예쁘고 차갑고 쌀쌀맞고 왠지 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어린아이는 없었다.

 

 

 

나는 중년남자가 그 친구인 것을 알았다.

 

 

세월이 지나간 자리에 그 친구가 있었다. 친구가 내 앞에 와서 앉았다.

 

 

 

 

3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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