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이주혁 쌤의 영화 '파묘' 관람기.

이주혁 의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영화 파묘 관람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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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관람 후기. 

이 영화는 귀신영화 공포영화가 아니다. 장재현의 '파묘'는 귀신이나 샤머니즘을 그린 영화가 아니라, 반일 독립운동에 관한 영화다. '토착 왜구'라는 말이 지긋지긋하게 아직도 남아 있듯, 한국인들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그 이념적 쇠말뚝을 제발 뽑아 없애버리자는 열망을 얘기하고 있는 영화였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스포일러는 이미 영화의 제작 과정과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다 들어가 있다. 

 

최민식이 연기한 김상덕은 실제의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의 이름을 그대로 따 온 것이다. 그는 만주, 샹하이, 일본 등을 떠돌며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한국독립군 참모를 하고 임시정부의 선전위원이었다. 광복 후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그런데 최민식이 맡은 사건의 상주, 부유한 집안 후손의 이름은 박종순으로서 을사 오적, 박제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김고은이 연기한 이화림 역시 독립운동가 이화림 선생의 이름 그대로다. 그녀는 평양 출신으로 김구 선생이 이끄는 애국단에서 활동하고 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하고 화북 팔로군에서도 활동, 조선의용군에도 계셨던 분이다. 이도현이 연기한 봉길 역시 윤봉길 선생의 이름 그대로다. 이화림과 김상덕의 차 넘버는 무엇이었던가? 각각 0815, 0301이었다. 영화는 2022년 10월에 촬영을 시작, 2023년 3월 1일에 종료했다. 그리고 2024년 삼일절을 일주일 앞둔 2월 22일에 개봉한다. 영화 파묘는 관객을 완전히 속였다. 많은 사람들이 전반부에는 잘 나가다 후반부에 이상하게 된다고 평가하던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전반부는 후반부의, 감독이 진짜로 얘기하고 싶던 메인 테마를 표현하기 위한 바탕칠에 불과했을 뿐이다. 

 

영화 '파묘'는 귀신이나 원혼 얘기가 아니다. 첫째. 일본 민속신앙에는 풍수지리설이 없다. 그러니 조선 땅의 기를 억누르기 위해 풍수지리를 이용했다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다. 관에서 나온 그 험한 존재 역시 시기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들을 해 댄다. 이 영화는, 명리학이나 전통 무속, 주술로서 세심한 장치를 해 놓지 않았다. 사실 매우 허술하다. 무엇보다 후반부에서 김이 빠진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는 이유는 전반부의 스릴러적 요소들이 분명 한국 전통 샤머니즘의 논리를 따라갔기 때문인데, 후반부에선 그 세계를 벗어난 완전히 이질적인 주술세계로 시공을 점프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촛점을 무당 (샤먼)에 두고 잔뜩 기대를 하던 사람들은 실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영화의 포커스가 주술이나 혼령이 아닌, 지금 실재하는 이념에 맞춰져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감독의 절박한 외침이 들려오는 것같았다. 
나는 후반부에서 더 몰입했다. 이화림과 김상덕이 어떻게든 말뚝을 뽑으려 몸부림치는 장면에서 정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지독히 깊숙히 우리나라에 박혀 있는 그 쇠말뚝을 대체 어떻게 뽑아 없앨 것이냐고 절규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샤먼(무당)도 묘자리의 귀신도 전부 조연들이었을 뿐이다. 영화의 모든 이름과 표현들은 중의적인 것이다. 혼령은 실체가 없어 산 자가 당해낼 수 있으나 실체가 있는 정령은 더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귀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뭐 무섭단 말인가, 진짜 무서운 건 실체적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지배하고 있는 식민지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 최민식 (김상덕)이 마지막에 험한 것에 응징하는 모습은 10년전 그 자신이 이순신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명량'에서 칼을 들어 왜장의 목을 반으로 쪼개던 장면과 완전히 똑같았다. 왜 주연이 최민식이었느냐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영화에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감독과 배우들이 어떻게 이토록 섬뜩하게 우리 현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느냐는 점이었다. 사실 노골적일 정도였다.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란 놈들은 일왕의 생일 축하연을 서울 한복판에서 벌이는데 반대하는 게 아니라 참여해서 축하주를 마신다. 판사들은 일본이 식민지 시절 강제 징용한 사람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피해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을 내린다. ㄷㅌㄹ은 광복절 기념식에서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며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고 일본 후쿠시마의 방사선 오염수 방류를 찬동하고 안전하다며 돈을 써서 광고까지 한다. 그리고 독립운동 영웅의 흉상을 쓰레기취급하며 몰아내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도 토착 왜구들의 쇠말뚝이 그 정신 속에 박혀 있다.  매국 이념이다. 대체 언제 그걸 뽑아낸단 말인가. 그걸 해내기 전까지는 우리는 강산을 되찾은 것도 아니다. 실체가 없는 혼령이 아니라, 실체를 갖춘 정령, 요괴, 괴물이 우리를 찍어누르고 여전히 짓밟고 있다. 그걸 이 영화는 징을 치며 굿을 하는 무당의 입을 통해 피를 토하듯 호소하고 있다. 
이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무슨 상을 타지는 못한 것같다.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처럼 외국에서 호평을 받지도 못할 것이다. 예술영화적인 평점을 높게 받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야 한다. 영화속 무당과 지관이, 여전히 간과 쓸개를 그들에게 내어 주고 뺏기고 있는 우리 민족을 향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지 말이다. 

 

영화 '파묘'는 3.1절을 바라보며 만든 영화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달의 총선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땅을 파먹고 있는 말뚝을 파내고 파묘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젠 그 "험한 것들"을 기필코 몰아낼 때가 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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