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영화 '가여운 것들'

이 영화는 많이들 아시다시피 그리스 출신 천재감독으로 불리우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최신작입니다.

저는 이 감독 영화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라 작년 요맘때 첫 트레일러가 떴을 때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영화를 끝물에 간신히 막차를 타고 어제 봤습니다

1년 동안 기다리는 동안, 이 영화의 원작 소설 '가여운 것들'을 읽고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이 소설은 스코틀랜드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작품으로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고 했습니다

이 소설은 놀랍게도 470여쪽의 마지막에 부록같이 들어있는 짧은 한 챕터가 백미이고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400쪽 넘는 그 앞의 대부분의 내용을 뒤집어엎을 정도로 전복적인 반전입니다

이 마지막 챕터를 읽고 나면 앞에 쓴 내용들이 어디까지 (소설 상의)사실? 진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가가 내가 도대체 무얼 읽은 것일까 혼돈으로 뒤흔들리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아! 하는 감탄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기괴하지만 아름답고 인간을 뒤돌아보게 하는 소설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완성도는 그 마지막 짧은 챕터 하나로 귀결된다고 해야할 정도이며 이 책의 제목이 왜 '가여운 것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대에 찬 제가 어제 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든 생각은 뭐냐

외화내빈(外華內貧)

껍데기는 화려하지만 알맹이는 텅빈 꼴통이다...

 

도대체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 작품을 이런식으로 재해석한 걸까요?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인 마지막 챕터를 날려버렸을 때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었을텐데, 그게 겨우 이건가요? 당신의 영화에서 '가여운 것들'은 도대체 뭔가요?

겨우 이정도가 가엽다는 건가요?

감독이 벨라 벡스터의 뇌를 갈아버린게 아니라 먼저 본인의 뇌부터 초딩 3학년 수준으로 바꿔놓고 이 영화를 찍었나요?

도대체 베를린영화제는 이 영화에 왜 황금사자상을 주었을까?

 

이렇게 각색을 해 놓으니 모든 등장인물이 서사가 헤메이고 평면적이고 역할이 나타내야할 감정을 잃어버리니 아무리 명배우를 데려다 놓아도 그 연기가 붕 뜰 수 밖에...

엠마 스톤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은 건 겨우 이정도 시나리오로 그나마 이렇게나 벨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너무 애처롭고 불쌍할 정도라서 준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

아마도 엠마 스톤이 시나리오보다 소설을 100번도 더 읽었을 것 같은 느낌

엠마 스톤이 아니었으면 벨라라는 캐릭터도 날아가버렸을텐데 그나마도 그 연기로 이만큼 만들어 놓았다는 거 기특하고 신통할 지경

고드윈 역의 윌렘 데포의 연기는 그 역할의 정당성이 없어진 시나리오의 캐릭터 설정 때문에 연기가 남아도는 처지에 이르렀고, 덩컨 에더번 역의 마크 러팔로는 이런 식으로 소비될 배우가 아닌데, 아깝고 아쉽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역할은 그냥 병풍으로 전락한 맥스 맥캔들리스

이 영화의 제목이 주장하는 가여운 것들은 이 낭비된 배우과 연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원작이 있는 영화라도 영화와 소설은 별개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설정만 끌어다 완전히 재창조하는 것도 상관없다는 편입니다

오히려 그런 재미를 즐기는 편이고요

그렇지만, 이건 전혀 인정해줄 수가 없군요

 

란티모스 감독은 소설의 기괴하고 신비로운 설정만 차용(아니 훔쳤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해서 초딩 3학년이나 생각할 법한 얄팍한 스토리를 화려한 화면과 배우로 가장했다는 느낌입니다

과연 감독은 세계적인 명성과 할리우드 돈뽕에 취해서 타협한 건지, 아님 날것스러운 인간의 기괴한 본성을 추구하던 그의 취향이 인간의 사랑스런 본성을 다루는데는 아주 조악하고 촌스러운 건지...

어쩌자고 할리우드는 이렇게나 이야기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는 수준으로 추락한 건지, 원작이 품고 있는 다양한 것들을 이렇게 단순하고 촌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것도 재주는 재주다 싶기도 합니다

 

전작들의 날것스러운 날선 그의 감각이 '더 페이보릿;여왕의 여자들'에 이르러서 세련되게 바뀐건지 둔해진 건지 애매하게 알쏭달쏭해서 많은 사람들의 칭송하던 그 작품이 제게는 딱히 별 감흥이 없어서 내가 이상한가 싶었는데, '가여운 것들'을 보고나니, 그때 이미 감독의 변화 조짐이 있었던 거 맞구나 싶긴 했습니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큰 걸까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늘 감각이나 시각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내 감각이 별난 것일 수도 있겠죠

저야 평론가도 아니고 일개 관람객일 뿐인데요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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