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세상 재미있는게 많은 50대 아줌마, 밀린 수다 떨러 왔어요 ㅎㅎ (feat. 책얘기)

2024년도 1/6일 지났네요? 2월 어떻게 보내셨나요?

얼마 전에 읽은 <그레이브야드북>이라는 책에 보면 묘지에 사는 한 유령이 이렇게 말해요

"살아있는 사람은 시간을 먹고 사는거야. 시간을 다 먹으면 죽지"라고

우리들은 과연 얼만큼의 시간을 먹어치웠을까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니라 ㅎㅎ 먹어치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죽을 때까지 모를 우리는 그저 남은 시간을 최대한 맛있게 꼭꼭 씹어서 먹는게 최선이란 생각을 해요

결론은 1분 1초,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감사하며, 사랑하며 보내보자는 얘기! ^^

 

 

1. 지하세계에 발들이다

저희 아파트 입구 바로 건너편에 탁구장이 있어요 

매일 오가면서 전봇대에 매달린 탁구장 간판을 봤지만 뭔가 요즘은 보기 힘든 당구장 간판을 보는 느낌이랄까? 거길 들어가면 80-90년대로 타임슬립할 것 같은 느낌?

워낙 운동을 좋아하고 항상 해왔는데 올초 무릎을 다치고 두달 가까이 근신하고 지낸 탓에 몸이 근질거려 살살 움직일 수 있는거 뭐 없을까 하다 지난 주말 남편이 탁구장에 가볼까? 하길래 당신 혼자 가라고 했다가 구경삼아 같이 가봤어요 

건물에 들어서니 탁구장은 지하로 가라고 해서 계단으로 내려갔죠 

와.. 입구 신발장에 신발이 바닥부터 천정까지 꽉차있고 살짝 열린 문으로 탁구장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어요 

기합 소리, 신발과 바닥의 격렬한 마찰음, 플라스틱 공이 테이블에 강하게 튀기며 나는 소리가 무슨 팝콘 50봉지를 동시게 튀기는듯 엄청나더라고요

이거슨 마치 산 속에 나무들 헤치며 들어갔더니 짠!하고 무림고수들이 수련을 하는 광경을 목도한 느낌이랄까

 

저희 부부는 홀린듯 한달 레슨을 끊고 그날 바로 수업을 받았어요 

그런데 코치가 넘 재미있는데다 칭찬 스킬이 탁구실력 저리가라여서 저희 둘다 깔깔 배잡고 웃으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레슨을 받았죠 

저보고는 거기서 7년을 가르쳤는데 7년 만에 탁구 신동이 나타났다는거예요 ㅎㅎ

제가 탁구장은 처음이라고 하니까 아닐거라고, 잘 생각해 보라고, 분명 어디서 배우고 활약했을거라고, 유연성이 장난 아니라고... 학창시절 탁구 좀 친 남편을 보고 부부싸움 시키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남편분은 집에 가셔서 아내분 포핸드 자세보며 연습하시라고, 자세가 교과서 그 자체라고..그러면서 저랑 몇번 해보고 바로 랠리 들어갔는데 몇십개 주고받으니 코치가 싱글벙글.. 바로 백핸드 가르쳐주고 또 랠리하고...

칭찬이 다 뻥인거 알지만 즐겁게 셋이 웃다가 치다가 했더니 첫수업인데도 분위기 화기애애하게 즐겼네요 

레슨 끝나고 기계가 쏴주는 공 1000개 넘게 치고.. 그러다보니 두시간이 후딱 가고 몸은 가뿐하고 ^^

이제 레슨 3번 받았는데 저만 가면 탁구계의 신동 나타났다고 하시면서 제가 치기만 하면 어쩜 그리 자세가 깔끔하고 가르치는 족족 배운다고... 옆에 있던 남편이 자꾸 칭찬하면 아내가 정말 자기가 신동이라고 믿을지도 모르니 조심하셔야 한다고 하니 코치 말이 "그런데... 처음에 우와~했는데 몇달이 지나도 계속 거기인 사람도 가끔 있어요"라고 해서 또 빵~ 터지고 ㅎㅎ

 

어제도 저녁 일찍 먹고 밥때면 사람이 없지 않을까하고 6시에 가봤더니 예상 적중! 한산한 가운데 둘이 실컷 치고 코치가 나타나 봐주고 하다 기운이 빠지길래 보니 5분전 9시!

남편이랑 집에 오면서 이렇게 재미있는줄 몰랐네.. 진즉에 할걸.. 열심히 해서 우리 둘이 할머니 할아버지 되서도 하자고 탁구활동 10개년 계획 세우며 왔어요 ㅎㅎ

저녁 먹은게 다 꺼져서 배고픈데 개운도 하고... 드라마 보면서 먹는 장면만 나오면 둘다 헐떡이며 배 부여잡고 뱃살 쭉쭉 빠질거라고, 내일 아침 꿀맛이겠다고 하며 서로 격려하고, 넓지도 않은 집안에서 오가다 만나면 마주보고 허공에 대고 포핸드 연습하며 ㅋㅋㅋ 웃고.. 훈훈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생각보다 훠얼씬 재미있고 가성비 훌륭하고 시간가는줄 모르는 운동으로 탁. 구. 추천드려요!^^

(사실 떨고싶은 수다는 넘 많지만 (사과 이야기, 초록이 이야기, 자전거 이야기...)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 나중에 투 비 컨티뉴드...) 

 

 

2. 책 이야기

2월에도 재미있고 유익한 책들을 (제 기준) 많이 읽었어요

지금껏 책을 많이 안 읽어서 좋은 점은 앞으로 읽을 책, 읽고싶은 책들이 많다는 것? ㅎㅎ

책은 취향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저에게 이달의 책은 <자기만의 방>과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입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뭔가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아서 미루다가 앨리스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라는 단편집에 나온 '작업실'이라는 글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읽으면서 저의 선입견과 달리 조곤조곤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차분하고 논리적인 전개, 저자의 절실하고 간절한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어서 읽는 내내 저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시간이었고, 사회적 제약이 많았으면서도 여성들조차 그것을 당연시 여기던 그 시대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21세기임에도 이 책은 충분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씁쓸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여성에 대한 이야기지만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간 생각이더군요 

이제야 읽었다는게 어이없으면서도 지금이라도 읽어서 행운이라는 생각도 드는, 왜 그리 유명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는지 이제 알았어요. 한번은 읽어봐야 할 책으로 강추합니다 !!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

82에서 추천받은 <섬에 있는 서점>이라는 책을 읽다가 책 안에서 발견한 책인데 제목이 흥미로워서 따로 빌려봤어요 

오.. 첫 단편을 읽자마자 이거슨 내 스똬일!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ㅎㅎ

인간의 위선, 모순, 부조리, 죄악 등에 대한 이야기를 강렬하고 대담하고 거침없이 몰고 가요

블랙 유머가 있고 폭력, 죽음, 공포를 무채색으로 주저함없이 한방에 쭉 끌고 나가는데 읽고 나면 뭔가 섬광이 번쩍 뇌 안을 가르는 느낌, 단편임에도 영화 한편 본 것 같아요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남부 고딕문학의 대표작가라고 하는데 그녀의 글들을 코메디 같으면서 비극이고, 우스꽝스러우면서 기괴한게 아주 색다르고 매력적이예요 (그래서 바로 같은 작가의 다른 책도 빌려왔어요^^)

 

**이쯤에서 유명 독일 성악가 피셔 디스카우가 부른 슈베르트의 '마왕 ' 한번 들어보셔요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김서형이 맡았던 김주영선생의 테마곡이었죠) 

https://www.youtube.com/watch?v=8nvGJJJFKYc

1인4역의 연기가 그의 노래만큼이나 뛰어나고 재미있어요 

죽음으로 거침없이 달려가는 괴테의 가사와 노래 분위기가 플래너리 오코너의 글을 떠올리게 만들어 소개해봐요

 

그 외에

<눈알수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난달에 소개했었는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왜 저런 제목을 붙였을까, 제목만 읽고 책을 제끼는 분들이 계실까 안타까워하는 책이죠 

이 책 끝내려고 밤 12시 반쯤 침대에 기대앉아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안돼~!!!!"라고 소리지르는 바람에 옆에서 자던 남편이 놀라서 깼어요 ㅠ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파트 엘베를 타고 30층 집에 다와서 땡!하는 벨소리에 나가려고 한발 내딛는 순간 엘베가 지하 바닥으로 추락하는 느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게 있더라고요 ㅠㅠ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책 자체가 책쌓인 서점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책 ^^ 읽으면서 읽고싶은 책 메모하느라 바빴어요 ㅎㅎ

물론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었고 사람이 사람을 품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좋아요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엘리자베스 스트라웃

이 작가가 쓴 글은 다 좋아요.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배우자, 부모, 자식과의 이야기들 속에서 삶을 들여다보게 되어 와닿는게 많아요 

 

<두번 죽은 남자> -리처드 오스먼

<목요일 살인 클럼>의 두번째 시리즈로 귀여운 할머지 할아버지들의 활약이 계속됩니다 ^^

 

<네버웨어> -닐 게이먼

작가 손에 이끌려 꿈 속에서 런던 밑바닥을 샅샅이 훑고 온 기분

평범한 삶에서 내가 내 자신을 지키며 사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그레이브야드북> -닐 게이먼

정글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묘지에서 유령들이 한 아기를 키우는 이야기인데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인 뉴베리상 수상작이예요. 모처럼 어린아이 마음으로 돌아가 재미있게 읽었어요 ^^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단편집으로 잔잔하고 담담하게 쓴 평범한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데 읽다보면 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마주친 나만의 비밀스런 '발견'의 순간들, 그러나 지금은 잊고 있었던 내 기억 속 이야기를 꺼내어 누군가가 대신 써놓은듯한 느낌이 들어 부쩍 가깝게 느껴지는 신기한 책이예요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작년 말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를 감탄하며 읽고 우밍이라는 대만 작가에게 급호감이 생겨 다음 책을 고르는 중에 어느 82님이 이 책 이야기를 쓰셔서 빌려봤는데 역쉬~ 

어린 시절 풍부했던 상상력이 다 쪼그라들어 서글펐는데 이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상상화 환상 속에 아주 자연스럽게 들어가 바닷속을 헤엄치듯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저를 봅니다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시절마다 타왔던 여러대의 자전거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어졌어요 

두 책 모두 힘들고 극한 상황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따뜻하고 친근해요

표현력도 뛰어나 대만 사람들이 자국어로 읽으면서 아름다운 글에 행복했을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유성호

이 책은 소설은 아니고 매주 시체를 몇구씩 부검하는 법의학자 이야기예요 

끊임없이 죽음을 대하면서 든 생각은 죽음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보다 어떻게 하면 잘 살까였다고 저자는 말하죠

요즘 수명이 길어지고 부모 부양이나 간병 문제가 많아지면서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논의되고 있죠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사람들이 현실적인 정보나 죽음의 순간과 이후의 일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모르고 별 의미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들었어요 

존엄사, 안락사, 연명치료, 자살,... 등의 법적, 사회적, 의학적 개념과 죽음을 준비하는 현실적인 이야기, 환자와 유족들의 실제 사례들이 담겨있어 도움이 많이 되고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된 유익한 책이었어요 

 

 

수다가 넘 길었죠?

제가 평소엔 입에 거미줄 달고 사는데 한번 터지면 폭풍수다를 못 말려요 ㅎㅎ

이렇게 풀어놓을 수 있는 82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 남몰래 부릉부릉 시동걸고 있을 봄을 기다리며 3월도 재미나게 지내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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