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
명절에 저희 가족이 먹을 명절 음식 (플러스 시댁식구 먹을 거 포함해서) 제가 해서 싸들고 내려갑니다. 처음엔 그냥 갈비찜 잡채 정도였다가 이제 설날이 되면 떡국 끓일 때 쓸 양지머리 한덩이도 들고 내려갑니다. 시어머니는 경상도 분이라 멸치육수 떡국을 주로 해 드시는지라 저희 아이들은 멸치육수 떡국을 낯설어해서요. 별것도 아니고요. 그냥 코스트코에서 한우암소양지 사다가 먹습니다.
지난 설에도 양지를 한덩이 들고 내려갔는데, 떡국을 하려니 양지가 좀 남았어요.
친정가는 길에 어머님께 보여드리며 이거 좀 남았다, 나중에 어머님 떡국 끓여 드시거나 다른 음식 해 드실 때 드시라. 하고 왔어요. 애초에 많이 들고가지도 않았으니 많이 남지도 않았는데
며칠 전 시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제가 두고간 그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그래서 양지라고 국 거리라고. 그랬더니
친구분들 두어분과 함께 그 고기로 떡국을 끓여드셨는데
국물이 너무너무 맛이 있더라고, 어머님 입에도 맛이 있었는데 친구 두분도 세상에 무슨 고긴데 국물이 이렇게 맛있냐고 감탄을 감탄을 했다고.
그래서 아, 그러시냐, 그거 한우암소양지라더라. 했더니
어머님 사는 동네 거기 정육점에서 양지라고 해서 사도 순 가짜배기 양지였나보다(;;; 정육점 비난 의도 없음을 알아주세요) 한우라고 사 봐도 그런 맛이 안나더라, 옛날 옛날에 우리 엄마가(그러니까 시어머님의 어머님이) 알던 사람이 **정 이라고 그 동네에서 아주 유명한 고깃집에서 일을 했는데 어느해 명절엔가 그 아는 사람이 국끓여먹으라고 양지를 한덩이 줬는데, 많이도 안주고 주먹만한 한덩이를 줬는데 그게 그리 맛이 있더니 이번에 니가 가지고 온 그 고기가 딱 그 옛날 그 맛이 나더라 하도 맛이 있어서 대체 이게 무슨 고긴가 내가 물어보는 거다.
아니 이 말을 듣고, 어머님 제가 그 고기 사서 부쳐드릴게요!!! 하지 않을 수 있나요.
- 어머님 동네에는 코스트코가 없어요.
- 어머님도 정육점에서 한우 양지를 사 봤지만 그 맛이 안났대요.
- 어머님의 어머님이 끓여주셨던 고깃국의 맛이 난다는데
양지 그거 뭐라고요, 뭐 얼마나 한다고요. 아니 그렇게 맛난다고 감탄을 하시는데, 원수진 사이 아닌 담에야, 어머님은 구하지를 못하고 저는 천지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건데, 구해서 부쳐드리면 되죠. 양지가 뭐 백만원 하겠어요, 천만원 하겠어요. 끽해봐야 7만원 선에서 한팩 살 수 있는데요.(코스트코 기준)
이게 기분이 나쁘고 좋고 할 게 있나요. 오히려 좋으면 좋았죠. 내가 사 간 먹거리가 어른 입맛에 그리 맛이 있었다는데.
그런데.
기분이 나쁘시답니다.
고기 사달라고 전화한 게 아닌데
대뜸 고기 사서 보내주겠다고 말하는 제가
기분이 나쁘시답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정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