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밤이 되어 쓰는 우리 엄마 이야기

엄마는 9자말이를 해서 돈을 좀 벌 줄 알았는데 그게 어깨만 너무 아프고 눈도 아프고

돈은 별로 안되더래요. 그래도 노는것보다 낫다 싶어서 계속 하다가 뜨개방이란 곳을 

알게 되었다고 하네요. 뜨개방에서 실을 받아다가 옷을 떠서 가져다주면 얼마의 돈을 주는 

그런 곳이었나봐요. 9자말이보다 뜨개방이 훨씬 더 체질에 맞더래요. 

또 아빠도 (제가 아버지, 아빠 왔다갔다 하는데 그냥 편히 쓸게요.) 뜨개질 할 때는 

별 말씀을 안하더래요. 제가 생각해도 9자말이보다 뜨개질 하는 모습이 훨씬 이쁘긴 합니다. 

날이 좋은 날에는 (단독주택 2층에도 마당이 있었거든요.) 거기다 평상놔두고 뜨개질 하고 

날이 나쁘면 집 안에서 뜨개질 하고... 밭가는 것도 잘하던 우리 엄마는 뜨개질도 잘 했대요. 

 

엄마가 뜨개질에 한장 재미를 붙일무렵. 

시골에서는 큰외삼촌 딸이 친구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공장에 취직을 했대요. 

공장에서는 쉬는 날이 되면 여공들을 밖으로 내보내줬는데 조카가 고모를 만나겠다고 

먼저 서울에 와 있던 친구랑 같이 손을 잡고 영등포에서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고 왔더랩니다. 

시집와서 오랜만에 만나는 조카한테 밥을 집에서 해 줬는데 밥을 너무 맛있게 먹더래요. 

공장에서 주는 밥은 이상하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데 고모가 해 주는 밥이 맛있다면서 

밥을 그렇게 잘 먹고 가더랍니다. 공장 이야기를 해 주는데 방마다 조장이 있는데 조장언니한테 

잘 보이면 좀 편안한 우리가 아는 그런 이야기들 있죠. (빨간꽃 노란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그런 이야기들을 하더랍니다. 

 

어린 나이에 타지에 와서 돈 번다고 고생하면서도 멋내고 온 조카가 대견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해서 몇 번이나 손을 쓸어잡았대요. 오랜만에 만난 조카가 너무 반갑고 좋아서 가지고 있던 

엄마 돈을 다 털어서 줬다네요.  후에 조카는 큰외삼촌한테 이 이야기를 명절때 내려가서 했다가 명절날 지게 작대기로 맞았대요. 어디 결혼한 고모집에 가서 밥 얻어먹고 돈 얻어서 오냐구요. 

한번만 더 그 집에 가면 다리를 분질러 버린다고 했대요. 

 

엄마가 반찬을 좀 싸주겠다고 했는데 기숙사라서 반찬 놔둘 곳도 없다고 다음에 돈 모아서 친구랑 

같이 방 구하면 그때 달라고 하더랍니다.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러 걸어가다가 빵집이 있어서 

빵이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돈을 다 줘버리는 바람에 빵을 못사준게 너무 속상했대요. 

아래에 작은 집이 7채나 있는데 그거 하나 빼서 얘 살게 해주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하셨대요.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엄마가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더 빨리. 더 많이 모아서 일단 조카라도 

빨리 방 얻어서 기숙사에서 나와서 살게 해 주고 싶었대요. 사글세 방이라도 하나 얻으면

좀 나아지지 않겠나 해서요. 걔도 돈을 모으고 나도 모아서 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뜨개질해서 받은 돈들을 둥그런 받질고리에 담아뒀는데 돈이 모일 때마다 그렇게 기분이 좋더래요. 빨리빨리 더 빨리 돈을 모아서 친정식구들한테 옷이라도 한벌씩 사주고 싶고 나중에 친정에 놀러갈 때 뭐라도 하나 사다주고 싶어서 혼자 열심히 아낄 궁리를 했다고 해요. 밤마다 돈을 아끼고 모아서 

뭘 할까를 생각했는데 혼자서 밤마다 시골마을에다가 기와집을 백채는 지었다 부쉈다 했대요. 

 

단독주택 대문 위에 보면 요즘으로치면 에어컨 실외기실보다 조금 더 넓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다 파를 심어서 먹었더니 파값도 좀 아껴서 좋고 이 무렵부터는 

할머니도 장보러 가서 쓰는 반찬값 정도는 엄마가 알아서 관리하게 해주셔서 반찬값 아끼는데 

재미를 붙이셨다고 해요. 봉숭아 화단은 파헤쳐지고 그 자리에는 호박을 심었는데 조선호박이 

꽃 아래에 하나씩 열릴 때마다 마음 속으로 이건 2주 뒤에 된장찌개 끓여먹고 저건 그 다음 주에 

호박전 해서 먹고 저건 호박 구워서 양념장 얹어먹어야겠다. 이런 이름표를 마음 속으로 붙여주며 

길렀다고 해요. 또 한쪽에는 이런 저런 모종도 심구요. 그래봐야 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다 시장에서 파는 파치의 존재를 알아차렸대요. 외갓집은 정말 산 너머 산에 있는 시골집이라서 

생선은 멸치랑 동태밖에 구경을 못했는데 시장에 가니 파치 고등어자반이나 자반조기 같은걸 팔더래요.  머리 터진 조기, 꼬리 부분이 짖이겨진 고등어. 이런게 처음엔 징그러웠지만 사다가 잘라서 졸여먹으면 아무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 그런걸 자꾸 사다가 해줬다네요. 고모와 삼촌의 불만이 쌓여가는건 몰랐대요. 배부르게 밥 주는데 불만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대요.

 

그러다 김장철이 되었는데 그때는 김장배추를 배달시키면 배추 아저씨가 리어카에 배추를 싣고 

집집마다 실어다줬대요. 500포기 700포기씩 1000포기씩 김장 담그는 집들이 많았고 엄마도 할머니가 시골에서 고춧가루며 마늘이며 양념들을 이고지고 와서 김장을 담그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리어카가 지나가면서 흘리는 배추 이파리들이 많았대요. 리어카에서 떨어진거라 더러운 것도 아니었고 시골에서는 원래 그런거 다 주워다 먹었기때문에 엄마가 왔다갔다 하면서 부지런히 리어카에서 떨어진 배추이파리를 주워왔답니다. 그걸 깨끗히 씻어다 배추전도 부쳐서 세입자들한테도 나눠주고 배추국도 된장넣고 끓이고 했대요. 그리고 그걸 고모가 할머니께 말합니다.

새언니가 길에서 배추 이파리 주워다가 끓여주고 생선도 이상한 애들만 사다가 준다구요. 

 

할머니가 그 이야기를 듣고 엄마를 유심히 보셨대요. 이건 할머니 관점입니다. 뜨개질을 열심히 하길래 겨울 쉐타라도 하나 떠 주려나보다 했는데 겨울철이 다 되어가도록 쉐타 입어보라는 소리도 없고 등에 대보지도 않고 옷은 계속 뜨는데 사라지고 마당 꽃밭 다 뒤엎어서 호박 심고 상추 심고 장을 봐오면 마땅히 사 오는건 없는 것 같은데 어쨌건 상은 차리고 대문 위에도 파를 키우고 바지런히 뭘 하는데 얘가 돈을 모으는구나 싶으셨대요. 돈을 모아서 뭘 하려고 하는걸까 옷이나 구두 사는데 저 꾸미려고 돈을 모으나 하고 보니 그건 또 아니길래 고모한테는 먹고 죽는거 주는거 아니니 그냥 있으라고 했답니다. (다음에 고모 이야기도 한번 쓸게요. 고모는 엄마와 반대로 시집을 가서...ㅜ.ㅜ)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서 장 봐오던 엄마랑 할머니가 딱 마주칩니다. 

할머니가 시골집이랑 서울집을 오가셨는데 서울에 올라오실때는 늘 미리 연락을 주셨고 

그럼 엄마는 싹~ 준비 해놓고 모시러 나갔기때문에 그럴 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할머니가 서울로 

그냥 올라오신거죠. 장 봐온걸 가지고 부엌에서 펼치는데 현장을 들킨거죠. 대가리 터진 조기나 

떨이로 사 온 멍든 사과같은 것들. 할머니가 이게 뭐냐고 물으시는데 너무 부끄럽고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주저 앉으셨대요. 할머니가 돈을 모으니. 돈을 어디다 쓰려고 모으니.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냥 빨리 모으고 싶어졌다고 말하고 엉엉 우셨대요. 할머니가 돈을 빨리 벌려면 너희 시아버지 따라서 노름판을 가지 그러냐고 하시는데 (네.... 나중에 할아버지 이야기도 쓸게요. 할머니가 왜 쥬단학 아줌마를 팼는지. 할머니는 어찌 그렇게 서울과 시골을 옮겨다니며 할아버지 밥을 대체 누가 해 주는지!!)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가 무서워서 엉엉 울다가 조카 이야기를 하셨다네요. 

 

조카가 서울에 와 있는데 방이라도 하나 얻을 수 있게 돈을 좀 보태주고 싶다구요. 할머니가 단칼에 안된다고 하셨답니다. (차이나는 결혼 했을 때 82에도 종종 나오는 이야기지요.) 너가 조카가 몇이냐. 너희 친정에 식구가 몇이냐. 서울에 올라올 때 마다 다 그렇게 도와줄거냐. 그렇게는 못한다. 너도 알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들 하셨다고 해요. 반찬값 아껴서 친정에 뭐 해 줄 생각 말아라. 니 남편이 나가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며 벌어온 돈이다. 뜨개질도 하지 말아라. 그럴거면 시집오지 말고 너도 공장으로 갔어야 한다 이러시더래요. 이제 앞으로 그러면 혼난다. 그러지 말아라...... 그 날 저희 엄마는 한숨도 못주무셨대요.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아빠한테 이야기 하셨는데 아빠도 대답도 안하시고 그냥 주무시더래요.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세상 편안하게 자더래요. 

 

아침에 되어 다시 또 밥하러 나가는데 할머니가 새벽에 부르시더래요. 

너 9자말이 해서 얼마 벌었냐..... 9자말이 좀 할 만 하니.... 너 마음 안다.

근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 너가 친정 도와주고 싶으면 너가 벌어서 도와줘야지 떳떳하지 남편이 일해서 벌어오는 돈으로, 내가 내 자식들 먹이라고 준 반찬값 아껴서 모은 돈으로는 못도와준다. 돈이 돈을 벌게 만들어야 한다. 9원이 모이면 어떻게든 1원을 구해서 10원을 채우고, 10원을 만든 다음에는 20원 30원을 모아서 돈이 돈을 벌게 만들어야 한다. 너 돈 버는거 해볼래? 이러시더랍니다. 우리 엄마는 그 날 할머니한테 처음으로 돈 버는걸 배웠대요. 

 

바로 계 오야의 길.... 

그렇게 산골짜기 올리비아핫세는 계주의 길로 접어듭니다. 2층 양옥집 다세대 주택 집주인인 젊은 새댁. 남편 직장 탄탄하고 시댁 잘 살고 얼굴도 예쁜 우리 엄마는 튈 염려가 없는 최고의 계주감인거죠. 그렇게 엄마는 배추전을 구워 나눠줬던 자기 세입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계를 엽니다. 일단 1번으로 곗돈을 탄 엄마는 당당하게 조카가 사글세방을 얻는데 1등 공신이 되고, 조카 역시 그 다음 계원이 됩니다. 좀 깨~죠? 

 

그때 같이 계를 시작했던 계원 아줌마들은 지금도 연락 오가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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