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울 할매 이야기.... 3

할매가 그렇게 떠나셨지만

저는 그전에 할매랑 보낸 마지막 순간이 따로 있었는데

기말고사 이틀 앞둔 어느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

청도집 간다고 노란 쇼핑백에 하얀색 블라우스랑 치마를 챙겨서 담고

자취방 문을 나서는 ..

 

점심시간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꿈이야기를 했더니

무조건 저녁에 왔다가 가라고 하셨습니다 .

기말고사 바로 앞이라 거절하고 싶었지만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막차타고 청도집으로 갔어요

도착하니 이미 9 시

집에 들어서니 따듯한 물 한 대야를 건네주시며 할매 주무시기 전에

세수시켜 드리라고 하시더라구요

 

얼굴도 씻겨드리고 손도 씻겨드리고 발도 씻어드렸어요

손톱과 발톱도 깍아드리구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셨어요

“ 나는 니한테 잘해준 게 항개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잘해주노 고맙데이 ”

아마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할매 눈물이었고

또 할매와 마지막 대면이 되었답니다 .

 

다음날 새벽 첫 기차 타고 대구 가느라 인사도 못 드리고 올라갔고

기말고사 다 치르고 다시 청도집 갔을 때는 할매는 혼수상태셨다가

다음날 돌아가셨거든요 .

 

청도집에서 5 일장을 치렀는데

산소에는 못 따라갔어요

어른들께서 산이 깊어서 힘드니까 여자들은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는 얼른 옥상으로 올라가서

할매 상여와 만장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한참을 배웅해드렸던

그날이 , 그 먹먹하던 아픔이 다시금 떠올려지네요

 

할매 돌아가시고 49 제 끝날 즈음에

쪽진머리에 은비녀 꼽으시고 옥색저고리 입으신 모습으로

제 꿈에 오셔서 얼굴만 보이고 돌아서 가셔서 너무 서운했고

이젠 정말 마지막이구나 했었습니다 .

 

울 할매는 돌아가시고도 사주가 안 좋아서 걱정이라던

저를 완전히 외면하실 수는 없으셨을까요 ?

제가 입사시험 치르고 결과 발표나던 날 밤

또 임용고시 치르고 발표나던 날 밤에도

어김없이 제게 찾아오셨어요

은비녀 쪽진머리에 옥색치마저고리 입으신 모습으로요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그냥 편한 얼굴로 한번 보시고는 이내 가시더라구요

할매가 이렇게 꿈에 오시면 제게는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

입사시험도 임용고시도 다 합격했거든요

가족들한테 이야기하니까 다른 사람들 꿈에는 안 오셨다고 그러고

저 한테만 오신거 였어요

 

할매가 제 꿈에 맨 마지막으로 찾아오신 날은

저의 첫 번째 결혼에 대해 제가 법원에 이혼소송관련서류를

제출했던 날이었어요

이날은 커다란 대나무 빗자루를 두 개나 들고 할배랑 같이 오셔서

청소한다고 하시면서 대문 밖으로 비질을 하시는데 보는 제가

속이 다 뻥 뚫리는 것 같이 시원했거든요

 

이혼소송이 마무리 지어지는데 1 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이후에 제가 원하던 대로

아이는 제가 데리고 올 수 있었고

지옥같던 그 집 , 그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어요

 

오랜 세월 풍파도 있었지만

할매가 하셨던 걱정처럼 초년고생은 다 끝내고

지금은 좋은 사람 만나 걱정없이 편안하게 잘 살고 있는데

이제 할매는 제가 걱정이 안 되시는 거 같아요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찾아 오셨거든요

아마도 지금 잘 살고 있는 걸 위에서 보고 계시고

알고 계셔서 그런거겠지요 ?

그렇지만 만약에 한 번만이라도 제 꿈에 오신다면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어요

 

항상 사랑이 부족했던 손녀딸 있는 대로 봐주시고

탓하지 않으시고 마음으로 늘 걱정해 주셔서 고마웠고

그 덕분에 지금 좀 편안히 잘 살고 있다는 말씀과

할매 살아 계셨을 때 더 잘 모시지 못해서 죄송했다는 말씀을요

 

정말로 울 김경순 할매 너무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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