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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삽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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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부심 쩌는 글에 댓글도 많고 질문도 많아
따로 글을 써봅니다.
먼저 종로는 시내 한복판 도심 속 시골 같은 정서가 있어요.
다른 곳에 비해 이동이 적고
한 곳에 오래 사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지요.
오래 전 경복궁을 산책하던 중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긴 싸리비로 청소를 하는, 연세 드신 남자분을 본 적이 있어요.
어둑한 저녁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그 장면은 제게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죠.
영화, 마지막 황제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며, 아련한 서글픔이 느껴졌어요.
기억 저편의 아스라한 전생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무도 알 수야 없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궁을 청소하는 그 분의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기에
그날의 기억만큼은 오래 남아있어요.
이렇듯 종로는 저에게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준 곳이에요.
종로에 특화된 특별 체험(?)으로 제 삶은 더 풍성해졌지요.
물론 저에겐 살기 편하고 정겹고 좋지만
각자 사는 방식도 추구하는 것도 다르기에
취향이 다른 분께는 아닐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장단점을 다루는, 좀 더 중립적인(??ㅎㅎ) 입장에서
종로 소개를 몇 가지 더 해 보려고 합니다. ㅎㅎㅎ
1. 집값은?
동네마다 위치 따라 천차만별 아닐까요?
일단 종로에 아파트는 많지 않습니다.
주거의 형태가 다양한 편으로 단독, 빌라, 한옥 등이 많아요.
아파트를 원하신다면 경희궁의 아침 등 몇 군데가 있긴 하겠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소수인 편이지요.
저는 집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주거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집값이 오를 거냐, 여기에 투자를 하는 게 맞는 거냐 라고 물으시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규제도 많아 높은 건물을 짓는 것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종로는 오래 된 동네라 골목골목 역사와 시간이 함께 한 곳이 많습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주택가는 블럭으로 구획하여 만든 곳이 아니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옛길이 많고 좁은 길이 대부분이에요.
그런 정취가 좋아 종로에 사는 것이기 때문에 제겐 아무 문제될 게 없어요.
차 한 대 다닐 골목도 있고, 2대가 지나갈 수 있는 곳도 있고
너무 좁아 차가 못 들어가는 곳도 있어요.
거긴 집값이 좀 싸겠지요?
저희 아이들이 뛰어 놀았던 집 앞 골목은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스팔트 포장 안 된 불편한 콘크리트 길도 많아요.
그리고 눈이 많이 오면 동네 사람들 다 나와
골목길에 염화칼슘도 뿌리고
너까래로 밀고 비로 쓸어 눈도 치웁니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니 그다지 귀찮지 않습니다.
애들이랑 같이 하면 즐거울 때도 많아요.
2. 주차장은?
저희 집은 주차장이 있지만
주차장이 없는 경우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을 이용하기도 하고, 집 앞에 대기도 합니다.
차가 꼭 필요하신 분은 주차장이 확보된 집을 알아 보셔야겠지요.
그런데 지인 중에는 차를 아예 사지 않는 분도 있어요.
그 집도 주차장은 있는데 굳이 필요치 않다고 그냥 없이 삽니다.
한옥은 주차장이 딸린 경우가 많지 않아 대체적으로 주차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단독도 빌라도 주차장이 있는 곳도 있지만 동네 전체로 보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편이에요.
3. 장보기는?
가까운 곳에 대형마트는 없습니다.
꼭 대형마트에 가야 한다면 서울역 롯데마트를 가겠지만, 1년에 한번도 갈까 말까예요.
저는 동네 정육점, 작은 마켓, 온라인, 이동식 채소 트럭 아저씨(9시, 12시 아저씨)에게서 채소나 과일을 구입하곤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 단골이기 때문에 물건의 질은 좋아요. 필요한 걸 미리 주문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돈 없으면 외상도 가능해요. 외상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사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아저씨가 미리 그렇게 말씀하십니다.ㅎㅎ
편의점 도처에 널려서 간단한 것 사기는 쉽고
거기서 구하기 어렵고 밤 늦게 급하면 근처 홈플 익스프레스 같은 데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4. 병원은?
가까이에는 치과, 내과, 정형외과 등이 있고
종로 통에도 피부과, 치과, 하나로 검진 센터 등 웬만한 병원은 다 있습니다.
큰 병원은 강북삼성이나 서울대 병원, 해정병원, 세란병원 등이 있어서
병원 가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5. 시위나 소음은?
이제는 즐기는(?) 단계입니다.
시위는 불편하나 필요한 것이기도 하기에
가끔 짜증이 나지만, 성숙한 민주 시민이 되기 위해 즐기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광화문을 지나가면서는 시끄럽지만
조금만 멀어지면 그렇게 힘들 만큼 시끄럽지는 않아요.
시위하면 시위하나 보다, 그냥 그렇습니다.
시위로 차가 막히는 경우도 많으나
종로 부심 쩌는 지박령에게는 샛길 이용의 미학이 있습니다.ㅎㅎㅎ
예술적으로 샥샥, 네비님은 절대 알려 주지 않는 길을 애용합니다.
관철동 같은 밤중까지 북적거리는 상업지역도 있지만, 주택가는 대부분 조용합니다.
6. 학교는?
초 중 고 대학까지 가까이에 좋은 학교들 두루두루 있어요.
청소년 유해 가게 거의 없어 애들 키우기도 좋아요.
보는 시각에 따라 장점 단점 다 있겠지만
저는 여전히 종로 부심 뿜뿜이에요.ㅎㅎ
종로에 살고 싶으시다면
내게 뭐가 중요한가를 꼼꼼히 따져보고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