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명절에 고기를 손으로 다지라던 시모

결혼해서 첫 명절에 갔더니 동그랑땡을 맡아서 해보래요

그런데 돼지고기 쇠고기 합해서 5kg 정도가 그냥 덩어리고기였어요

작은어머니들이 놀라시는데 첫번째가 아니 동그랑땡을 왜이렇게 많이 하느냐(전엔 그만큼 안했다는 말이죠), 둘째가 왜 고기를 안갈아왔느냐였어요

시모는 정육점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하시면서 얼버무렸고요

 

저한테 칼 두개랑 도마 하나를 주시면서 직접 다져볼래? 하시더라고요

단언컨대 세상 다정하고 미안한 말투였음

저는 뭐 해보겠다 하고 앉았는데.. 어깨빠지고 손목 나가는 줄 알았어요

 

다음 명절에도 또 덩어리고기가 있어요

작은어머니들이 또 아니 왜? 안다져왔냐 뭐라뭐라 하셨는데 또 정육점 탓을 하면서 얼버무림

 

저는 그렇게 3년 대여섯번의 명절에 고기다지는 역할이었어요

나중엔 손으로 다져야 맛있다더라면서 막 시킴, 저는 한 번 성질을 부림

그 다음 명절부터는 고기를 다져오시더라고요

 

제가 결혼 5년째인가에 아랫동서가 들어왔어요

첫명절에 갑자기 또 고깃덩어리 등장

저랑 동서랑 같이 있는데 약간 계면쩍어 하면서 시모가 또 도마랑 칼을 들고 나오시더라고요

저는 아무말 안하고 있고, 동서는 뭐랄까 좀 약아서 제 눈치만 보더니

조용히 남편이랑 방으로 들어가더라고요(이때 저 엄청 황당했음)

 

그런데 이제까지의 시모 캐릭터를 보면 동서 불러다 시켜야 맞거든요?

동서는 대놓고 생까는데 거기다대고는 아무말 못하면서

저한테는 오랜만에 니가 또 해볼래?

 

저 동서보고는 뭐라하고 싶진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반응이 맞으니까.

저 시모 앞에서 남편에게 고기 다지러 정육점 같이 가자고 하고 고기들고 나왔어요

가는 길에 한 마디도 안하고, 남편은 제 눈치보고 정육점에 가져갔더니

이 고기는 양념이 되어 있어서(언제 또 양념을) 기계에 넣을 수가 없대요

간 김에 남편 앞에서 명절에 주문이 밀리면 고기 가는 게 어려울 수 있냐고 질문했더니

주인이(시모의 주거래 정육점) 아유 무슨 말이냐고 기계에서 금방 갈려나오는데 그런 경우 없다고

 

집에 와서 그 고깃덩어리 소파에 집어던졌어요

(여기서 또 어른앞에서 어쩌고저쩌고 나올 꼰대 있겠죠? 집어던지는 거 본사람 남편밖에 없어요)

아직 애기지만 제 아이도 옆에서 보고 있고 어쨌든 큰소리 내고 싶지는 않아서 행동만. 

시모가 참 쭈구리인게 막상 제가 그렇게 나오니까 조용히 고기 가져다 본인이 다지더라고요

저는 그 날 음식 만드는 데 손도 안대고, 역시 먹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시집과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시가에 정신 소모 하지 않고

그 뒤로 10년 넘게 잘 살아가고 있어요. 

 

그 날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그동안 너의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이 나한테 하던 수많은 불합리를 참아 넘긴 건

너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고

너의 가족과 불화가 있으면 어쨋든 중간에서 너는 곤란할 것이니.

(입장바꿔 생각해서 아무리 제 피붙이가 잘못했어도 남편과 반목하면 저는 중간에서 힘들겠죠)

그냥 내가 무시하고 넘어가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랬을 뿐이지

기분이 안나빴던 게 아니지 않느냐고. 

 

그런데 동서 들어와보니 너무 분명하게 알겠다고. 

차라리 동서에게도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게 너의 어머니의 한계고 인성이라고 생각했을거라고.

(참고로 말하면 세간의 스펙으로만 따져도 동서와 저는 비교불가입니다. 저 전혀 꿀리는 거 없는 결혼했다고 자부합니다)

얘한테 어디까지 해도 되나 살살 간봐가면서 마음껏 무시하고 부려먹는 사람이란 거 확인한 이상

나는 그런 사람 상대하기 싫다

너를 그 정도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니가 여기서 나를 이해못하면 난 이 결혼생활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그 뒤로 한 번 82쿡에서 명절에 고기다지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더라고요

아니 이런 사람이 또 있나 해서 주의깊게 봤더니 댓글들이 참

뭐하러 그런 대접받고 사냐 내 딸한테 그러면 사돈 머리채잡는다

댓글보면서 3년이나 당했던 제가 참 비참해지더라고요

 

시가와의 관계가 힘든 건 일이 고되고 힘든 게 아닌 것 같아요

끊임없이 내 자존심을 짓밟고 내 위치를 강제로 주입시킨달까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 비참한 기억이라 오래 남고, 깊게 남는 것 같습니다. 

 

시모든 시부든 그쪽 식구들이 문제가 아니에요

자기 부인이 그런 대접받는 걸 좋게좋게만 넘어가려는 남편이 비겁해서 문제죠

그래서 저는 남편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시모와는 대화 자체를 안했어요

왜냐하면 남편 아니었으면 절대 내가 상종 안했을 종류의 인간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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