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마자 임신 되어 아이 하나 낳고 이십년 넘게 리스로 살아왔어요. 이유는 아직도 몰라요. 임신했을 때는 임신중이라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출산 후에도 전혀 관계를 원하지 않더라고요. 상담 받아보자 했는데 미친듯이 화만 내서 두번 말도 못해봤어요. 아이 열 살 무렵 갑자기 둘째 얘기를 꺼내서 몇번 시도했는데 발기도 잘 안되고 유지도 안되는 느낌이었어요. 둘째 임신은 안되었고요. 저는 남편 외에 관계 가져본 사람이 없어 비교도 어려웠네요.
제가 성욕이 강한 편이 아니어서인지 수녀님 같은 삶을 그냥 감내하고 살아왔어요. 십여년 전 남편 책상 서랍에서 발기부전 치료제를 무더기로 발견했는데 뜯은 흔적이 없어 말을 할까 하다가 그냥 덮었어요. 아이가 초등이었고 저는 직장 생활 너무 바쁜 때라 말을 꺼내고 싸우고 이혼하고 이런 일이 엄두가 안났던 것 같아요. 원래 갈등 상황에서 회피 성향이 강하고 싸우는 걸 못하다보니 이러고 이십년을 살았네요.
저는 오십이 넘었고 작년에 퇴직했어요. 남편과는 리스 아니라도 너무 안맞아 결혼 초에는 제 회피 성향을 이길 정도로 싸울 일이 많았어요. 이십년 넘게 돈 벌어오는 거 외에는 장점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이에게도 강압적으로 굴어 아이는 대학 가자마자 집에서 다닐만한 거리인데도 나가서 살아요. 시부모 살아계실 때는 하느님 떠받들듯 매주 가야 했고 그걸 이십년 계속 했어요. 자기가 하는 말을 반대하면 이성을 잃고 화를 내고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할 때까지 집요하게 굴었어요.
오늘 아침에 드라이 맡기려고 옷 정리하다가 남편 주머니에서 발기부전 치료제를 또 발견했네요. 어제 퇴근하고 친구 만나러 간다고 나갔는데 그 친구가 여자였는지, 성매매를 한건지 둘 중 하나겠네요. 십년 전 발견한 발기부전 치료제는 발견 당시 유통기한이 이미 지난 상태로 뜯은 흔적이 없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이제는 아이도 성인이고 시부모도 돌아가셨으니 걸리는 게 없어 이혼하고 싶네요. 정서적으로 오래전부터 이혼 상태여서인지 충격은 그다지 없고 나만 좋은 시절 수녀처럼 살았구나 허탈한 마음이 들어요. 막연히 여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그래도 확실히 확인하니 마음에서 뭔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 이제는 이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연금 나오고 친정에서 상속받은 작은 아파트도 있어서 혼자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어요. 다만 더 젊은 날 결단을 못내린 내가 너무 바보같고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