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국회의장 후보 선출
정치인과 대담프로를 하면 많이들 그 정치인의 품성에 대해 물어본다. 내가 어찌 알까. 다만 나는 그들이 우리 스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 자세로 얼추 가늠할 뿐이다.
오래전 일이다. 총선이 치러지고 그날밤 총선을 되돌아보는 생방송 대담이 열렸다. 그런데 승리를 거둔 거대 정당의 선대본부장이 방송 10여분 전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프로듀서였는데 우리팀은 시계 앞에서 목이 타들어갔다. 그 정치인은 지각을 하고도 미리 와서 기다리던 다른 4명의 타 정당 대표들에게 목례조차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며칠전 국회의장 후보 경선이 언론의 예상을 빗나갔다. 나는 정치를 전혀 모르지만 어쩌면 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론은 뭐라뭐라 분석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당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다. 내 한 표를 주고 싶은 ‘마음’의 문제다. 그것은 유권자가 국회의원을 뽑을 때와 똑같은 것일지 모른다.
국회의장 경선에서 떨어진 정치인은 한국의 ‘철의 여인’이다. 그분과 두어번 방송을 해봤는데 특히 당대표로 대담을 할 때는 차갑고 강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진행을 할 때 얼마나 무대를 장악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마이클잭슨이나 조용필이나 결국은 무대장악의 힘이다), 그런 출연자가 나오면 이상하게 이야기를 내 맘대로 끌고 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항상 궁금했다. 차갑고 강인한 것이 카리스마인가. 그분은 녹차를 가져다주거나, 차량 번호를 묻는 우리 스텝들에게도 그저 차갑고 강인했다. 그래서 나는 늘 궁금했다. 그것은 불친절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단편적인 경험만으로 나는 그 정치인에게 잘 마음이 가지 않는다. 왜냐면 내 주변에는 따뜻하면서도 성과를 내는 수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자면 이진우기자같은~)
이번에 의장 후보가 된 정치인을 나는 한 번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거리에서 두어번 봤을 뿐이다. 부당하게 출판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험을 당할 때나 비정규직 집배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할 때도 그가 또는 그가 속한 모임의 정치인들이 그들과 거리에 있었다. “누구 국회의원도 오시니 기자님 꼭 취재 오셔야 되요”. 편의점주 몇 명이 모여 피케팅을 한다는 데 그 국회의원이 진짜 올까.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쫄병 기자시절 모 선배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기자에게 잘하는 사람은 장사꾼이고, 은행에게 잘하면 사업가고, 자기 기사에게 잘하면 기업인이야’. ‘국회의원들 중에 자기 보좌관 비서관 자주 바꾸는 사람은 푸로꾸야. 큰 인물 못 되’.
당연한 이야기다. 자기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오래전 대우조선 노동자의 죽음의 진상조사를 하던 노무현변호사가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됐는데 그를 변호하겠다는 변호사가 99명이였다.
을지로위원회가 하는 정책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힘없는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것은 늘 옳은 것이다. 나는 그 출발이 그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것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사는 가장 쉬운 일이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늘 친절해야 한단다”
-밥딜런의 할머니가 어린 밥딜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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