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심하게 길어요ㅠ 제가 봐도 너무해요. 나눠서 읽으셔도 되고 읽다가 때려치셔도 원망 안해요^^
82에 얼마나 긴 글이 올라가나 실험해 본달까
한달동안 쌓인 수다거리 푸짐하게 풀어봅니다
어느새 2024년의 1/4이 지나고 4월이 되었는데 시간이 참으로 뭉텅뭉텅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시국이 그러한지라 어수선하면서도 안테나를 꺼놓을 수 없는 요즘이지만 또 다들 각자의 일상은 그것대로 돌아가고 저 역시 오래전부터 준비하던 스페인 여행을 가게 되어 3월의 후반부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고 왔습니다 (시차적응을 못해서 글쓰다 날 샜네요 ㅠ)
1. 책 이야기
3월 첫 열흘 정도는 책을 일다가 이후는 여행 준비와 더불어 가기 전 일처리 할 것들이 많아서 책이 뒤로 밀렸어요
결국 세권 밖에 못 읽었는데 두권은 앞서 읽은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로, 한권 읽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아쉬움을 꽉꽉 채워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과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예요. 물론 첫 책들만큼 여전히 좋았어요
세번째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인데 이게 초대박입니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제겐 너무 어렵고 벅찬, 노벨상 수상작스러운 사상이나 거창한 무엇을 담은 책이 아닐까 하여 겁먹고 피해왔던 책이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넘 재미있다고 강추를 해서 속으로 '재미있다고?'라고 여러번 반문하며 갸우뚱했지만 책 많이 읽는 친구를 믿고 빌려왔더랬죠 ^^
헌데 이게 웬일! 첫장을 넘기고 두번째 장부터 훅 빠져서는 어디 만화방에서 컵라면 시켜놓고 킥킥거리며 만화책 보듯 혼자 빵 터지고 킬킬 웃다가 넘 웃겨서 옆에 책상도 쳐가며.. 이게 노벨상 수상작에게서 가능한 일인가?하며 계속 읽었어요. 밥먹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죄송)
고대 그리스 신화를 읽는듯도 하고 할머니가 해주시는 뻥이 더해진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고 ㅎㅎ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옛날 마술사가 뿅 하고는 입에서 스카프를 끊임없이 꺼내는데 한장의 스카프가 아니라 색색의 수많은 스카프가 끝이 서로 묶여 잡아빼는 족족 줄줄줄 나오는, 한번 나온 뒤론 마지막 페이지를 덮어야 끝이 나는 마술 같은 책? 혹은 이 책은 한권이 긴 하나의 문장이라는 생각?
보면서도 계속 우와~를 연발하면서도 읽는 내내 제 감탄과 관심이 꺼지지 않고 도리어 황홀하게 만든 신기한 책이었어요
그 재미를 지켜준데에는 안정효씨의 번역이 큰 역할을 했을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 책은 저에게 2024년을 기억하게 할 책이 되었네요 ^^
2. 여행 이야기
사실 스페인 여행의 시작은 책이었어요
5년전 쯤에 이탈리아를 다녀와서는 일편단심 이탈리아 사랑만 외치고 살던 저에게 어느날 아들아이가 영어책 한권을 추천했는데 스페인 국민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The Shadow of the Wind> 였어요. (<바람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걸 오늘 검색하다 알았네요)
처음 들어봤지만 스페인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였고 더구나 아이가 추천한 책이라 한번 읽어보자 했죠
스페인 내전 후 암울한 시기에 주인공을 따라가며 두 이야기가 수평으로 촘촘하게 짜여진 미스테리, 로맨스, 스릴러, 추리, 드라마,.. 열거할 수 있는 모든 게 들어있는 소설이예요. 게다가 문장은 얼마나 시적이고 아름다운지...
바르셀로나가 배경인데 실제로 있는 거리와 공원, 성당 등이 나와서 책에 나온 곳들을 그대로 따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었죠
그때부터 스페인데 대한 관심도 생겨서 이것저것 알아보며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작년 가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고는 생애 첫 패키지에 3일 개인 자유 여행을 추가해서 총 12일 다녀왔고 결론은 좋은 여행 멤버들과 평생 간직하고픈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했어요^^
이제 저에게 스페인 해시태그는 #소금 #풀맛올리브유 #오렌지향기 #duende #가우디천재 이고 여행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페인 다녀오신 분들도 많지만 아직 아닌 분들도 많고, 또 같은 곳을 가도 개인적인 경험과 느낌, 취향은 다르니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읽어주셔요
이번 여행은 총 7명이 갔고 (중년 커플, 중년여성친구 둘인 팀, 신혼부부, 저 - 스페인에서는 내내 가족이냐는 소리 들으며 다님 ㅎㅎ) 일정은 아침 9시 반 정도에 시작하고 종일 투어는 5시 정도에 끝나거나 오전투어 후 점심부터 자유시간이든가 해서 자유시간은 순전히 각자 알아서 보내는 세미패키지였어요. 숙소가 다 시내 한가운데라 아침 저녁으로 널널한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요
스페인 가면 뻔하게 구경하는 것들을 빼고 뒷얘기를 주로 적어봐요
1) 마드리드, 회색 석조건물 가득한 시크한 도시
~ 첫 도착지 숙소가 프라도 미술관 바로 앞이라 아무 때나 돌아다니기 좋았어요. 도착한 날 밤에도 멤버들과 솔 광장이며 마드리드 뒷골목을 골고루 훑고 다니고 아침에도 해뜨자마자 저 혼자 프라도 미술관 뒷쪽 Park Retiro에 가서 맑은 공기 마시며 멋지게 다듬어진 정원과 숲, 옛 궁을 거닐며 아침산책을 한시간 정도 했는데 그 상쾌하고 여유로움이 참 좋더라고요
~ 다음날은 톨레도와 세고비아에 다녀왔는데 오래된 돌을 보면 눈이 뒤집히는 저는 톨레도의 중세도시와 세고비아의 로마시대 수도교, 길과 벽과 집이 다 돌인 그곳에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어요 ㅎㅎ 골목을 도는 족족 바닥부터 하늘까지 돌 돌 돌 ㅋㅋ, 마지막에 해질녘 꼭대기에 있는 톨레도 파라도르 호텔에서 커피 한잔 하며 내려다보는 톨레도는 그야말로 그림... 높은 곳에 위치해 강이 도시를 휘감고 흘러 천연 요새나 마찬가지인 입지 때문에 스페인의 수도 역할을 맡아왔던 톨레도... 성당이 한가운데 위치해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그 둥그런 도시 뒤로 지평선이 길게 그어진 드넓은 땅 위로 해가 지고 붉은 색이 물드는 장관을 직접 보니 뭉클. 세고비아 수도교 옆 유명한 식당에서는 새끼돼지 통구이를 먹었는데 여기서부터 저의 감춰진 돼지고기 취향이 드러나기 시작 ㅎㅎ 이제껏 고기 못먹는줄 알고 삼겹살도 못먹고 살아왔는데 ㅠㅠ
~ 프라도 미술관 입장시 티켓을 받았는데 뒷면에 미술관 소장품에 나오는 여러가지 손만 따낸 그림이 티켓마다 다르게 있었어요. 각자 다른 손그림을 들고 둥그렇게 모아 사진을 찍었더니 표의 손그림 주인 뿐 아니라 표를 든 손의 주인찾는 재미도 더해진 특별한 사진이 되었죠^^
2) 세비야,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고속열차를 타고 전형적인 도시인 마드리드에서 세비야로 오니 갑자기 야자수 등장하며 롯데월드에 온듯 온갖 꽃과 색색의 궁전들과 성당과 말이 끄는 마차까지 ㅎㅎ 호텔이 광장 바로 앞이었는데 동네 가로수가 전부 오렌지 나무 @@ 쨍한 주황색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리고 하얀 오렌지꽃에서 향기가 향기가 ~~~ (정신 혼미) 2박3일 있는 동안 오렌지꽃 향기를 원없이 맡았지만 맡아도 맡아도 계속 맡고 싶고 꽃 속에 파묻히고 싶었어요. 오렌지 향수도 팔았지만 꽃향기를 못 따라감
~ 플라멩고 공연 (여기서 저의 인생 공연을 봄) 작은 무대를 두고 3면으로 둘러싼 1,2층 객석이 있는 작은 공연장, 가볍게 술이나 스낵을 먹으며 댄서와 기타연주와 노래를 순서대로 번갈아 들으며 한시간 반 정도 관람을 했는데 보면서 푹 빠져 어떤 춤을 보고서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뜨겁고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딴생각 안하고 매번 댄서가 바뀔 때마다 온 세포들을 다 깨워 진심으로 관람. 이후 플라멩고 보러 스페인에 꼭 다시 오겠다 결심 (나중에 호텔 프론트 직원과 대화하다 나 플라멩고에 푹 빠졌다,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져 힘들었는데 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게 바로 'duende'라고... 스페인어로는 요정이란 뜻인데 또다른 뜻으로 한껏 고양된 감정 상태, 영혼이 담긴 지극한 쾌락의 순간을 가리키는 단어라며 플라멩고 춤과 연결해서 자주 쓰는 표현이라고 알려주더라고요)
~ 세비야 성당에서의 미사 (세비야 성당이 코앞이라 오전 일정 시작하기 전에 멤버들끼리 성당 미사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천주교 신도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지만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성당 미사에 참여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것 같아서... 다음날 아침 일찍 가서 미사를 드리는데 그 큰 성당에 울리는 파이프오르간과 합창 소리도 경건했지만 미사 도중 한번씩 성당 높은 공간을 가르며 나는 작은 새들의 새소리가 유난히 가슴을 파고 들었어요. 드높은 공간이 만들어내는 울림이 사람의 마음에 물결처럼 퍼져서 몇번을 울컥했던지.. 개신교지만 같은 하나님이니 감사와 돌아보는 마음을 드리고 왔어요
~ 다음날 오전 일정을 마치고 자유시간. 자전거 좋아하는 제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호텔 옆 자전거점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 달렸어요. 과달키빌 강가도 달리고, 다리 건너 옆동네도 가보고, 세비야 시내도 다니며 예쁜 상점 구경도 하고... 자전거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또 다르잖아요. 강가에 잠시 세워놓고 강물멍도 하고 붉은 노을 내려앉는 하늘도 보고...
~ 인상깊었던 로에베 직원 ( 자전거를 돌려주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호텔 앞에 로에베 매장이 있더라고요. 한국에선 따로 가본 적 없는데 지나가는 길이니 한번 들려봤죠. 이것 저것 메보고 들어보다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여직원이 자긴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영어로 얘기하더라고요. 그러더니 '킹더랜드'아냐고 거기 남주 좋아한다고 하길래 보진 않았지만 들어는 봐서 이준호 말하냐고 했더니 꺄~ 하면서 마구 흥분, 넘 좋아한대요. 대화 분위기상 저도 좋아한다고 맞춰줬더니 이번엔 로에베 홍보대사 지민을 아냐고 해서 bts 중에 저의 최애 멤버라고 하니까 또 꺄~ 하면서 둘이 하이파이브 하고 난리 ㅎㅎ 넘 멋지지 않냐, 춤이 예술이다, 옷입은거 목걸이 한 것도 여자보다 멋있다 하면서 둘이 하도 방방 뛰어서 옆에서 남직원이 뭔일인가 쳐다봄. 아마 저 직원은 물건 안팔고 뭐하나 했을지도... 결국 저는 그냥 나왔지만 그 직원은 저랑 그 두 남자 얘기한 것만으로 좋았는지 활짝 웃으며 내일 또 오라고 함. 한국이 예전의 한국이 아니네요 ^^
3)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이 다한 곳
~ 론다에 들려서 누에보 다리를 보고 열심히 달려 밤에 도착, 멋진 야경을 돌아보며 밤골목을 누비다가 식당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다시 만난 돼지고기! 이베리코 돼지고기와 고추튀김의 환상 조합! 처음에 멤버들 만나 저 고기 안 먹어요, 못 먹어요 했던 저였는데 이제 시간이 갈수록 저는 거짓말장이였다는 것만 확실해지는 꼴 ㅠ 그러거나 말거나 돼지고기 맛있다며 냠냠 먹고 고추튀김도 한입에 쏙쏙 넣고... 아티초크며 버섯이며 구운 아보카도며 향신료 넣은 콩으로 만든 요리까지 뭐든 맛있게 먹는 제 모습에 저도 놀람 ㅎㅎ (제가 하도 맛있게 먹고 스페인 가는 곳마다 좋아하니 멤버들이 '마드리드 댁'이란 별명을 붙여주며 한국 가지 말고 남편을 스페인으로 초청하라고 ㅎㅎ)
~ 길거리를 다니는데 아니 명화 속 아기 천사 얼굴을 한 아가들이 여기저기 보이네요. 더 가다보니 그림 속 처녀의 고운 얼굴과 몸을 가진 젊은 여성이 지나가고 명화 속 곱슬머리 잘생긴 청년이 서빙을 하고 그림 속 여신을 닮은 얼굴과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이 지나가고.. 아 그림 속 사람들이 상상이 아니라 실제 있던 사람들을 보고 그린거구나 깨달음 ㅎㅎ
~ santa fe (그라나다 지방의 15세기 군사 캠프 이름), las vegas ( la vega는 평원이란 뜻의 스페인어, 복수가 las vegas)가 스페인에서 온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됨
~ 어느새 친한 사이가 된 멤버들끼리 일행인 신혼부부가 허니문베이비를 낳으면 이름을 뭘로 지을지에 대해 갑론을박. 신랑이 스페인을 따서 '페인'이라고 짓는다고 하자 한글로 하면 '폐인'으로 들리는데? 영어로 해도 'pain'인데 에이 안돼~라며 말리고, 세비야의 '비야'는 어떠냐 아니 한비야가 생각난다, 바르셀로나의 '로나'가 좋겠다고 하니 코로나의 '로나'도 있다 등 별거 아닌 얘기로 즐거워하는 멤버들 덕분에 많이도 웃고 다녔어요 ㅎㅎ
4) 바르셀로나, 천재 가우디의 도시
~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 남짓 후딱 날아 바르셀로나 도착, 따뜻해서 반팔도 땀날 지경으로 다니다 바셀에 오니 갖고온 경량패딩을 꺼내입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달달 떨며 호텔에 도착하니 앞집이 롤렉스, 옆집이 티파니, 건너편 집이 루이비통, 그 옆집이 구찌, 프라다... 묵은 호텔 중 가장 화려한 곳에 위치했네요. 줄줄이 이어지는 명품샵을 매일 지나치다 보니 이젠 그냥 그렇다고 다들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 ㅎㅎ
~ 명품샵 뿐 아니라 까사 밀라와 까사 바뜨요도 옆집이라 밤이 늦었지만 (스페인 사람드에겐 초저녁) 나가서 야경사진을 찍고 우리도 스페인 사람처럼 먹어보자 해서 밤 11시가 훌쩍 넘었는데 유명하다는 꿀대구 집에 멤버들과 같이 감. 뭘 시킬지 스페인어를 몰라 파파고 돌려가며 기껐 찾아놨더니 웨이터가 나타나서는 "꿀대구?"하길래 우리들은 "뭐야?!! ㅎㅎ"하며 허무했다는... ㅠ 곧이어 "매운 새우도 맛있어. 한국 사람들 좋아해요. 맛조개도 많이 시켜요. 그건 쪼금이라서 한명 밖에 못 먹어요" 뭐 그런 한국어 메뉴 설명을 줄줄 해서 한국사람들이 지독히도 많이 왔다 갔구나.. 생각 ㅎㅎ
~ 때가 부활절이 코앞인데다 까딸루냐 지방 전통축제가 겹쳐서 우연찮게 좋은 구경을 많이 했어요. 어느 성인을 기리는 축제도 보고, 거인인형과 동물인형이 줄줄이 나오는 퍼레이드도 보고, 다같이 으쌰으쌰 손잡고 춤추는 곳에서 같이 들썩이고 악대들과 인형분장한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거기까진 좋았는데 광장에 있던 삐에로 둘이 v자 그리며 같이 사진 찍길래 축제 행렬 참가자인줄 알고 냅뒀는데 바로 손내밀며 돈달라고... 것도 5유로나.. 제가 속으로 '미쳤음?'하며 돈 없다고 했더니 거슬러줄 잔돈도 있으니 큰돈도 괜찮다고.. 돈 없다고, 친구들과 같이 와서 빨리 가봐야 한다고 하니 친구들에게 돈 받아오라고.. 그래서 정색하고 없다고, 간다고 말하고 돌아섰더니 뒤에서 f 욕함. 이번 여행의 유일한 옥의 티!
~ 저녁에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돌아보고 바닷가 식당에 갔는데 펄펄 뛰어오를듯한 생선과 해물을 보여주는데 싱싱함 그 자체! 늦은 점심이 소화가 다 안되어 큰 건 못 시키고 야들야들한 오징어 튀김과 각종 해산물을 넣은 국수 빠에야인 피데우아를 시켜 먹었는데 아.. 스페인 음식은 먹어도 먹어도 맛있네요. 올리브유와 소금만으로 간을 해서 맛이 넘 깔끔하고 고소함. 재료맛을 두배로 살리는 법은 양념이나 뭔가를 잔뜩 넣는게 아니라 덜 넣을수록 맛있다는 걸 느낌. 소금 자체가 깨끗한 맛에 달달함. 스페인 음식이 맛있는 비결이 소금이라고 나 혼자 결론내림. 물론 풀맛나는, 쨍하게 아린듯하나 먹으면 전혀 기름지지 않은 고퀄의 올리브유도 당연히 한몫 하고. 낮에도 돼지고기와 피로 만든 소세지를 먹었는데 소세지는 입도 안대고 고기도 안먹던 제가 그 소세지를 넘 맛있다고 극찬하며 계속 잘라먹는 신기한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ㅎㅎ
~ 그리고 가우디.. 가우디는 그냥 천재, 보물.. 더이상 할 말이 없어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갔을 때 스페인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이곳이로구나.. 생각했고 내부로 들어가서 천정을 보는 순간 머리 속에 불꽃이 팡팡 터지는 느낌. 이유없이 펑펑 울고싶어지고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아니 한달이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별세계를 만든 사람이네요. 구엘공원과 까사 바뜨요에서도 가우디의 마음엔 어떤 것들이 있었길래 저런 작품들이 나왔나 그저 놀랍고 놀랄뿐...
~ 이후 개인 여행을 하면서 방문한 피카소 미술관 (작은듯 하지만 그 안에 작품 수는 매우 많아서 보고 나서 탈진할 뻔.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한 큐비즘의 작품들은 많지 않지만 그가 화가로서의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아서 다른 의미로 피카소를 알게 된 곳. 특별히 스페인 국민화가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시녀들)'이란 그림에 빠져 1년여동안 그 변형작만 수십점 그려낸 피카소의 작품들이 한가득인데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 원작을 보고나서 보니 눈에 들어오는게 훨씬 많아요. 귀한 배움의 시간이었어요
~ 그리고 앞서 소개한 <The Shadow of the Wind> 라는 책에 나온 곳들을 다 걸어서 짚어봤어요. 주인공이 살던 집, 짝사랑하던 여인이 살던 공원 앞 아파트, 병원, 성당, 주인공을 쫓던 남자가 새벽 어스름에 서있던 길가 가로등,... 행복했어요 ^^ (소원 성취!!!)
~ 혼자서 끼어간 몬세랏&시체스 당일 투어는 비가 왔지만 그래서 더 신비롭고 몽환적이었어요. 가이드가 혼자 온 사람은 저 하나라고 뮤지엄티켓도 그냥 주고 사진도 찍어주셔서 운좋은 날이라 생각하고 구경 잘했죠. 그리고 시체스 해변가 골목을 혼자 돌아다니는데 어느 과일가게의 베리 믹스가 넘 맛있어 보이는거예요. 목도 마르고 해서 그냥 먹어도 되는지 물어봤는데 주인이 영어를 못한다며 건너편에 가서 누구를 불러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이거 그냥 먹어도 되냐, 씻어야 되냐 물었더니 자기가 씻어준다며 가져가서 씻어왔어요 ^^ 와 여긴 먹고싶다고 하면 씻어주는구나 하며 물방울 맺힌 싱싱한 블루베리, 라스베리. 블랙베리를 톡톡 씹어가며 맛있게 먹고 돌아다녔어요
~ 클래식한 오페라하우스 리세우 극장에서 본 헨델의 메시아는 극장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매우 현대적인 무대와 세트, 의상으로 보여준 특이한 공연이었고, 마지막날 환한 햇살에 푸른 하늘이 그림같이 예뻤던 몬주익 언덕과 미로 미술관, 언덕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시내가 좋았는데 한국에 오니 미세먼지 290대여서 눈앞이 캄캄...
~ 대충 둘러보고 공항가기 전 짐을 맡겨놓은 호텔로 돌아왔더니 다리가 맥이 빠져 아무데도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서 커피 마실 곳 있냐고 물으니 프론트 직원이 8층 꼭대기에 가보라고... 나 첵아웃 해서 카드키 없는데.. 했더니 잘생긴 직원이 눈 찡긋하며 왜 안되냐고, 여기서 머물렀으니 여기는 이제 너의 집이라는 오글거리는 멘트를 하길래 닭살이 돋을뻔 했지만 고맙다고 하고 8층 루프탑에 올라갔죠. 오 여기가 바로 뷰 맛집! 평지인 바셀 시내가 사방에 펼쳐있고 까사 밀라 옥상이 코앞에,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눈앞에, 저 멀리 티비다보 언덕과 예수님이 서계신 성당도 보이고... 무엇보다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환한 햇살이 눈부셔 덩달아 힘이 솟는듯. 맛있는 카푸치노와 곁들여 나온 살살 녹는 초콜렛을 먹으며 마지막 바셀의 모습을 눈에 담고 머리에 담았어요
단체여행이 끝나 다들 한국에 가고 혼자 바셀에 남은 제가 툭하면 흥분하고 몰입하는 탓에 사고 안치고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멤버들이 제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카톡을 남기니 하트와 따봉을 마구 날려줬어요 ㅎㅎ(이제서야 안심이 된다고)
이번 여행이 행복할 수 있었던 건 여행 멤버들 지분이 커요
워낙에 혼자서만 다니며 만족해하는 저이지만 혼자서도 재미있을 때는 여행길에 마주친 사람들과 즐거웠기 때문이듯, 여럿이서 갔는데 행복했을 때는 함께 간 사람들이 좋은 이들이었던 덕분이죠
예의바르고 배려깊고 서로 챙겨주고 귀여워해주고 고마워하고 아이처럼 환하게 맘놓고 웃으며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면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열정과 에너지 그 자체였던 가이드님도 빼놓을 수 없고요
모처럼의 해외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잊고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준 모든이들에게 무챠스 그라시아스! ^^
스페인에 다시 돌아갈 그날을 꿈꾸는 마드리드댁의 글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렇게 긴 글도 오늘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