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전에 연주회 보고 들어왔는데 흥분해서 잠자긴 글렀네요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의 광기에 휩싸여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때론 개미 발자국만큼 작은 소리를 내며 사람을 쥐었다 놓았다 했던 연주!
다들 숨소리도 안내는 상황에서 티는 못내고 속으로만 "미쳤어! 인간이 아니야! 행복해 죽겠어! 저 바이올린 줄로 내 목을 감아도 좋아!..." 외치면서, 마음 속으로는 하늘과 땅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들었어요
오죽 좋았으면 모든 신들께 감사, 다리에 문제가 생겨 의사가 당분간 조심하라고 했는데 보호대 하고 절뚝이며 걸어 공연장에 올 수 있는 망가진 다리라도 있어서 감사, 3만원 티켓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력에 감사, 한국하고도 서울에 살아서 이 밤에 이런 연주를 볼 수 있음에 감사, 죽기 전에 이런 즐거움을 알게 해주심에 감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감사, 음악성도 뛰어나지만 연주하는 비주얼마저 훌륭한 연주자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 ㅎㅎ...수많은 감사를 하며 1초 1초를 아끼며 즐겼어요
이걸 모르고 죽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지...
물론 오늘뿐 아니라 한번씩 음악회 갈 때마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의 세기만큼 엔돌핀, 도파민이 용암처럼 분출되서 여기가 클라우드 나인이로구나 할 정도로 행복의 절정을 느껴요
그것 뿐인가요
책을 읽다보면 책 속에 빠져 들어가 무한 상상의 세계 속으로 회오리처럼 빨려들어가 인물들과 함께 다니고, 그들의 고민이나 궁금증도 함께 경험하고, 죽음과 같이 예행연습이 불가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평생 모르고 산 것을 알게 되어 깜짝 놀라는 동시에 알아가는 즐거움도 얻고, 내 몸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고 배가 뒤집어지는 풍랑 속 고래 사냥에도 가보고, 어느 먼나라 뒷골목에도 가보고 마술이나 4차원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도 보고,..
여기서 추천받은 '우아한 연인'을 지금 읽는 중인데 거기에 나온 '닫힌 부엌의 계란 (closed kitchen egg)' 조리법이 쉬우면서도 맛있어 보여서 진짜 그런게 있나하고 검색해 봤더니 외국엔 저처럼 그 책을 읽고 그 계란 요리를 시도한 혹은 시도할 사람들이 꽤나 많더라고요 ㅎㅎ
저도 내일 아침 해먹으려고 치즈도 샀어요 ^^
또 한번은 소설을 읽다가 새 뼈는 가운데가 텅 비었다는 구절을 읽고서는 저도 모르게 "진짜?!!"라고 외치면서 폭풍 검색을 해보니 그렇다네요 ㅎㅎ
너무 재미있어서 파도타기로 검색을 두세시간쯤 하면서 온갖 자료를 다 찾아보니 궁금증도 풀리고 새로운 사실들도 배우고... 삼천포로 빠지는게 나쁜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재미일 수 있더라고요
또,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은 저의 스승입니다
인내심 기르는데 최고이고, 서프라이즈 선물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자연의 섭리와 우주의 시간을 알려주는 도사들이예요
기다리다 지쳐 포기했다 싶으면 어느날 반짝 이쁜 꽃을 피우질 않나, 죽었나 싶었는데 누런 잎파리 사이에서 연초록의 돌돌말린 잎사귀가 뾰족 나올 때면 가슴이 터져요
잎파리 나오는 모양새도 다르고 순서도 다르고, 자체 수분이 넘치면 잎사귀 끝에 눈물 한방울 매달고, 수직으로 늘어진 잎파리가 물만 줬을 뿐인데 90 각도로 빠짝 서는 것도 재미있고, 보드라운 잎파리인줄 알고 만져봤더니 두툼하고 뻣뻣한 가죽 같아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매일 거기서 거기인줄 알았던 선인장에서 사람 위장을 닮은 살색 꽃들이 끝도 없이 수십개 달리길래 기괴해서 검색해 보니 선인장 영어 이름이 '위장'이더라고요 ㅎㅎ
제 아이들 다 키우고 나니 다른 아가들 고집피우며 "싫어" "내가!"라고 떼쓰는 것도 막상 아기 엄마들은 미운세살이라고 힘들어하는데 제삼자인 제 눈엔 자아가 생기느라 저러는구나, 정상이네, 잘 자라고 있네~하는 생각부터 들어 기특하고,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으로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큰 상실감은 부모님이 저에게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웠는지를 알게 해준 기회임을 알게되고 감사하게 되었고, 몇년 간의 죽을 것 같은 괴로움을 겪어내니 전에는 없던 큰 힘이 나에게 생긴 것을 알게되어 그 역설에 신기했고,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동시에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도 재미있고, 매번 해와 달이 뜨고 질 때마다 다른 모습과 다른 하늘 색인 것도 놀랍고, 얼마전 눈으로 뒤덮힌 숲에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을 본 것도 축복이고.. 등등
물론 사람은 다 죽는데 나는 안 죽을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신기하고, 살다보니 죽을만큼 힘든 일도 한번씩 생기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걸 알기에 기뻐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도 신기... 하지만 그 불행과 고통으로 보이는 것들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도 반드시 있다는 것, 불행과 고통이 오히려 행복과 감사의 존재를 비추어 알게 해주는 불빛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이들면서 더 잘 알게됩니다
어짜피 살아야 할 시간들이 있다면 무겁고 어둡고 두렵고 화나는 것들에 얽매여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을 놓치는 일 없이 사는 것이 남는 인생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