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우리 엄마 이야기 (10)

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초반에는 신나서 막 썼는데 요즘은 이게 이야기거리나 되나

하는 고민도 되고 그러다보니 글 쓰는게 살짝 걱정이 되더라구요. 절필한 줄 아셨다는 댓글을 보고 옴마야..... 부디 그러지 마시옵소서....... 에고 절필이란 단어가 제게 너무 아깝고 황송합니다. 

 

오늘도 과거 이야기 써 볼게요. 제가 이야기 쓰는 분들은 다 우리 엄마 계원들이예요. 

집 근처에 계신 분들이 많다보니 사건도 주로 그 분들하고 얽힌 일들이 많았어요. 

 

우리 할머니가 처음에 집 지을 땅을 산 곳은 광장동인지 구의동인지 그 어디쯤이라고 하세요.

거기에 집 지을 땅을 샀다가 집 지어서 팔고 집 지어서 팔고 하면서 점점 강 건너로 내려오기 

시작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집 지어서 팔 땅을 사두다 보면 그 근처에는 항상 판자촌이나 

무허가 주택들이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그런 집들을 함부로 어쩌지 못하지만 그때는 

땅주인이 와서 포크레인으로 한번에 무너뜨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시대였다고 해요. 

간장독에 빠진 흰 원피스의 주인공 현주도 그런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는 친구였어요. 

 

우리 집에서 대문을 열고 나가면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있었고 바로 건너에 야트막한 오르막이 

있었어요. 그 오르막에는 이른 아침에는 달개비꽃도 피고 접시꽃도 있었구요. 또 할머니들이 

그 손바닥만한 땅에서 뭘 키워서 드시겠다고 밭으로 일군 곳도 있었어요. 쪽파, 부추, 깻잎 

이런 것들이 골고루 자라고 있었고 나름 밭이 구역도 나눠져 있었어요. 그런 텃밭 한쪽에는 

개 집도 있었는데 개 집이 어찌나 훌륭한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무허가 판잣집 보다도 더 좋게

붉은기와에 파란벽을 가진 개 집이 있었고 누렁이가 묶여서 우리 노는걸 쳐다봤었어요. 

 

그 야트막한 오르막 위에 현주네 집이 있었어요. 현주네 집에는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없었기에

항상 우리 집 마당에서 물을 받아다가 썼어요. 

시골에서 물 길어다 설거지하고 밥하던 우리 엄마는 그게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아냐며

겨울에는 현주랑 저랑 같이 목욕탕도 데리고 가고 조그만 다라에서 목욕도 시켜줬지요. 

 

집에 물이 안나온다고 현주가 지저분하게 하고 다녔냐 하면 절대 아니었어요.

현주랑 저랑 같이 길을 걸어가면 현주는 누구나 한번쯤 뒤돌아보게 깔끔하고 예쁘게 하고 다녔어요. 물이 나오지 않는 집이었지만 현주 어머니는 현주한테 항상 하얀색 세라복 원피스를 빳빳하게 다려서 입히셨고 현주 방에는 종이인형이 깡통 가방 안에 넘치게 있었어요.

깡통 가방은 여행용 트렁크처럼 생긴 가방인데 양쪽으로 철컥 소리가 나며 잠글 수 있는 와이어가 있었구요. 우리 집에 놀러올때면 현주는 마치 외국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 처럼 그 깡통 트렁크를 들고 왔었어요. 저도 그 깡통 트렁크가 너무 갖고 싶었는데 갖지 못했어요.

현주 아버지가 하나뿐인 외동딸을 위해서 정말 외제 과자 깡통을 다 망치로 펴고 다듬어서 만들어주신거라 이름도 모르는 외제 과자 깡통으로 만들어진 그 가방은 정말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예뻤어요. 나중에 제가 너무 탐을 내니 삼촌이 어디가서 사다준 빨간색 철가방은 비교도 안되게 예쁜.. 꼬부랑 글씨들이 잔뜩 써 있는 가방이었어요. 

 

그 가방을 열면 우리 엄마는 돈 아깝다고 안사주는 종이인형이 정성스레 잘 잘라져서 목에는 스카치테이프를 감고 누워있었고 저는 현주가 주는 인형이랑 옷만 입히면서도 즐겁게 잘 놀았어요.

가끔 엄마가 종이인형을 사줄 때도 있었는데 제가 자르면 손가락이 잘려나가거나.... 모가지가 흔들거리거나.... 옷을 몇 번 입히면 손에서 난 땀으로 종이가 눅눅해져서 다 힘없이 픽픽 쓰러지더라구요.

나중에 현주한테 너의 종이 인형은 왜 이렇게 맨날 빤빤하냐고 물으니 현주 어머니가 현주 옷을 다리고 남은 열로 꼭 종이인형도 한번씩 다려주신다고 하더라구요. 그 때 이미 동생을 둘이나 두고 있던 터라 엄마한테 그런 정성은 바라지도 못하겠더라구요. 

 

현주의 소장품 중에 클라이막스는 금발머리를 한 마론인형과 '크리스탈' 이라고 불리던 투명한 조립 장난감으로 만들어진 피아노였어요. 그 두개는 현주가 집에서 가지고 나오지도 않았기에 저는 금발머리 마론인형과 크리스탈 피아노를 보려면 현주네 집에 가야만 했어요. 금발머리 마론인형을 가지고 저는 오늘 파티를 가야해요~ 이러면서 인형이 크리스탈 피아노를 치는 척 하는게 우리가 아는 럭셔리였어요. 

 

현주네 집은 뒤로는 텃밭을 끼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버스정류장이 바로 있는 대로를 마주한 집이었어요. 어떤 구조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현주네 안방이라 거기서 신발을 들고 들어가서 뒷방으로 나가야만 신발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거였어요.  텃밭으로 들어가는 길도 있었는데 텃밭으로 가면 신발에 진흙이 묻어서 현주 어머니가 싫어하셨거든요. 그래서 우린 항상 그리로 돌아 들어갔어요.

 

현주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는 뉴욕제과점이 있었고 그 길 건너에는 불란서 빵집이 있었어요.  우리가 놀 때면 현주 어머니는 둘이 카스테라 사 먹으라고 돈을 주시곤 하셨어요.  길을 건너는게 위험하니 뉴욕 제과점으로 가고 불란서 빵집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현주랑 저는 말을 안듣고 꼭 불란서 빵집으로 갔어요. 불란서 빵집에서 빵을 사면 풍선껌을 줬거든요. 완전 범죄를 꿈꾸며 불란서 빵집에서 빵 담아준 봉투는 버리고 빵만 달랑달랑 들고 집에 가곤 했지요.

뉴욕제과점은 우리 집 1층에 세들어 살던 현성이네가 하는 거였는데 현성이는 우리가 불란서 빵집에서 빵 사서 가면 우리한테 작은 돌을 던지거나 따라오면서 불란서 빵은 전라도 사람들이 만든거라 독을 탔다고 소리를 치며 따라오곤 했어요. 전라도가 어디인지도 몰랐지만 현성이가 그런 말을 하면 주변에 어른들이 계시다가 그런 소리하면 붙잡혀간다고 겁을 주시면서 입을 틀어막곤 했어요. 

 

현주네 집에서 저는 화장실은 한번도 못봤는데 대신 시골집에서 보던 스텐레스 요강이 있었어요. 화장실은 집 끝에 가면 있다는데 현주 어머니가 냄새나고 무섭다고 현주도 저도 그 요강에 소변을 보라고 하셨고 그게 너무 싫었던 저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그 해 여름은 장마가 무척 길었나봐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엄마가 나가지 말라고 하셨던 기억이 나요.  한밤중에 잠을 자고 있는데 현주어머니가 급히 현주를 업고 오셨어요. 메리야스에 팬티만 입고 자고 있던 현주를 그대로 들쳐안고 오셨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푸세식 화장실이 넘치며 그게 집안으로 들이쳐서 집 바닥이며 세간들이 모두 똥물에 잠겼다는 것 같았어요. 

자다가 눈비비며 일어난 현주와 저는 신나하며 둘이 껴안고 즐거워했어요. 현주 어머니가 미안하다고 하며 현주한테 엄마가 집 치울 동안만 여기 있으라고 했지요. 그리고 잠시 후에 현성이 어머니도 현성이를 데리고 올라오셨어요. 1층 현성이네 집도 하수구가 역류하여 부엌 바닥부터 물이 차오른다고 했어요. 엄마와 아빠가 모두 내려가겨서 쓰레받이나 삽을 들고 물을 퍼낸다고 했어요. 집에 있던 안쓰는 담요로 물이 못들어오게 턱을 만들고 쓰레받이로 물을 퍼내는걸 우리는 위에서 셋이 지켜봤어요. 

 

우리 집 지하실에도 빗물이 들이찰 것 같아서 걸레들로 턱을 만들어 지하실에 물이 들이차는걸 막아야 한다고 삼촌이 소리치던게 지금도 생생해요. 

어른들은 우산도 쓰지 못하고 오가며 쏟아지는 비를 막으려고 애쓰셨어요. 

동이 트기 시작했고 우리는 현주네 집 한쪽이 아예 쓰러진걸 봤어요. 아마도 지금 생각하면 비가 많이 와서 땅이 물러지니 간이화장실이 쓰러지면서 지붕도 같이 푹 꺼진게 아닐까 싶어요. 

평소 지붕위의 포장이 날아가지 말라고 올려뒀던 타이어가 텃밭에 뒹굴고 있었어요. 

 

현주는 우리 집이 쓰러졌다며 훌쩍훌쩍 울었고, 저도 현성이도 같이 울었던거 같아요. 

날이 밝고 현주어머니는 맑은 물을 받으러 우리 집에 울면서 오셨고 현주도 집을 보러 엄마를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비가 그치고 난 뒤 쏟아지는 햇볕과 세간살이 정리에 떠밀려서 우리 집에 맡겨진거지요. 멀쩡한건 개 집 밖에 없다고 했어요.

현주네 어머니도 현성이네 어머니도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운 시기였나봐요. 

현주 어머니와 현성이 어머니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말다툼을 시작하셨고 그 말다툼의 끝에 돈을 쓸 데 없는데 쓰고 애한테 그렇게 해주니 그 모양 그 꼴인 집에서 산다는 말이 나왔대요.

현주 어머니도 현성이 어머니한테 하수구 넘치는 집에 세들어 사는 너나 나나 똑같다는 말을 했고 둘은 정말 머리채를 휘어잡아가며 싸웠대요. 집주인이자 물 대주는 사람이었던 엄마의 중재로 둘의 싸움은 끝났지만 항상 빛나던 현주의 하얀 원피스도 파란색 앞치마도 모두 그 전과는 달랐어요. 

우리 집에 맡겨지는 현주의 손에는 철가방도 마론인형도 없었어요. 현주는 말하지 않았지만 저는 현주가 전재산을 잃었다는걸 알 수 있었어요. 얼마 뒤에  나라에서 수재가 발생한 지역을 정비한다고 하면서 무허가 주택을 싹 다 없애버렸고, 현주네는 다른 무허가 판자촌 동네로 쫓겨나듯 이사를 갔대요. 

 

현주는 그 뒤로 만난 적이 없지만 현주 어머니는 계원이라서 소식을 종종 들었어요. 

현주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약대를 갔대요. 그 당시 여자는 성적이 좋아도 의대보다 약대 보내던 일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인지라 모두 현주 어머니를 부러워했어요. 경기도에 아파트도 사셨고 모두 잘됐다고 축하해주었어요. 현주 어머니가 집들이도 하지 않고 아무도 부르지 않아 서운했지만 사는게 바빠서 그러려니 했대요. 나중에 제약회사에 들어간 현성이가 접대하러 간 룸싸롱에서 현주를 만났다고 이야기해서 눈이 삔 애 취급을 당한 일 빼구요. 계모임에서 현주는 약사. 가끔 현주 어머니 편에 현주가 준다는 영양제도 얻어먹는대요. 약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요... 

그냥 아직도 저는 하얀세라복 원피스, 종이인형, 마론인형을 보면 현주가 생각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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