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이고 동갑내기 남편이 작년 여름에 대기업 퇴직을 했어요.
코로나 때 부터 재택근무 3년간 하다가 (이 때부터 진즉 회사에서 물은 먹은 듯) 다시 출근하라고 하니 그만두더라구요. 저는 만년부장으로 오래 재직하다 정년 채우고 퇴직했으면 했지만 죽어도 그렇게는 못하겠대요. 사람이 죽는 것 보다는 낫겠다 싶어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어요. 누울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제가 자영업을 하니라 먹고 사는 문제가 없으니 퇴직 결정이 쉬운 것 같이 보였어요.
사람이 특이해서 본인은 퇴직 후 사람도 안 만나고 집에만 있어요. 본인은 별 불만 없다고 주장을 합니다. 집안일 - 시장보고 밥먹는 것은 스스로 하고, 빨래도 해서 잘 개켜서 정리해 놓습니다. 청소는 정리만 하니 원래 쓸고 닦고 하는 것은 필요없다 생각해서 안하는데, 제가 주말에 해요. 집에서 혼자 컴퓨터 보고 놀다가 마트가서 장보고 하는 것이 일과에요. 본인은 퇴직 후 삶에 만족한대요.
저는 일을 계속 하기 때문에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와요. 하숙생처럼 삽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제가 일을 해서 수입이 있고, 당장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집 팔고 그 돈 굴리면 먹고는 살아요.
일견 별 문제 없는 부부인데 제 마음이 주기적으로 심란해요.
집에만 있고 아무도 안만나기 때문에 그런지 남편이 하는 소리가 똑같아서 좋은 소리도 한두번이지 지겨워요. 집에서 드라마나 보고 신문이나 봐서 그런지 시야가 좁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간혹 제가 무시하는지 혼자 토라져서 툴툴댑니다.
자존감이 낮아져서 그러는지 자꾸 다리를 떨고, 말할 때 손을 많이 쓰고 - 어찌보면 틱을 하는 것 같은 증상이 생겨요. 하지 말라고 하면 성질을 부립니다.
사소한 일에 짜증을 부려요. 투덜거리고 칫, 쳇, 쩝 등등 이상한 소리를 많이 내요. 듣기가 싫다, 이상하다, 그러지 마라 이야기 하면 또 섭섭해하며 삐집니다.
결정적으로 집에 있으면서 안씻어서 머리는 까치집 짓고 수염이 삐죽거리고 얼굴이 번들거려요. 저녁에 들어와서 얼굴을 보면 눈을 마주치기가 싫습니다. 지저분한 모습이 거슬린다 말을 해도 안들어요. 귀찮대요.
집에 혼자만 있기 때문에 제가 집에 들어오면 대화를 많이 해주기를 원합니다. 솔직히 전 할 말도 없고 그냥 쉬고 싶고 대화해도 재미도 없어요. 말로는 제가 친구들과 여행가거나 하면 괜찮다고 하면서 다녀오면 집안에 우울한 분위기로 착 가라앉아있어요.
저도 간혹 빈집에 혼자 있고 싶은데 집에 남편이 붙박이로 항상 있으니 혼자만의 시간이 없어요. 그것도 짜증납니다. 나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했더니 '나더러 어디를 가라는 거냐'고 화를 냅니다.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사소한 일에 자꾸 잔소리하고 따라다니며 독촉을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에요. 그리고 제가 반응을 안하면 버럭거려요.
솔직히 졸혼이라도 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날 수록 뭐라고 조금만 해도 토라지고 삐지는데 환장하겠어요. 아이는 독립해서 외국에 나가 둘만 사는데 저러니 환장하겠습니다. 제게 어떤 조언이라도 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쓰고나서 보니 좀 창피해서 조언은 놔두고 본문은 삭제할 수도 있어요. 양해 미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