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 첫 모임에 10 명 정도 참석했는데
공식 모임 전
시작된 이야기가 박 선생님 이야기였습니다 .
불과 10 일 전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리고 1 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족으로는 아무도 없이 혼자라는 이야기였고
여기서 박 선생님이 그 남자였습니다 .
아마 오늘 못 오실 것 같다고 다들 입을 모으는 중에
그 남자 박 선생님이 오신 거였습니다 .
그리고 딱 한자리 비어 있던 저의 앞자리에 앉으셨고요
회장님께서 신입회원이라고 소개해 주셔서 통성명하고
그냥 같이 저녁 먹으면서 정기연주회에 대한 의견수렴하고
그날은 그냥 헤어지게 됩니다 .
얼렁뚱땅 지척에서 보게 된 , 같이 밥 한끼를 먹게 된
그 날 그 남자에 대한 느낌은요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1 년여 사이에 부모님 두 분을 잃었다는 소식이 작용했겠지만
어떻게 표현이 안 되는 마음이랄까요
평소에 오지랖 넓은 제가 또 마음이 동하는 순간이었어요
뭐라도 위로가 되고 싶었고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마음
좀 웃겨요 제가 뭐라고 ,,, 처음보는 사람한테
여기까진 제 마음이고
2 학기 개학과 동시에 정기연주회 준비 첫 번째 연습모임이
있던 날이었어요
저는 며칠 전에 버스킹하던 중 배가 아파서 병원갔다
맹장 수술하고 퇴원하는 날 이었거든요
아직 실밥을 풀지 않아서 복대를 하고 퇴원과 동시에 모임장소로 갔어요
물론 연습을 하는데 앉을 수가 없으니까 엉거주춤 서서 연습
( 앉으면 복압이 높아져서 실밥이 터질 수가 있어요 )
같이 연습하던 회원들이 왜 그러냐고 궁금해해서 사정이야기를 하고
끝까지 같이 연습하고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왔구요
물론 회원들이 연습하지 말라고 집으로 가라고 했는데 제가 그러기가 싫었어요
합주인데 최소한 제 소리가 연주에 나쁜 영향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이 날 그 남자가 저한테 받은 느낌을 나중에 이야기해줬는데요
퇴원하는 날 아무렇지 않은 듯이 와서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괜찮다고 끝까지 연습을 하는 모습이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랄까 외롭거나 힘든 면을 괜찮은 척 가리고 있는
약한 모습을 남들한테 보이지 않을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져서
제가 좀 안되어 보이더라고( 저 여자는 왜 저리 치열하게 사나..이런느낌)했어요
저나 그 남자나 둘 다 아주 주관적인 관점에서
상대방에게 측은지심 같은 것이 첫인상에서 느껴졌나봐요
정기 공연까지 매주 같은 요일 퇴근 후에 모여서 연습을 하고
근처 순대국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저는 아이가 고딩이라 10 시에 집에 오니 저녁을 먹고 가는데
그 남자는 왠일인지 꼭 저녁을 먹으로 가면 같이 가기는 하는데
밥을 먹지는 않더라구요
그리고 꼭 제가 먹는 식탁에서 먹기도 했구요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랑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그런 일도 없었어요
연습 열심히 하고 밥 먹을 때 곁에 조용히 있다 가는 사람
말수도 너무 적고 새초롬해서 저는 그 남자를 좀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회원들이 다 가고 저랑 , 그 남자 , 또 여자 회원 한 사람
이렇게 밥을 먹으러 갔는데 저녁을 잘 먹다가
그 여선생님이 저한테
“ 선생님께서 저녁 드시고 가면 남편분은 어떻게 하셔요 ”
이렇게 질문을 던진 겁니다
원래 거짓말을 못 하던 저는 밥 먹다 말고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어요
무슨 말을 해야되나 생각하다가 그 남자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여 선생님께서 눈치를 챙기셔서 얼른 화제를 돌리시더라구요
나중에 그 남자가 이야기 하더라구요
저 날 제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걸 봤다고
그런데 사실 전혀 아니었거든요 거짓말을 못해서 당황한건데 ....
그 남자 혼자 제가 안쓰럽게 보였다고 걱정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나랑 친하지도 않았고 밥을 안 먹으면서 왜 맨날 식당에 따라왔냐고
물어보니까 말을 해 본적도 없고 친하지도 않았지만
그냥 밥 먹을 때 같이가서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고 ....
3 개월간의 연습을 마치고 정기 공연하는 날
오지랖이 넓은 저는 단원들 먹을 호박죽이랑 , 커피포트 , 커피믹스 등등
간식을 준비해서 공연장으로 갔습니다 .
각자 자기파트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녹주의 ( 국악합주단의 오너 집박이 입는 의상 ) 를 들고
여자 분장실로 찾아왔더라구요
물론 저를 찾아온 것은 아니에요 저보다 다른 회원들하고 더 친했거든요
1 년 전에 공연할 때 그 의상을 입었던 회원이 대충 개키고 넣어뒀던 듯
고름도 구불구불 도포자락도 주름이 크게 져서 도저히 무대에 설 수가
없을 정도였던 거에요
그래서 제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면서 뚜껑 열고 올라오는 김에 쏘여서
고름이며 도포자락 주름을 거의 다 펴서 공연하는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게
해결해 주었어요
사실 그 즈음 학교에서 제 별명이 * 가이버 였거든요
여자이지만 일머리도 있고 어디서든 급작스레 생기는 그런 문제들을 잘 해결하는 편이었어요
무사히 정기공연 끝내고 단원들 모두 뒷풀이하러 식당에 갔는데
맨날 연습 후에 잘 따라오던 그 남자는 안 보이더라구요
다른 단원 말로는 컨디션이 안 좋아 저녁도 포기하고 바로 집으로 갔다고
그리고 그날 저녁에 고름이며 주름 펴 줘서 고맙다고 문자 한 통을 끝으로
또 다시 몇 개월 공백이 생깁니다 .
3 개월이 지나고
희망찬 2012 년이 되었습니다 .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한 번 끊고
다시 빨리 돌아 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