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그 남자 이야기 4

방학 중 특강은 1 주일에 2 번 3 시간씩 3 주간 진행이 되었는데

특강 첫날 학교에 도착하니

그 남자가 현관에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

 

눈이 내렸는데 얼어서 길이 미끄럽지 않았는지

눈이 온 후라서 제법 날이 차갑다며

발이 시려서 양말을 두 켤레 신었다고 이야기하며

저를 반겨 주었어요 .

 

특강 기간 중 학교에 가보면 매번 그 남자가 출근을 해서

있는 겁니다 .

보통은 그 업무를 맡았다 해도 방학 중에 특별한 일없이 매일 출근하지는 않는데

책임감이 강한건가 아님 나를 볼려고 ??????

그냥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제 느낌상은 책임감도 있고 저도 보고

둘 다 일 거라고 생각만 했지요

 

그렇게 3 주간의 특강을 마치고 마지막 날 서로 인사하고

특강료 정산해서 입금해 준다며 저한테 계좌번호 적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또 많이 입금해 달라고

맛있는 밥 한끼 사드린다고 이야기 했구요

 

강사료가 통장에 입금된 날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서 그러니 잘 아는 곳 정해주시면

시간 맞춰서 가겠다고 문자를 날렸습니다 .

저는 제가 한 말에는 꼭 책임을 지는 여자니까요

그리고 또 많이 기대하고 기다린 날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그 남자랑 공식적인 첫 번째 데이트 날 2013 년 2 월 26 일

각자의 집 중간 어디쯤에 있는 대학교 교정에서 만나서

그 남자가 예약했다던 식당으로 갔습니다 .

저는 나름 우아한 레스토랑이나 정갈한 한식집이겠거니 기대를 했는데

어느 저수지 옆 매운탕집에 도착했습니다 .

80 년대에나 봤을 법한 산수화가 그려진 카페트가 바닥에 깔린

앉아서 밥을 먹어야 되는 그런 곳이었어요

 

 

그 남자는 오늘 방영하는 수사반장 김상순형사 역할을 하는 배우가 입었을 법한

30 년 된 똥색 쎄무 잠바 ( 아버지가 대학입학 기념으로 사주셨다는 ) 를 입고

나왔으니 그 매운탕 집하고 분위기가 찰떡이지만

저는 설레이는 첫 데이트라고

롱부츠에 샤넬라인보다 짧은 팬츠에 짧은 트렌치 코드로 한껏 멋을 냈는데

정말 엄청 불편하게 부츠 벗고 들어가서 불편하게 앉아서 점심을 먹었어요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밥 한 두 숟가락 먹었을 거 같아요

50 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도 남자와 데이트하는 자리라서 그런지

배는 고프면서도 밥이 안 넘어가서 못 먹었던 순박한 여인이었던 거지요

 

점심먹고 저수지 주변 좀 걷다가

제 차를 두고 왔던 그 장소로 되돌아오면서

그 남자가 점심을 먹었으니 맛있는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또 어디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일까 설렘반 기대반으로 기다렸더니

그 대학교 자판기로 가는 겁니다

 

“ 여기 자판기 커피가 여기 대학교 내에서 제일 맛있고

한잔에 200 원 밖에 안해서 가격도 저렴해요 ”

 

세상에 20 대 아가씨 시절부터 대쉬해 온 여러 명의 남자들처럼

저를 꼬시려고 할 때 가던 멋진 그런 찻집이 아니고

첫 데이트에 길거리 자판기 커피라 ......

 

좀 어이없고 우스운 상황이었는데 이상하게 싫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참 특별나다 이 정도

200 원짜리 자판기 커피로 마무리된 첫 번째 데이트가 끝나고

그 남자가 신학기니까 바쁜 것 지나고 조용하면 연락하겠다고 하고

헤어졌어요

 

그 이후로

3 월이 지나고 4 월이 지나고 또 5 월하고도 중순이 되어가는데

그 남자로부터 연락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명색이 데이트를 한 사이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 연락이 없는 것은

더 이상 나를 안 만나겠다는 건가 ?  내가 차인건가 ??

그래 그렇다면 의중이나 한번 떠보고 아니면 아예  깨끗이 마음을  접자 싶어서

그 남자를 시험에 들게 하였습니다 .

 

마침 5 월 30 일에 있었던 아쟁선생님 공연 포스터를 사진으로 찍어서

문자를 날렸습니다 .

좋은 공연이 있는데 혹시라도 생각이 있으시면 같이 가자구요

한 5 분이나 지났나

3 개월을 그렇게 기다리게 하던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

좋은 공연이 있으면 갈려고 찾아봐도 없어서 찾아보면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겁니다 .

 

그렇게 퇴근 후에 대구에 있는 공연장으로 같이 오가며

또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해보니

둘 다 여행도 좋아하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혼자서 가기는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해주고 그러면서

다음에는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가보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어요

 

며칠 후에 그 남자한테서 문자가 왔어요

우리의 첫 번째 여행지로 주산지를 가보고 싶은데 괜찮은지 제 의견을 물어오는

그래서 저도 좋다고 하고

6 월 7 일 금요일에 김밥싸서 주산지로 여행을 갔어요

가서 주산지 풍경사진만 열심히 찍고 김밥만 열심히 먹고

그냥 재미없게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구요

9 일 일요일 날에 저는 아쟁 수업이 있었고 그 남자는 테니스모임이 있었는데

제가 마치고 그 대학교 교정에서 좀 보자고 했어요

 

테니스 치다가 손목에 무리가 되었던지 파스를 붙인 곳이 발진이 생겨서

주산지 가서 내내 벅벅 긁고 있었고 영 제 눈에 거슬렸거든요

그래서 제가 배꼽에 벨트의 버클로 인한 철제 알러지 때문에 바르던

연고를 줄려구요

 

2 시에 교정에서 만나서 연고 주고 약 잘 발라야 ᄈᆞᆯ리 나을거라고 이야기 하고

제가 가지고 갔던 보온병 속 커피 다 마시고 나서 갈려고 일어섰거든요

그랬더니 왜 벌써 가느냐고 이야기 더 하고 가라고 그 남자가 붙잡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또 다시 앉아서 처음 데이트 때 등장한 그 자판기 커피 뽑아먹으면서

 등받이도 없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불편함도 잊은 채 한참을 더 이야기 했어요

 

어느듯 시계탑 시계가 6 시 30 분이 되는 걸 보고

아이 저녁해주러 가야한다고 하면서 일어나는데

가는 저도 솔직히 더 있고 싶었고

보내는 그 사람도 붙잡고 싶었으나 그렇게 못하고 서로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을 해 봤는데 

내가 지금껏 살면서 부모형제 포함

누구와 4 시간 30 분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었던 가를요

제 기억 속에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불편하거나 조심스럽다거나 그런 순간도 없었고

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내용은 기억도 나지 않았구요

 

그때 느낌이란 것이 왔어요

아마 이 사람은 그냥 좋은 감정으로 데이트만 하는 사이는 아니란 것을요

그래서 생각 끝에 다음날 그 남자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혹시 생일이 언제냐고 ... 아직 안 지냈으면 챙겨주고 싶다고

( 저는 구닥다리 세대라 장 담그는 것도 날을 잡아서 하고

이사가는 것도 좋은 날 잡아서 가는 사람이라 이해해 주셔요  )

그래서 그 생일로 동생한테

잘 가던 철학관에 가서 그 사람이랑 궁합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 생일은 공교롭게도 1 주일 후 월요일이더라구요

퇴근 길에 작은 케익하나 싣고 기타도 싣고

그 대학교정에서 만나서 저녁 먹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잔디가 깔린 스탠드형 무대 언저리에 앉아서

생일축하곡 한 곡 정성스럽게 불러주었습니다 .

김광석님의 내사람이여

그리고 케익에 숫자 1 초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주구요

머리 희끗한 아저씨 데리고 남의 대학교 교정에서 참 눈치도 없게 ....

 

숫자 1 은 제가 처음 챙겨주는 생일이란 의미였고

그 남자 50 년 인생에서 생일에 처음으로 받아본 케익이라고

감동이라고 했습니다 .

 

그리고 돌아오는 토요일에

처음으로 영화라는 것을 보러 가게 됩니다

같이 나란히 영화관에 앉아 있는데 목석같은 그 남자의

양손은 오랜시간을 그냥 자기무릎 위에서 얌전히 얹혀있기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참다 못한 제가 딱 한마디 했습니다 .

박선생님 손 !!!!!

그랬더니 바로 제 손을 잡더만요

 

이제부터는 조금 바쁘게 진행을 해볼려구요

그런데 지금 시간이 12 시가 넘어서 눈이 막 감겨요

우선은 취침하고 다시 돌아 오겠습니다 .

 

최근 많이 읽은 글

(주)한마루 L&C 대표이사 김혜경.
copyright © 2002-2018 82cook.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