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펌, 초장문) 한동훈 연설은 왜 듣기 거북한가

조국의 당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정부의 임기 3년이 너무 길다. 그 전에 끌어내려야한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 두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3년이 너무 깁니다. 이재명, 조국 대표들은 그 속내를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이 많은데 어쩔래? 라면서 뻔뻔하게 나옵니다. 뻔뻔한 범죄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범죄자들을 막자는게 네거티브 같습니까? 아닙니다. 범죄자들이 우리를 지배하면 민생도 없고 정치개혁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 있었던 어떤 정치인들이 저 장관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왜 그렇게 정치적이냐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당신은 자기 직업을 왜 그렇게 비하하냐고. 정치인이 직업 아니냐고. 여러분, 정치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모두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정치 자체에는 죄가 없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하러 나왔습니다. 범죄자들을 이 중요한 정치에서 치워버려야합니다.

- 2024년 3월 28일 서대문구 유세 中

 

위의 연설이 며칠간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공당 대표가 "개같이"와 같은 비속어를 사용해도 되냐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그동안 이지적이고 엘리트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왔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강한 워딩은 한 위원장에게도 좋을 일이 없고, 듣는 국민의 입장에서도 유쾌할리가 없다. 공당 대표가 대놓고 비속어를 사용하다니.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일까. 우리의 정치 관행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다루려는게 아니다. 진지하게 한동훈을 명연설가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동훈 스피치>라는 책도 나왔지만 정작 한 위원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연설 스타일이 없는것이 문제이다. 더 나아가 한 위원장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그의 연설을 거북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마디로 말해, 역사적으로 마틴 루터 킹 같은 명연설가들은 당파를 뛰어넘어 울림을 주었는데, 한 위원장의 연설은 중도층은 고사하고 같은 당 내에서조차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아주 명확하다.

 

한 위원장 본인의 이미지가 나쁜 것도 연설의 호불호가 갈리는 원인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 위원장의 연설 스타일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한동훈이 그동안 한 연설을 모아서 어떤 부분에서 한동훈의 연설이 한계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고쳐야 연설 구색이라도 하는지 짚어볼 것이다.

 

1. 기승전결이 없음

한동훈 연설이 안 좋은 알파이자 오메가 이유는 한동훈이 뭐만 하면 이재명 탓을 한다는 점이다. 그것만 줄여도 반은 간다.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구조적, 내용적인 문제로 접근하고자 한다.

 

상습적인 이재명 비난을 제외하면, 한동훈식 연설의 가장 큰 문제는 연설의 줄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연설이나 글에 줄거리가 필요하나? 문학 갈래의 글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모든 글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 구조를 갖추어야 읽을만한 것이 된다. 개인적으로 "소설적 글쓰기"라고 하는 것인데, 단순한 정보글이면 상관 없지만 대중을 설득해야하는 연설문과 같은 경우 기승전결이 확고해야 좋은 연설이 된다.

 

연설문에 있어 기승전결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주제적 통일성을 부여한다. 두번째로 연설이 길어도 내용이 물흐르듯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연설 내용에 집중하게 된다. 세번째로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자연스럽게 절정 부분에서 터트리면서 메시지를 한결 강화할 수 있다. 좋은 예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이다. 이 연설은 처음에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인용하면서 노예 해방의 위대함을 말하고, 그것이 미국 흑인의 어려움을 해결해야하는 당위성과 연결됨을 말한 후, 절정 부분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말한 후,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인상깊은 마지막 말로 연설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한동훈 위원장의 연설을 보면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연설 자체에 어떤 흐름이나 맥락이 있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무작위적으로 한다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26일의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에서.

 

어릴 때 (...) 하고 싶은 게 참 많았습니다. 좋은 나라 만드는데, 동료 시민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것이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 만주벌판의 독립운동가들은, 다부동 전투, 인천상륙작전, 연평해전의 영웅들은, (...) 어려운 상황이란 걸 알고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불멸의 역사가 되셨습니다. // 인구 재앙이라는 정해진 미래에 대비한 정교한 정책, 범죄와 재난으로부터 시민을 든든하게 보호하는 정책, (...) // 우리는 지금 비록 소수당이지만 대선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하여 대통령을 보유한, 정책의 집행을 맡은 정부여당입니다. // 저는,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비례로도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동료시민과 이 나라의 미래만 생각하면서 승리를 위해서 용기있게 헌신하겠습니다. 

-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中

 

여러가지 멋진 표현은 많지만 그것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다보니 기본적으로 내용 전개가 엉망이다. 초반부에는 자신의 유년기 장래희망에 대해 말하다가, 그 다음에 이재명이 얼마나 극악한지 말하고, 뜬금없이 저출산 문제 말하고, 그 다음에 얼마나 국민의힘이 대단한지 말하고, 그 다음에 뜬금포 총선 불출마 선언. 전반적으로 틀이 갖추어져있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나열했다는 느낌만을 준다.

 

연설 내용에서 몇가지만 순서를 바꿔도 들을만한 연설이 될것이다. 자신의 어릴적 장래희망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고, 커서 그것이 정의구현으로 발전했다고 하고 (발단), 생각해보니 그걸 이루는게 정치였고, 그래서 힘있는 여당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전개), 문제는 이재명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방해하고 저출산도 있다는거고 (위기), 그걸 해결하기 위해 이러 이러한 점을 약속한다고 하고 (절정), 이를 위해 자신을 전폭적으로 믿어달라 (결말). 그제 서대문 연설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짧은 연설이지만 그 속에서도 각종 주제들이 연결된다라기보다는 그저 나열만 되고 있다. 순서만 바꿔도 꽤 괜찮을탠데.

 

 

2. 원론적이고 반복되는 문장

한동훈 연설의 또다른 문제는 문장이 원론적인 수준의 논의에서만 그치고 있고 그것이 또 반복되면서 전반적으로 연설의 수준이 높지 않아보인다는 점에 있다. 당장 문제의 "개같네" 연설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여러분, 정치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모두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아니, 그러면 정치가 안중요한가? 국회의원 선거 유세를 나와서 굳이 이런 것을 다시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나?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것처럼 들린다. 대학교 수학과 시간에 "여러분, 덧셈과 뺄셈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계산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라고 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참담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고이즈미 신지로의 연설능력에서 지적받는 부분과 본질적으로 같다)

 

더 심각한건 이런 알맹이 없고 기초 학력 수준만 되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 연설 내내 끝없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게임과 달리, 정치는 ‘누가 이기는지’ 못지 않게, ‘왜 이겨야하는지’가 본질이기 때문에 그 둘은 전혀 다릅니다.

-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中

 

문장 바로 앞에서 "게임과 달리"라는 표현을 써놓고서는, 정작 뒤에 가서는 "그 둘은 전혀 다릅니다"라는 쓰나마나한 표현을 써놓는다. 그냥 "정치와 게임은 다릅니다. 게임은 누가 이기는지가 중요하지만, 정치는 왜 이겨야하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썼어야한다.

 

지난 민주당 정부는, 거칠게 말해 자기 편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지기 싫고 귀찮아서 불합리를 방치했죠. 저는, 그건 명백히 억울함이 있는 사안이고, 국민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데에, 진영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결했습니다. 지난 민주당 정부는, 그러다가 배임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이유로 인혁당 관련자에 대한 빚고문을 방치했지만, 저는 국민의 억울함을 해결하려는 게 죄가 되면 장관인 제가 처벌받겠다는 말로 관계자들을 설득했습니다.

- 2024년 2월 27일 관훈클럽 연설 中

 

이 문장은 확장판이다. 일단 전체적인 구조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민주당이 이 점에서 피해자를 외면했다 ~ 그걸 내가 해결했다"라는 구조가 두번 반복되고 있다. "A가 B해서 C가 D했다 - 또한, A가 B'해서 C가 D'했다"라는 구조는 연쇄법을 의도한게 아니면 반복되는 무의미한 문장구조이다. "A는 B도 했고 B'도 했다. 그래서 우리 C가 D도 하고 D'도 했다"라고 쓰는게 나을 것이다. 또한 있으나 마나한 내용도 많다.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결했습니다" - 어떻게? 한동훈만의 해결책, 한동훈만의 아이덴티티가 있어야하지 않나? "여러분 정치는 중요합니다" "여러분 1+1은 2입니다" 수준의 뻔하고 감흥 없는 문장이다.

 

기본적으로 연설은 바쁜 사람들이 시간 내고 와서 듣는 것이다. 집약적이어야하고, 간명해야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에게 감명을 줘야한다. 명연설가들은 멋진 비유와 인용을 통해 이것을 가능케한다. 그런데 한동훈은 정 반대로, 의미 없고 감동도 없는 뻔한 문장을 길게 늘어놓고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저는 오히려 제가 비상대책 위원장으로 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 분들의 마음을 더 이해합니다. 그게 맞는 말이에요. 사실 그런데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그걸 모르시기 때문에 당연히 반대하는 게 정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024년 1월 10일 부산 연설 中)

 

 

3. 맥락 없는 부적절한 인용

그렇다고 인용을 잘 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언론들은 한동훈이 각종 연설을 인용하면서 한 위원장이 참 똑똑하다고 치켜세우고 있는데, 진짜로 똑똑하다면 절대로 인용해서는 안되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 위원장이 12월 비대위원장 취임식에서 처칠의 연설을 인용했다는 기사가 여럿 올라왔다. 발췌하자면 이렇다.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입니다. (...) 우리는, 상식적인 많은 국민들을 대신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 세력과 싸울 겁니다.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겁니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겁니다.

-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中

 

두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번째로 해당 인용이 연설문 내용과 조응하지 못하고 있다. 군소정당이 무리하게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면 그 인사만 둥둥 뜨는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한동훈은 잘 쳐줘야 B급인 연설에서 A급 연설의 일부를 인용하고 있다보니 전체적인 연설의 내용과 인용한 내용이 유리되고 있다. "공포는 반응, 용기는 결심"? 처칠 총리의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무엇인가? 풀이하자면 "인간은 위기를 맞닥트릴 때 공포감을 느낀다. 용기는 바로 나오지 않는다. 결심해야 용기를 얻는다"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해당 말은 영어 문장을 직독직해한 것이라서 의미도 불분명한 비문이며, 연설 내용에 잘 녹아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호남에서, 영남에서... 서울에서 싸울 겁니다." 운동권 특권 세력은 군대가 아니다. 나치독일과 영국이 전선에서 싸운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특정한 지리적 장소에서 전선을 맞대고 싸운다는 의미의 연설을 "586 투쟁론"에 옮겨놓으니 매우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두번째로 처칠 연설의 맥락을 보면 이 연설에 진짜로 들어가면 안되는 연설이다.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여러분은 총력전을 원하십니까? 총력전으로 윤석열을 무찌르기를 원하십니까?"라고 했다 치자. 내용 전달은 되었겠지만 기본적으로 괴벨스 연설을 재인용한거라 민주국가 수호라는 대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동훈의 처칠 인용도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처칠 연설은 영국이 독일에게 점령당하냐 마냐 했을때 했던 절체절명의 연설이다. 한동훈의 연설은 국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하며 한 야심찬 연설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에게 압도당해 200석을 내어줄 엄청난 위기 상황이라는 것일까? 그런 절망적인 연설을 왜 해야하나? 취임 연설은 희망의 연설이어야한다. 벤츠의 엔진을 마티즈에 붙인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인용이다.

 

적절한 인용은 연설의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마틴 루터 킹이 자신의 연설에 성경 구절을 삽입한 것이 좋은 예시이다. 그런데 한동훈은 상황과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문장을 어설프게 삽입하면서 연설을 더 없어보이게 만들고 있다.

 

 

4. 나무위키식 만연체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한동훈식 연설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교정시설이 설치되는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있는데, 교정시설 설치에 찬성하는 생각도, 반대하는 생각도 모두 ‘말이 되는’ 얘기들이기 때문이죠. 자신과 가족들이 살아가고 살아갈 터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양보하거나 타협하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평행선만 긋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2023년 10월 18일 거창구치소 개소 축사 中

 

이정도는 양반.

 

인구 재앙이라는 정해진 미래에 대비한 정교한 정책, 범죄와 재난으로부터 시민을 든든하게 보호하는 정책, 진영과 무관하게 서민과 약자를 돕는 정책, 안보, 경제, 기술이 융합하는 시대에 과학기술과 산업 혁신을 가속화하는 정책, 자본 시장이 민간의 자율과 창의, 경제발전을 견인하게 하면서도 투자자 보호에 빈틈없는 정책, 넓고 깊은 한미 공조 등 세계 질서 속에 국익을 지키는 정책,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는 원칙있는 대북 정책, 기후변화에 대한 균형있는 대응 정책, 청년의 삶을 청년의 입장에서 나아지게 하는 정책,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정책, 지역 경제를 부양하는 정책, 국민 모두의 생활의 편의를 개선하는 정책 등을 국민들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中

 

이게 한문장이다. 아무래도 한동훈이 미드를 많이보고 컬럼비아대 유학파이다보니 영어 문장의 특징인 만연체가 습관화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식의 만연체는 영어에서도 지양되고 만연체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도 몇몇 철학책을 보면 찾기가 어렵다. 수능 영어 지문도 이렇게 긴 문장을 한번에 잇지 않는다.

 

왜인가? 문장이 길면, 한국어의 문법적 특성상 주어와 술어가 멀리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주술 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비문이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나도 그런 실수를 종종 저지르는데 한동훈은 오죽할까. 또한 인간의 뇌는 문장 단위로 내용을 기억한다. 한 문장이 늘어지면 기억할 수 있는 정보는 적어진다. 문장은 단타를 쳐야한다.

 

문재인의 연설 작가인 윤태영이 쓴 책에서 문재인의 유명한 슬로건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초안은 "문재인이 만들 국가에서, 기회는 평등하며,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였다고 한다. 윤태영은 이것을 이렇게 고쳤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운 것입니다." 전자로 갔으면 이 말이 그렇게 오래 기억될 수 있었을까?

 

길게 쓰는 것만이 좋은 문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글의 맥락과 내용을 고려해 장단을 맞추는 것이 필요한데, 특히 핵심적인 문장은 여러개의 문장으로 분할하는 것이 좋다.

 

 

5. 어휘력 부족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선의만 있다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많이 모일 때, 비로소 강해지고 유능해 지고, 그래서 국민의 삶이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정당입니다. 국민의힘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께 헌신할, 신뢰할 수 있는, 실력있는 분들을 국민들께서 선택하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공직을 방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 특권의식 없는 분들만을 국민들께 제시하겠습니다.

-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中

 

해당 문장이 없어보이는 이유는 어휘력 문제도 한몫을 한다. 한동훈 보고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정작 영어는 비슷비슷한 기초어휘를 반복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대명사가 그렇게 발달했다. 이 문장을 보면 사용되는 어휘가 한정적이다. "강해지고" "유능해지고" "나아지게" "다양한" "헌신할" "신뢰할 수 있는" 기본적인 단어이긴 하지만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진부함이 느껴지는 표현이다.

 

"방탄"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프로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사는 신사답게 말하는 법. 방탄이 아니라 "면책특권" "면피" "법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등의 어휘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변주의 예술이다. 어떤 어휘를 그대로 쓸 수도 있지만, 끝 없이 같은 표현으로 바꾸어서 내놓을수록 곱씹는 맛이 난다.

 

그리고 공당 대표가 "개딸 전체주의" "586 운동권 청산"이 뭔가? 품격 없는 어휘이다. 여기서는 내가 엘리트주의자 행세를 해야겠다. 엘리트라면 무릅 개똥을 보고도 황금이라 표현할 수 있어야하는 법이다. 개딸 전체주의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진 동료시민을 공격하는 야수"로 표현할 수 있다. 너무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면 생각을 뒤집에서 긍정적인 표현을 쓰면 된다. 개딸 전체주의를 지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뜻을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을 지향한다"라고 쓰면 된다.

 

위의 연설 내용을 이렇게 고칠 수 있다. 일부 단어를 고치고 문장을 끊은 것이다.

 

[수정본] ▶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사람들이 뭉친 당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일수록 당은 더 강건해지고, 더 유능해지고, 국민의 삶을 개선할 능력을 더 갖출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하나가 아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천할 것입니다. 국민을 위해 한몸 바칠 준비가 된 사람들을 공천할 것입니다. 실력이 충분히 검증된 사람들을 공천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 여러분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을 공천할 것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저희는 공직을 면피 용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권의식이 없고, 법 앞에서 당당한 사람들만을 국민들께 내놓겠습니다.

 

 

6. 피상적이고 겉도는 내용

우선 한동훈 연설의 내용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엘리트주의적인 연설을 한다는 점이다.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그의 연설에는 국민이 없다. 일반적인 삶을 사는 국민이 없다. 원론적인 얘기 혹은 이재명 얘기밖에 없다. 그의 연설을 보면 이재명과 조국이 이러이러해서 문제인데, 민주주의는 이래야하고, 정부여당이 잘하겠다는 말을 한다. 무엇이 사회적 문제인지, 무엇을 고쳐야하는지에 대해 대중과 감응하지를 못한다.

 

국민의힘은 동료시민들의 일상 속 존재하는 격차를 해소하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국민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교통, 안전, 문화, 치안, 건강, 경제, 의료 등 우리 사회 깊숙이 존재하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하고 줄이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격차 해소는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지역 간 이동에 불편을 주는 교통격차,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하는 의료격차, 어디에 살든 안전한 환경이 보장받는 치안격차, 이런 것들은 국민의 일상에서 이뤄지는 현실 문제입니다.

- 2024년 2월 27일 관훈클럽 연설 中

 

불평등에 대한 연설이다. 다른 연설과 비교해보자.

 

열흘 전, 레이건 대통령은 이 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요즘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불행하고 심지어 자신과 가족, 미래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걱정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두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걸까요. (...) 엄연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이 빛나는 도시의 화려함과 영광을 공유하고 있는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도시가 있습니다. 빛나는 도시에는 이면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주택담보대출을 갚을 수 없고,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더욱이 그러합니다. 학생들은 필요한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고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의 꿈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만 보아야합니다. 도시의 "이 지역"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가난한 사람이 많고, 곤경에 처한 가족이 많으며, 도움이 필요하지만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더 나쁜건 그 도시에는 지하실이 있고, 그곳에는 추위에 떨고 있는 노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도시의 거리, 배수구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들도 있다는 점입니다. (...) 대통령은 이 나라가 단순히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라기보다는 "두 도시 이야기"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 1984년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 "두 도시 이야기" 中

 

이 연설과 비교해보면 한동훈 연설이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점이 명확해보인다. 한동훈은 격차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어떤 격차인가? 의료는 어떤 부분에서 격차가 있는가? 어떤 부분에서 교통 격차가 있는가? 그에게 격차는 단순히 말 뿐인가? 사례를 들고 와라.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의 연설은 사실 기본중의 기본에 가깝다. "빛나는 도시의 이면에는 또 다른 도시가 있다. 학생은 이러이러하고, 노인은 이러이러하고, 부모는 이러이러하고, 더 나쁘게도 노숙자들은 이러이러하다. 레이건, 네놈은 이걸 못보는거냐?" 이 연설을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보이는데 한동훈 연설은 "그게" 없다보니 사회적 문제를 "피상적으로만" 다루는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한동훈이 지적하는 여러 사회적 문제나 실태 등이 원론적인 부분에서만 머무름으로서, 일반 국민이 공감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진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연설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연설은 교과서 읽기가 아니다. 연설은 국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반영함으로서 국민들이 공감하는 내용을 담아야하고, 이것이 연설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왜 그걸 모를까?

 

 

7. 자기 할말만 한다
청중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건 연설 구조, 내용의 문제라기보다는 연설 그 자체의 문제이므로 짧게 언급하겠다. 얼마 전에 야탑역 가서 이광재 후보 연설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런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여러분, 제가 간단한 수학 문제를 내겠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여론이 60%나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 100점 만점에서 60점 빼면 몇점입니까? (40점이요!) 윤석열 정부의 점수가 몇점이라고요? (40점이요!) 여러분, 40점이면 학교에서 성적이 어떻게 됩니까? (낙제요, 낙제!) 맞습니다, 낙제정부입니다! 그런데 40점도 많다고요? 그러면 여러분, 윤석열 정부 몇점짜리 정부입니까? (빵점이요!) 이 빵점자리 정부, 쫓아내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 아래에 있는 안철수는 어떻게 해야한다고요! (철수시켜야합니다!) 맞습니다 철수시켜야합니다! 이 이광재는 어디로? (국회로!) 안철수는? (집으로!)

 

이걸 보니 이광재가 왜 요즘 여론조사에서 이렇게 선방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잘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결국 선거 유세는 후보자 정치인과 국민과의 소통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정치인이 국민에게 표를 구걸하는 것이다. 스님들이 동냥할 때 허리 꼿꼿이 피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돈 내놓으라고 하면 쫓겨난다. 기독교 목사님들도 헌금 걷을 때는 하나님 아버지를 위한 것이라며 굽신거린다. 무엇인가에 헌신하고, 진심으로 될 때는 허리가 자연스럽게 굽어진다. 이광재도 파스 20개 붙이고 선거운동 하고 있다.

 

그런데 한동훈 이 사람은 당최 유세를 할 때 허리 굽히는걸 본 적이 없다. 청중과 소통하지도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 질답도 안하고, 손가락질만 하고 있고, 아무래도 유세를 잘 안나가본 티가 많이 난다. 그런데 유세는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 이상 좋은 연설이 나올리가 없다.

 

 

결론: 총체적 난국

글쓰기에는 여러가지 스타일이 있고 연설을 위한 글쓰기는 소설을 위한 글쓰기 혹은 주장을 위한 글쓰기와는 또 다르다. 내가 이 방면으로는 소질이 없어서 누구를 지적할만한게 되나 싶지만, 어찌되었거나 정치적 목적의 연설문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1. 기승전결이 확고하고, 스토리텔링이 있어 듣는 사람이 편안한 것.

2. 최대한 간명하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으로 표현한 것.

3.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높이는 것. 국민이 듣고 싶은 소리를 하는 것.

 

문제점은 한동훈의 연설에서 그 어떤 부분도 이런 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연설에는 깊이가 없다. 모든 내용이 피상적인 수준에서 겉돌고 있다. 그의 연설에는 정돈됨이 없다. 그의 문장 하나 하나는 지나치게 길며, 어휘는 신중하게 선택되지 못해 거칠다. 그의 연설에는 굽힘이 없다. 자신이 잘났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광고 목적의 글에서 볼 수 있는것이지 정치 목적의 글에서는 절대로 추구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라는 것이다. 나쁜 주제는 그 어떤 글 기술로도 덮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 기술로는 나쁜 것을 잘 덮을 수 있겠지만 나쁜 생각, 나쁜 행동, 나쁜 역사는 글기술로 덮을 수가 없다. 어떠한 글에는 언제나 방향성이 있어야하고, 그 방향성은 원칙과 상식을 내세우며, 이성을 지향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제대로 홍보할만한게 없다. 경제는 엉망, 사법 정의는 고속도로와 함께 꺾였고, 그렇다고 외교를 잘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어떤 연설로 특정 대상을 옹호하려면, 최소한 그 대상이 나름 장점이 있어야한다. 하다못해 똥덩이도 거름으로서는 훌륭하기 때문에 <강아지 똥> 같은 좋은 글도 나왔는데 이 정부는 당최 써먹을 곳이 없다. 한동훈 본인의 연설 능력이 처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동훈이 보호해야하는 이 정부의 수준 자체가 똥만도 못하기 때문에 도대체 좋은 연설이 나올 수 없는 총체적인 난국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개같은" 연설을 나름 볼만한 것으로 자체 수정해보았다. 부록이라고 봐주시면 좋겠다.

 

[원본] 조국의 당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정부의 임기 3년이 너무 길다. 그 전에 끌어내려야한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 두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가기까지 3년이 너무 깁니다. 이재명, 조국 대표들은 그 속내를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이 많은데 어쩔래? 라면서 뻔뻔하게 나옵니다. 뻔뻔한 범죄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범죄자들을 막자는게 네거티브 같습니까? 아닙니다. 범죄자들이 우리를 지배하면 민생도 없고 정치개혁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 있었던 어떤 정치인들이 저 장관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왜 그렇게 정치적이냐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당신은 자기 직업을 왜 그렇게 비하하냐고. 정치인이 직업 아니냐고. 여러분, 정치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모두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정치 자체에는 죄가 없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하러 나왔습니다. 범죄자들을 이 중요한 정치에서 치워버려야합니다.

 

[수정본] ▶ 제가 법무장관을 맡았을 때의 일화입니다. 한 국회의원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장관, 왜 그렇게 일을 정치적으로 해요? 저는 답했습니다.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어디있나요? 민생을 살리는 것, 개혁을 이루는 것, 모두 정치가 아닙니까? 국민 여러분, 정치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정치는 민생의 다른 이름입니다. 정치는 개혁의 다른 이름입니다. 정치는 우리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진짜 문제는 정치가 아닙니다. 여러분, 진짜 문제는 정치를 빙자해 자신의 죄를 감추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죄인은 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을 빙자한 무뢰한입니다. 이 범죄자들이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이권 싸움일 뿐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긴다면 민생도 없고, 개혁도 없고, 미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미래를 원하십니까? 아니라고요? 아니라면 저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국민의힘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저와 함께, 정부여당과 함께, 국민의힘과 함께 정치합시다.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 국민 여러분, 정치를 좀먹는 저들을 몰아내고, 진짜 정치인들을 4월 10일 국회로 보내리라 약속해 주십시오. 이 한동훈과 함께, 국민의힘과 함께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열어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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