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한동훈 86론에 대하여

한동훈의 86 운동권 청산 주장에 분노하며

 나는 81년에 대학에 입학하여 학내 시위 관련으로 83년 강제징집당했다. 85년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하였으나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대학 졸업장은 무의미하다고 여겨 복학하지 않고 성남에 있는 작은 공장에 ‘위장취업’했다. 학교는 미등록 제적되었다. 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며 제적생 복교 허용 조치가 있었으나, 노정권 역시 군사독재의 연장이라는 판단에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가 93년 YS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복학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땐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대학에 다닌다는 것이 매우 힘든 상황이라 교수님들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되나 무척 고심되었다. 특히 당시 학과장을 맡고 계신 교수님은 내가 강집되기 전 엄격한 학사관리로 여러 차례 충돌한 적도 있었던 분이라 사정을 말씀드리기 더 힘들었다.
 교수님 연구실 좁은 공간에 마주앉아 어렵게 용건을 꺼냈다. 뒤늦게 복학은 했으나 직장 관계로 결석이 잦겠지만 레포트나 시험은 충실히 준비하겠노라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분의 대답은 감동 그 자체였다. 30년 전 일이지만 그분 말씀의 토씨 하나까지 기억한다.
 “자네는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학점을 받을 자격이 있네.”
 교수님과 두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80년대 학번들과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알았던 그때의 학생들이 너무 그리웠다고 하셨다. 90년대가 되면서 학생들은 전공 불문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시 공부하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위 동료 학생들이나 공동체의 안위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하다면서 그들의 개인주의적 행태를 비판하셨다.

 “당신은 그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떳떳하고자 했다. 일신의 영달이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었고 오로지 우리에게 던져진 시대적 책무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 목숨까지 포함해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민주화라는 소중한 성과물을 만들어냈다.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기 동지들과 구석진 선술집에서 소리 죽여 ‘아침 이슬’을 부르다 누군가 그랬다. 언젠가 세종문화회관 단상에서 서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이 노래를 불러 보았으면 좋겠다고. 그걸로 족하다고 여겼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소위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 그들의 활동이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80년대 운동권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십수년 전 쯤인가 동아일보 논설위원의 칼럼 하나가 기억난다.
 “우익이여! 궐기하라!” 
 필자는 나의 고교 동기생이었는데, 그 논조는 좌익이 권력을 잡고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우익이 대동단결하여 좌익을 척결하고 우익이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극우 유투브 활동을 하고 있는 그 친구의 눈에는 온 세상이 벌겋게 보일 터이다. 그런데 한동훈이나 윤석열의 인식이 그 친구의 인식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화가 치민다.
 지금 우리 나라가 좌익이 활개치는 사회인가? 좌익이 지배계층이 되어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가? 70~80년대에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살기등등했던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 맨손으로 맞섰던 당시 20대의 청년들이 지금은 환갑을 넘겼거나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처지가 어떠한지 정녕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그들 대부분은 구속되거나 강제징집되거나 해서 제적되고, 그까진 아니더라도 학점 관리를 제대로 못했으니 고시라도 붙지 않으면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직장생활도 경제활동도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소위 SKY 출신 조차도 가계유지가 힘들 정도의 궁핍한 생활을 하는 이가 많고 지방대 출신들의 어려움은 훨씬 더 큰 것으로 알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무슨 좌익 세상 운운하고 있는가?

 목숨 걸고 민주화 투쟁에 헌신했던 우리들의 바람은 소박한 것이었다. 불의한 세상에 맞선 것은 역사와 자식들에 떳떳하고자 함이었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것이었지 그 어떤 일신의 영달도 추구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의 경제적 빈곤함이 우리를 옥죄더라도 단 한 순간도 젊은 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의한 시대에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숱한 애환과 고통에 눈 감고 오로지 자신의 입신양명을 추구해왔던 당신 같은 자들이 감히 86세대를 능멸할 수 있는가?
 일부 86 출신 정치인의 부도덕함이나 불법적 행위가 있었다 치더라도 그것을 86세대 전체의 문제로 덮어씌우고자 함은 역사와 공동체에 당당할 수 없는 자신들의 비겁함을 감추고자 하는 얄팍한 술책에 다름아니다.
 한동훈은 개인 출세만을 추구해왔던 자신의 삶을 먼저 성찰하고 구차스런 입으로 더 이상 공정, 정의를 욕되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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