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오랜만에 써 보는 우리 엄마 이야기 (9)

안녕하세요 잠옷이예요. 오랜만이지요. 

중간고사 성적표는 누워서 받아야 한다는 말이 우스개소리인지 알았는데 누워서 받아야 하는게 

맞는거였어요. 성적표 받고 한동안 가만히 누워있었습니다. 이제 첫 시험인데 앞으로의 삶이 가시밭길이 되는건 아닌지 하는 걱정과 용기를 줘야 한다는 마음과 뭔가 다 끝났다는 마음이 상충하면서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구요. 이제 조금 추스리고 일어나서 그래도 내 이야기 잔소리나 쓸데없는 소리로 치부 안하고 들어주시는 분들 계신 곳에 왔어요. 다시 시작하려니 쑥스럽기도하고 재미가 없기도 할 것 같아서 걱정스럽지만 오늘도 또 담담하게 엄마가 들려줬던 이야기들 다시 해 볼게요. 

엄마가 들려줬던 이야기들을 잘 기억하는 이유는 엄마가 지겹도록 말을 했기 때문이예요..... ㅎㅎ

여하튼 그렇습니다. 

 

오늘은 원식이네 이야기 조금 써 볼게요. 원식이네 집 원식이는 다운증후군 아이였어요. 

제가 기억하는 원식이는 머리가 바위만하게 컸고 뚱뚱했고 항상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었어요. 원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원식이 오빠예요. 애들이 원식이라고 불러서 저는 나이가 어린지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저보다 다섯살이나 많더라구요. 동네 애들이 원식이를 좀 괴롭히기도 했지만 놀 때는 또 같이 잘 놀았어요. 

 

그러다보니 원식이는 다운증후군 아이여도 늘 동네애들이랑 섞여서 놀았어요. 동네 애들이랑 논다는게 기껏해야 담의 집 벨 누르고 도망치는거라던가 동네에 기어다니는 개미나 혹은 운이 좋으면 좀 큰 지렁이나 아니면 잠자리 같은거 잡아서 노는게 전부였는데 그 때는 그렇게 잔인하다는 생각 못하고 동네 애들하고 열심히 작은 생물들을 괴롭히면서 놀았어요. 생물이 안보이는 날에는 마당에 핀 나뭇가지들을 못살게 군다거나 길거리에 피어있는 꽃들을 따면서 놀았어요. 말이 좋아서 꽃을 따는거지 여리고 어린 식물들을 못살게 군거죠...

 

그때 저희가 살던 집은 옆집과 벽돌두께만한 담장 하나가 있는 집이었는데 이 담장위를 걸어다니는 것도 놀이였어요. 원식이는 그 담장 위에 못올라갔어요. 담 위를 올라가려면 마당에 있는 돌을 밟고 쓰레기통위에 올라서서 담을 밟고 걸어가야 하는데 균형을 못잡겠는지 그 쓰레기통 위에 올라가는 것 부터 힘들어했어요. 저랑 동네 친구들이 원식이 엉덩이랑 등을 밀어서 쓰레기통 위에 올리는 걸 한번 성공했는데 원식이나 무섭다고 목 쉰 소리로 울어대서 어른들한테 혼날까봐 얼른 내려줬었네요.  그 때는 원식이가 엄살이 심하고 겁장이라고 생각했어요. 훨씬 어린 저도 날다람쥐처럼 잘 올라가니까요. 그 놀이의 끝은 담장 위에서 멋지게 점프해서 뛰어내리는게 끝인데 우리가 그렇게 뛰어내리면 원식이가 점수를 매겨줬어요. 백점~ 이렇게요. 원식이도 우리가 싫을 때가 있었는지 가끔은 빵점도 주고 또 더 가끔은 우리를 멍청이 갈보년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그 뜻이 뭔지도 몰랐지만 원식이가 우리를 멍청이라고 부르면 바보라고 응수해주곤 했었어요. 

 

우리는 원식이가 담 위에 못올라온다는걸 알고 원식이랑 잘 놀다가도 뭔가 수틀리면 원식이를 놀리면서 담장 위로 도망갔어요. (이야기를 쓰다보니 제가 갑자기 확 컸네요....... 이해해주세요. 제가 제정신이 아니예요. 다음 편에는 다시 아기가 되어있을수도 ) 원식이는 그래도 화 안내고 같이 자기를 놀리면서 우리가 서 있는 담 쪽으로 뛰어오고 그럼 우리는 소리를 왁~~~ 지르면서 반대편으로 게걸음을 걸어서 도망가고 이러면서 놀았어요.

 

그러다 제 친구가 옆 집 담장 아래서  뚜껑 열어둔 간장독에 빠지면서 그 장난은 더이상 치지 못했어요. 간장독이 깨져서 다행이지 잘못됐다면 간장독에 빠져죽었을거라고 하더라구요. 까만 간장에서 꽃처럼 피어나던 제 친구의  하얀 원피스와 콜라처럼 거품을 내며 콸콸 쏟아지던 간장이 지금도 기억나요. 옆집 아줌마가 너무 화를 내셔서 무서웠던 나머지 우리는 원식이 핑계를 댔어요. 원식이가 우리를 무섭게 해서 도망가다가 빠졌다고... 원식이 어머니는 사실을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모르지만 원식이어머니랑 같이 놀던 애들 엄마들이 간장 새로 담아주셨다는거 같아요.  옆집은 화연아줌마라는 분이 사셨는데 남편을 잃고 외아들 키우며 사는 분이셨어요. 여자 혼자 사는 집이라 항상 문단속에 열심히셨고 길 쪽으로 나 있는 그 집 담장위에는 보기에도 아찔한 깨진 사이다병이 줄지어 있었어요. 

 

화연아줌마네 집에 간장을 새로 담가주고 담벼락 위에 올라가는 장난은 그만뒀어요. 원식이랑 노는 것두요. 원식이아저씨가 화연아줌마랑 바람이 나서 처자식을 모두 내팽개치고 둘이 야반도주를 했거든요. 한동안 온 동네가 원식이아저씨와 화연아줌마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어요. 언제부터 오가는 사이였을까 하면서요. 원식이 아줌마는 원식이랑 같이 우리 집에서 좀 더 살다가 원식이를 충청도 어디에 있는 절로 보냈다고 해요. 나중에 엄마인지 친척인지 누가 절에 가서 원식이를 봤는데 절에서 스님들이 쓰시는 화장실 청소를 엄청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전생에 지은 업보를 제일 빨리 씻는 방법이라고 원식이라 말해줬대요. 원식이어머니는 원식이를 절에 보내고 동네 목욕탕에서 때밀이 아줌마를 하셨어요.(그 때는 그렇게 불렀어요.)  항상 회색 원피스나 바지를 입고 계신 모습만 봤는데 목욕탕에서 만난 원식이 어머니는 어린 제가 보기에 야한 까만색 브라와 팬티를 입고 계셔서 그 모습이 너무 어색했어요. 원식이네는 이사를 가지 않고 도망간 원식이아저씨가 오시기를 기다리면서 계속 우리 집에 사셨어요. 원식이도 절에 가고 없고 아주머니는 새벽부터 목욕탕에 나가셔서 문두드리면서 원식아 놀자~ 이러면서 부르면 숨을 색색 쉬며 나오던 원식이가 없었기에 1층 모서리 월셋방은 곧 저의 관심에서 사라졌고 나중에는 그 앞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어요.

 

원식이는 20대 초반쯤 극락왕생 했다고 하고 원식이 아줌마는 그 이후 재혼하지 않고 지금은 25평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착실하게 남은 여생을 즐겁게 살고 계세요. 원식이 아저씨 소식은 알고 계신다고 해요. 원식이 아저씨와 화연아줌마도 가정을 이루고 둘이 잘 살고 있대요. 원식이 아저씨가 그렇게 야반도주를 하고 아줌마는 원식이를 절에 보내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찾았더니 생각보다 금방 찾아지더래요. 가서 보니 장애인 아들 없이 살고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측은해보이기도 해서 뭐하러 둘이 고생하냐 너라도 잘 살아라 이런 마음이 들어 이혼하고 식 올리고 마음 편히 살라고 말해주고 왔대요.

 

둘이 막걸리 한사발씩 나눠서 마시고 돌아오는데 길을 몰라서 무작정 걷다보니 쓰레기 수거하는 리어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이 나오더래요. (예전에는 쓰레기를 다 리어카 끌고 다니며 수거하셨지요. 새삼 감사하네요...) 막걸리가 안받기도 했고 쓰레기 냄새때문에 가로수 붙잡고 토하면서 걸어오는데 뒤에서 원식이 아저씨도 울면서 따라오고 있더래요. 근데 같이 갈 마음은 없고 미안하다. 미안하다만 외치면서 따라오는게 하도 남자답지 못해 보여서 세워둔 리어카를 확 밀쳐버렸더니 얼른 도망가더라지 뭐예요. 동네 사람들 때를 밀어줄 때 마다 한풀이 하듯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 이야기를 하셔서 나중엔 모두가 알게 되었어요. 

 

절의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간 원식이... 남의 집 묵은 때를 시원하게 씻어주신 원식이아줌마... 내세가 있다면 좋은 집에서 귀한 아들로 태어나 잘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 많이 읽은 글

(주)한마루 L&C 대표이사 김혜경.
copyright © 2002-2018 82cook.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