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에 시부모님, 시누이들 가족 모두와
해외여행가는 일정이 있어요.
가는데 하루 걸리는 먼 곳이고 일주일 예정예요.
결혼할 때 천만원 보태주신게 전부지만
나이들어 한 결혼이어서 그 나이까지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것 저도 싫었고 제가 모은 돈으로
집 얻어서 사는데 불만 없고 시댁 모두 좋은 분들이세요.
82에서 시댁 얘기 할 때마다 묻는 부분이라 미리 밝혀요.
문제는 제가 그 여행을 갈 수 없는 사정이 있어요.
저도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여서 못 간다고 생각하면
저도 너무 속상하고 시부모님의 여행에 대한
기대 생각하면 정말 가고 싶어요.
진심입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애착이 어마어마하신 시부모님 모두
80세가 훌쩍 넘으셔서 인생에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시니
제가 못 가는게 좀처럼 포기가 안되시나봐요.
반 년 넘게 시누들이나 시부모님 모두 제게 꼭 가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시는데 못 가는 저는 너무 괴롭고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못 가는 이유는 남편도 절대적으로 이해하고
잘 아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반년 넘게 매일 고민한 끝에 비용이고
내가 무리하는거 다 포기하고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시부모님 행복해하시는것 하나만 생각하자 싶어
여행 일정 마지막 2박 3일만 합류하면 안되겠냐고
남편과 의논해서 그렇게라도 하자고 해서
호텔 예약 모두 마쳤어요
그런데 비행기표 예매하려고 보니 시차가 너무 차이나서
꼬박 4일을 비워야 하더라구요
그렇게나 비울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다시 고민하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도록
1박 2일이라도 합류하겠다고 했어요.
미친 일정인거 알지요.
우동 먹으러 삿포로 간다는 허세도 우스울 만큼
2백 넘게 써가며 재벌도 잘 안 할것 같은 짓을 해서라도
시부모님께 의미 있는 여행으로 마무리 하실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요.
이런 상황을 시누에게 얘기했더니 언니 영어 문제 없고
혼자 여행도 잘 하는데 돈 아깝게 왜 그렇게 무리하냐며
마지막 날 합류하고 다른 식구들 다 귀국한 뒤에
혼자서 2~3일이라도 남아서 쉬었다 오는건 어떻겠냐고
하더라구요.
남편이라도 먼저 한국 돌아가면 해결될 문제라
저도 너무 좋은 아이디어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남편에게 의논하니 단칼에 거절하네요.
그래봤자 어차피 여행 내내 홀아비처럼 혼자 다니는건
마찬가지라고.
동생들은 모두 가족이 오는데 자기 혼자 뻘쭘해서 싫다고.
그 순간 제가 참고 참았던게 폭발했어요.
남편 외도 걸린게 딱 일년 되었어요.
긴 사연 끝에 이혼 안 하기로 결정했고
문득 문득 속에서 뜨거운게 치밀고 올라와도
결혼 유지하기로 한 건 내 결정이니 책임지는 심정으로
단 한번도 그 일 입 밖에 안 내고 다시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남편은 굉장히 단순한 사람이라 아주 편하게 잘 살며
가끔 행복하다고도 하더군요.
시댁한테도 시부모님이 주위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실
정도로 잘 하고 삽니다.
내가 너무 잘 해줬구나.
나만 아직 지옥에서 못 빠져나왔구나.
시댁여행 죽어도 참석하겠다고 이렇게까지 애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데 남편에겐 너무 당연한거구나.
이런 남편과 시댁 위한다고 반년 넘게 매일 고민하며
이런 무리수까지 감당하기로 했는데 저 인간은
오로지 자기 가족의 완벽한 여행과 자기 체면만 중요하구나.
어제 남편에게 제 심정 담담하게 모두 얘기하니
제가 아직 그런 마음으로 사는 줄 몰랐다고.
그럼 우린 아무 의미도 없이 왜 사냐고 묻네요.
이혼하는게 낫겠냐고 물으니 못 할꺼 없답니다.
진짜 사는거 구역질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