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12분의 1이 갔네요
82님들은 소중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힘빠져 시무룩한 다리 달래가며 나름 다이나믹하고 알록달록하게 첫달을 보냈어요 ^^
그동안 양인모 바이얼리니스트의 시벨리우스 바협에 빠지고 지난주 네대의 첼로 콘서트를 다녀와서 피아졸라의 음악에 푹 빠져 행복한 마무리를 하고 있고요
1.
먼저 저희집 초록이 이야기
제 책상 한켠에 콩고라는 식물을 두었어요
'Green Princess'라는 이름답게 잎과 줄기의 선이 미끈하고 심플한게 우아한 느낌 팍팍 풍기는 화초예요
특이한건 어느 때가 되면 줄기 하단이 불룩한 것이 마치 임신한 여인의 배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예요
몰랐을 때는 왜 저기만 뚱뚱하지 했는데 이제는 점점 부풀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아, 산달이 가까워오는구나!'하고 압니다 ^^
그러다 어느새 틈이 벌어지면서 반들반들 연두색 잎이 삐죽 머리를 내밀면 제가 무슨 산파라도 되는양 막 흥분해서 "얼른 나와라! 힘줘~!"하고 외쳐요 ㅎㅎ
그런데 이것도 생명의 탄생이라고 다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아니 며칠 걸려요
인간의 그것처럼 피와 땀이 범벅되는 고통의 현장은 아니지만 세상빛 본 적 없는 곱고 여린 잎이 처음 세상으로 나오는 탄생의 순간을 제 눈으로 목격하는건 넘 감격적이고 감동이 넘쳐요
참, 이 얘기를 하다보니 작년 일이 떠올라요 ㅎㅎ
우유크림같은 꽃잎에 향이 환상인 꽃치자에 반해서 꽃피는 순간을 지켜보겠다고 비디오 켜고 의자에 앉아서 두시간 지켜보다 결국 눈 앞에서 톡 터지며 스르륵 허리틀듯 비틀며 뽀얀 꽃잎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했으나 바로 울렁거리더니 결국 화장실행 ㅠㅠ
한동안 베란다에도 못 나가고 치자꽃만 봐도 헛구역질이 .. ㅠ
잊고싶으면서도 못잊을, 가슴 울렁거리는? 치자꽃 개화의 순간 ㅎㅎ
2. 로또 당첨!... 은 아니고 제가 뭐에 당첨된 적이 이제껏 살면서 두번 있었는데 얼마전 세번째 당첨! ^^
첫번째는 해외살 때 한국인도 없던 동네의 홈인테리어 가게의 뽑기 행사에서 당첨되어 그릇 세트를 받고 직원들의 박수를 받았던, 참 얼떨떨하면서 기분좋았던 적이 있었고 두번째는 체육대회같은 야회 행사에서 재미로 신발 벗어던지기를 했는데 얼떨결에 제일 멀리 던져서 1등 당첨으로 스피커 빵빵한 cd 플레이어를 받은 적이 있어요
이번꺼는 지난 연말 헤몽 페네전이 열려서 구경하고 sns에 후기를 올렸는데 얼마 전 갑자기 당첨되었다는 소식이 왔어요!!!
선물꾸러미라고 단아한 종이박스에 큼직한 헤몽 페네 도록과 잘뽑은 그림엽서 여러장이 들어있네요
와~~! 단순하면서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사랑 가득한 세상을 꿈꾸는 그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미소가 사르르~
한 십년 주기로 당첨되었던 것 같은데 십년 후 또다른 당첨을 기대해 볼까요? ㅎㅎ
3. 마지막으로 책 이야기!
최근들어 이달만큼 많은 책을 읽은 적이 없어요 (뭐 다독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다리가 아파 좋아하는 운동과 걷기를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만큼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게 되어 아프다고 꼭 나쁘지만은 않네~ 라는 생각을 했어요 ^^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 - 읽고 싶은 책들이 다 대출이라 계획에 없이 빌리게 되었는데 좋아하는 숲 걷기를 못하는 대신, 책 속의 숲과 호수에 빠져들어가 나무 사이도 걸어보고 물결도 보고 눈도 밟아보고 겨울바람도 느끼며 참 행복했어요^^
특히 거기 나오는 새들을 다 찾아보고 새소리도 들어보니 숲이라는 공간에 울려퍼지는 새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소리만 들어도 그 공간에 들어간듯 마음이 초록으로 물드는 것이 내가 이 책을 빌려야 할 이유가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에겐 대박이었던 에이모 토울스의 책들이예요 (책 이야기만 나오면 어디선가 달려오시는 108님 감사~)
<우아한 연인> - 1930년대 맨하탄을 그린 흑백영화를 영사기로 돌려본 느낌
<모스크바의 신사> -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완전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에 빠져버렸어요 ㅎㅎ 무슨 아이돌처럼
설정도 재미있고 다양한 책과 미술, 음악, 건축, 음식, 귀족들 이야기에 제한된 공간에서 만나는 온갖 사람들과의 인연들도 재미있었어요
읽으며 그림도 찾아보고 (특히 일리야 레핀의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이란 그림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뒷 이야기와 그림의 드라마틱한 묘사가 강렬해서 잊혀지질 않아요) 시도 찾아보고, 최근 나온 나폴레옹이란 영화도 본터라 책의 내용이 연결되기도 하고 모스크바의 지도를 보면서 돈도 힘도 들이지 않고 여기저기 여행한 느낌으로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읽었어요
800여 페이지가 되는 긴 소설임에도 한페이지 읽을 때만다 장 수가 줄어드는게 안타깝...이 좋은 느낌과 멀어지기 싫었는데 지금 영화를 찍고 있다니 빨리 영화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이완 맥그리거가 백작이라네요)
<링컨 하이웨이> - 이 책 역시 특이한 설정에 내용 자체가 로드 트립 이야기라 이번엔 미 대륙을 횡단하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이 작가가 진짜 찰진 이야기꾼이라 줄줄줄 나오는 얘기에 그냥 멱살잡혀 끌려가면 즐거운 여행 예약!
읽는 동안 푹 빠져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다니고, 거기 나오는 책과 인물들, 역사 속 사건들을 찾아가며 같이 읽다보니 책 한권을 읽었는데 책 두세권 읽은듯한 너낌? ㅎㅎ
이게 책읽는 재미 중 하나인듯 해요
삼천포 같지만 책과 관련된 장소들, 사람들, 역사 문화를 여기저기 찔러보고 아하!~하는 재미?
다음으로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들 <소포>, <영혼파괴자>, <눈알수집가>
독일 작가인데 책이 개성과 매력이 확실해요
심리학과 살인범, 독일의 분위기가 합쳐지니 분위기가 우워~
최면에 걸린듯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게 떠다니다가 정신차리고 보면 반전에 반전...
원래 이런 사이코스릴러는 취향이 아니라고 손도 안 댔는데 82님들 소개로 읽고보니 이런 것들의 매력이 따로 있네요
리처드 오스만의 <목요일 살인 클럽> - 실버타운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넘 귀여우셔요 ^^
저도 50보다는 60에 가까워지다보니 이야기 속 한 할머니가 고안한 '치매 조기 경보 세스템'이라는 자가 테스트 방법에 밑줄긋고 있는 저를 발견 ㅎㅎ
함께 나이들어가며 서로 으쌰으쌰하며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산다는 것이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오고, 산을 넘으니 바다를 건너야 하고.. 뭐 그렇게 엉뚱함과 당황스러움을 기본으로 깔고 있지만 분명 바로 옆에는 재밌고 즐겁고 감사한 일들도 꼭 있더라고요
인생의 양면을 함께 보며 매일을 보낼 수 있기를...
82님들은 첫달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