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그 남자 이야기 5

동생한테 봐 달라고 부탁했던 궁합

결과는 이러했대요

너무 막 좋지도 않고 또 나쁜 것도 없이 무난해 보이니까

혹시 결혼할 생각이면 그 남자랑 하라구요

평탄하게 살거라고

 

그 결과 듣고 동생이 궁금해해서 그냥 사귀는 중이고

결혼은 미지수라고 걱정말라고 했어요

왜냐면 첫 번째 결혼으로 너무 피폐해져서

제가 동생한테 그랬거든요

혹시 이 언니가 생각없이 또 결혼 할려고 그러면

절대로 결혼 못하게 도시락 싸 가지고 따라다녀서라도 끝까지 말려 달라고 ..

그랬으니 동생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였죠

 

그 남자 만나기 전에 전 이미 제 노후를 설계를 했었어요

제가 살아나가기에는 세상이 너무 버거웠거든요

30 대 중반에 난치병으로 투병시작하면서

목표는 아들 30 살이 되는 60 까지는 어떻게든 살아내는 거였고

그 이후에도 삶이 남아있다면

아들 대학졸업하고 직장 자리 잡은 후에는

저는 퇴직하고 산속 작은 암자 ( 이미 정해놓은 ) 에 공양주 보살하면서

아픈 주사도 , 채혈도 , 검사도 , 병원 다니는 것도 그만 다니고

그냥 그곳에서 자연사 할려구요

물론 아들이나 가족들하고 다 연락 끊구요

그만큼 세상이 제 처지가 원망스러웠어요

그런 독한 마음으로 버텨낸 날들이었으니

남은 제 인생에 다시는 결혼은 없다였거든요

 

무거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다시 달달한 로맨스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영화도 보고

근처 괜찮은 곳 숙제하듯이 찾아다녔어요

조미료 맛을 기가 차게 알아내고 외식을 못 하겠다던

입맛이 저보다 더 예민한 그 남자를 위해 매번 도시락을 싸고

과일을 예쁘게 깍아 담고 커피도 내려서 보온병에 담고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다녔어요

 

7 월 중순

제 고향 와인터널에 갔던 날이었어요

입구에 사진 찍어서 유화로 액자 만들어주는 곳이 있었는데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 해서 그 남자와  맨 처음으로 친한 척 사진도 찍고

액자는 두 개 만들어서 각자 하나씩 가져가기로 했고요

 

평소에 술도 안 마시고 못 마신다던 그 남자가

와인 두 모금에 얼굴이 발그레해 가지고

대뜸 훅 ~~~ 치고 들어옵니다

청혼이란 걸 했어요

 

그 남자의 청혼이 어떤 거 였냐면요

같이 아들 잘 뒷바라지 해서 장가보내고

우리는 너무 늦게 만났으니 30 년만 같이 잘 살아보자고

그러면 80 이 넘을 테니까 4 살 많은 자기가 먼저 떠날거고

1 년 후 쯤 뒷정리 잘하고 자기따라 오라는 ..

 

똥색 쎄무 잠바 , 자판기 커피의 그 남자는 세련됨 , 무드 이런 거 없었어요

프로포즈 할 때는 최소한 장미 한 송이 정도는 저를 위해

배려해 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냥 저렇게 세상 무거운 이상한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

 

보통 드라마나 소설 이런데 보면 좋아하는 사람이 프로포즈하면

황홀경에 빠지고 감동도 받고 그러던데 저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

그때까지 결혼은 생각 안 했었고

이유없이 그 사람이 좋은 제 감정에 충실해서 만났으니까요

 

갑자기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져서

선뜻 대답을 안하니 조금은 서운한 듯한 그 남자한테

1 주일 정도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그날은 그냥 헤어졌어요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몇 날을 고민 속에 빠졌습니다 .

이번에 또다시 결과가 나빠지면 내 인생은 이제 끝장인데

그럴경우 다시 회복할 힘이 나에게 남아 있을까 ?

자식도 안 낳고 안 키워본 그 남자가 성인이 된 아들과 잘 어우러져

가족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

나는 이미 폐경이 가까운 40 대 후반의 나이라서 임신 , 출산이 불가능한데

자기 핏줄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

그리고 20 대에 만나 자식을 낳고 몇십 년을 살아도

늙어서 아프다 하고 병치레하게 되면 돌아서는 게 인지상정이라는데

다 늙어 아픈 날 만나서 더 힘들게 살게 되지는 않을까 ?

나랑 결혼하는 상대자는 살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 남자를 오히려 불행하게 하는 건 아닐까 ?

설마 폭력적이진 않겠지 ?

도박에 빠지진 않겠지 ?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가족을 나 몰라라 하지는 않겠지 ? 기타등등

 

동생은 또 동생대로 언니가 또 그 고생할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

그 남자 사는 집 등기부 등본이라도 떼어보고 결정하라는 둥

남자 혼자 살면 재산 못 모은다는데 빈털털이 아니냐는 둥

도무지 정리도 안 되고 이 결혼을 해야되는지 말아야되는지

결정을 할 수가 없어 애만 태우다가

어느 날 그냥 다 내려놓고 없는 상황을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

 

혹시나 그 남자가 어떠한 사고를 쳐서

가진 집과 재산 전부 다 합의금으로 물어주고 직장도 파면당하고

저한테 의지해서 노후를 보내야 된다면

그래도 그 사람을 외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렇더라도 그 사람을 선택해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르니 이제는 제가 만나자고 연락을 먼저 했고

그리고 저랑 결혼했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을

가감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

 

지금 당장 죽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평생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되며

나이가 많아서 자식을 낳을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은 7 월인데 12 월까지는 아이 대입이 걸려있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좀 기다려줘야 한다

그리고 모은 돈도 별로 없다

이런 나라도 괜찮겠느냐

나중에 이런 나랑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겠느냐 등등

 

그 남자의 대답은

나도 남자인데 왜 핏줄에 대한 미련이 없겠느냐 그렇지만

이제는 나이도 있고 미련없다

그리고 우리한테 다 큰 아들이 있으니 되었다

아픈 것도 당장 시한부 몇 개월 이런 거 아니지 않느냐

같이 병원 다니고 노력해서 잘 이겨내 보자

마음으로는 지금 당장 결혼하고 같이 있고 싶지만

아들 입시 때까지 기다려 주자

그리고 그 이후에 결혼해도 상관없다

 

혼자 머리아프게 고민했던 것에 비해 너무 쉽게

그 남자가 정리를 해 주더라구요

그래서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저 혼자 알게 된 지 6 년 만에

그리고 같이 알고 지낸 지 3 년 만에

새끼손가락 꼭꼭 걸고 13 년 12 월이 다가기 전에

결혼하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

 

여전히 진도는 더 못 나가고

결혼 약속까지 했는데도 손만 마냥 열심히 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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