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저 지친 50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살기가 힘들지만 죽고 싶을 만큼은 아니에요.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렇지만 삶의 의욕이 없어요. 이 나이에 철없다 하셔도 바꿀 수가 없네요. ㅠ

 

첫 우울감, 무기력을 느낀건 유치원때 였어요.

가난하고, 초라하고 드센 부모님과 조부모와 삼촌, 고모가 같이 살면서 매일 돈 때문에 싸우는 걸 봤어요. 

사업하려고 고향에 내려오신 아빠의 사업이 잘 되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삼촌, 고모들 무능한 할아버지 때문에 어렵게 살았지만 큰아빠와 아빠가 능력 있어서 동생들 다 공부시키고, 결혼 사키고 조부모 돌아가시기 전까지 뒷바라지 다 했어요. 그 사이에 전 정서적으로는 불행한 어린 시절과 경제적으로는 점점 풍족해지는 그 기로에 서있었죠. 예민한 기질이어서 지금까지도 그런 기억을 간직해요.

2살 차이 남동생은 이쁘고 착하고 얌전해서 누구든지 좋아하고 저절로 사랑받는 위치랄까?

저는 뭐든지 잘하고 싶고, 하고 싶은거 많고 주목받고 싶고 나서기 좋아했는데 한편으로는 항상 눌림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나서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 못해...이런 부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집에서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이라 애써 분위기 밝게, 밝은 척......

아버지의 무거운 책임감이 마무리되는 시점인 중, 고등 시절은 행복하다고 느낄만 했어요. 오로지 우리 4식구만 살고 여유롭게 점점 잘살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재능이 많고 똑똑한 편이었지만 변두리 학교 안에서였고, 언제나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앞에 있으니 좀더 조력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고지식한 부모님은 항상 안되고 못하게 하시고 그런 상황에서 시내 명문여고로 진학하면서 주눅 들고 한계에 부딪쳤던 것 같아요. 잘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고지식한 부모님과는 늘 소통이 안되었어요. 자유를 제한당하고..여학생 같은 잡지를 보는 것도 우리집에서는 탈선같은 범주, 친구들과 외출도 못했고 반항도 해봤지만 부모님이 워낙 세시니 그렇게 눌려 살았네요. 대학때도 찬구들과 맥주 3잔 마시고 들어오는 길에 문앞에 기다리고 있던 엄마한테 따귀 맞았던 일은 잊혀지지 않네요. 그 모멸감, 모욕감.

원래 부모님 계획대로라면 대학 4학년에 선을 봐서 부모님이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수순인데 결혼만큼은 아니 그렇게 끌려가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 끝까지 반항하고 거부하는 과정에서 자살시도를 한적 있어요. 죽고 싶을 만큼 시달리고 시달리다가 눈오는 어느 겨울 대관령에서 떨어져 죽고 싶은 생각에 달렸는데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그 무시무시한 생각을 멈출수 밖에없었던 일....

 

그래도 20대는 겉으로는 열심히 성실하게 인정받으며 잘 나가던 시절이었어요. 계속 공부해서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지만 내가 벌면서 마음대로 소비하는 재미에 빠져서 멋쟁이 소리 듣는게 유일한 낙이었던 것 같아요. 깊은 내면에서는 계속 연구하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살아있어서 그에 대한 준비도 하면서 나름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어요. 친구와 어쩌다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불호령에 한밤 중에 고속도로를 달려오던 일도 있었네요. 그래도 살만 했던건 너무나 비슷한 환경에 아니 나보다 더 센 부모님 밑에서 순종하고 지금까지 순종하며 사는 절친이 있었기에 붙어다니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며 지냈고 지금은 각자 좋은 남편 만나서 잘 살고 있어요.

 

돈은 없었지만 착하고 인성이 좋은, 능력있는 남편 만나서 잘 살아왔어요. 친정이 여유있었으니 시댁이 돈이 없는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어요. 순진하던 때였죠.

경제적인게 문제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별나서 시댁 문화가 정말 별나서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은 모두 잘살게 되었는데 내면은 너무 세속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문화랄까? 알고보면 우리 시대 훨씬 전부터 강남, 강북으로 계급이 나눠진 것을....

암튼, 어디 털어놓을데도 없는 어려움을 엄마와 나누며 경제적인 도움(첫집 살때, 소소한 살림살이 등)도 얻으며 그때는 마음이 잘 통했던것 같아요.

한마디로 마음에 드는 사위와 결혼함으로 부모님이 자녀에 책임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됐고, 저는 당당하게 독립적인 새생활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제가 직업을 갖지 않아도 남편 월급으로 아껴 살고 남편 공부나 직장 내 성공하도록 뒷바라지 하고 시댁이 뭐라 해도 때때로 친정부모님과 소박한 나들이나 여행다니며 소박하게나마 효도한다는 마음도 가져봤구요.

아빠가 사업하실때 돈이 쏟아져 들어와도 늘 마음은 불안했어요. 큰 사업 하면서 대출이라고는 없이 툭하면 터지는 부도 막으며 직원들 월급, 사업 대금 한번 밀리지 않고 제 날짜에 주려면 사업주는, 그 가정은 여행은 사치고 외식 한번 하기 힘든 바람 잘 날 없는 풍전등화 였거든요. 그래서 큰돈 아니지만 꼬박꼬박 모아서 집도 사고 아이 유치원도 좋은 곳 골라 보내고  책이며 예체능이며 적정선에서 교육시키고 아이 키우는 재미를 느끼며 그런 것들을 부모님과 공유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복이 여기까지였나봐요.

저희가 산 첫집도, 그 다음 집도.. 항상 사고 나면 떨어지고 직장 발령때문에 손해나고 팔고 하는 일이 몇번 반복되고 나니 자산이 늘어나지 않았어요. 그래도 남편이 소위 잘 나가니 실망은 했지만 희망은 있었어요.

착한 남동생은 이쁘고 좋은 아가씨와 결혼을 잘했어요. 평소 부모님 말씀대로 몸만 와도 좋으니 교회에 다녔으면 좋겠다는 바램대로 정말  침대, 냉장고, 식탁만 들고 왔어요.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데다가 똑똑하고 고분고분하지 않는 저와는 달리 순종하고 착하고 배우 강동원 처럼 인물이 훤칠한 아들은 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만 빼면 엄마의 모든 것이었어요.

엄마 옆 동네에 새아파트 분양받아서 대리석으로, 베란다에 예쁜 화단까지 인테리어 수천 들여서 신혼부부 살림집 마련해 주셨어요. 그때쯤 저도 첫집을 샀는데  지방의 동생집과 수도권의 저희집 값이 비슷한 정도에서 동생은 자기돈 한푼도 안들어간 결혼생활을 시작했어요.

베란다에 확장을 하고 싶어서 알아보니 2-3백 사이였나? 동생은 똑같이 베란다 확장에 화단도 꾸미면서 인테리어에 2천만원이 넘게 엄마가 해주는데 제돈으로도 할까 말까 하는 저보고 돈도 없는 것들이 그런걸 왜 하냐고 하실때 비로소 딸과 아들이 다르다는 차별받아왔음을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정서적으로는 익숙한 멘트고 지역적으로 우리 집만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님 기대에 부응하는 딸도 아니었으니까 그럴수 있다고 이해하며 살아왔는데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하더라구요.

그래도 경제적 어려움없이 자라 돈쓰기 좋아하는 딸이 남편 월급에 맞춰 아껴쓰고 부모님한테 잘할려고 때때로 양가 부모님 모시고 소박하게나마 여행다니고 맛집 찾아 다니고 할 만큼은 되었어요. 

저는 자라면서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늘 제지하는 부모님때문에 교육에 대한 결핍이 있었나봐요. 아이 둘 욕심껏 뒷바라지 했어요. 그래봤자 책 사고, 운동, 악기 시키고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제가 교육을 돈으로 하려고 한다고 불만이 많았어요. 어느 정도 인정해요. ㅠ

몇번 집을 사고 팔았는데 빚 무서운거라 강조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남편은 부동산으로 투자하는걸 혐오하다시피 하는 사람이었기에 항상 좋은걸 못하고 물러서기를 몇번, 아이들이 커가고 이젠 정말 평생 살집을 사야겠다고 했던 그때  부모님께 부족한 6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돈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만한 돈이 없는 분들이 아닌데...그때가 동생 앞으로 10억이 넘는 4층짜리 빌딩을 준비하고 계셨고 몇달 후, 전 형편에 맞게 아쉬움이 가득한 채로 집을 샀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집값은 그대로에요. 

동생은 그때 부모님이 사주신 빌딩이 많이 올랐고 그거 팔아서 더 좋은 부동산 구매했고 계속 자산이 불어났어요. 매달 생활비도 2백쯤 받았구요. 

 

저는 그 마지막 집을 사고 얼마 있다가 외국의 대도시로 발령이 나서 큰 변화를 겪었는데  여전히 그 집을 팔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사이 전세계에 부동산 광풍이 불었네요. 저절로 하우스푸어! 아니 그냥 50대에 집이 있으나 없는거나 마찬가지에요. 비싼 렌트비를 내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 와중에 저는 열심히 가정을 돌보고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애들 교육 잘 시키고 물론 조금씩 도움을 받았어요. 정말 셋째를 혹시나 딸일수 있으니 셋째가 갖고 싶었는데 니네 능력에 무슨 애를 더 낳냐. 셋째 가지면 한국 땅에 발 디딜 생각도 하지 말라고. 어쩌다 좋은 살림살이 장만하면 넌 돈쓰기 좋아한다 월급쟁이 남편 힘들게....이런 소리도 듣고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사는게 품질도 좋고 실용적이니까 똑같은거 며느리 사주세요. 나중에는 저는 가지지 못하지만 엄마 멋부리기 좋아하셔서 유행하는 주얼리나 가방 사드리면 며느리 주더라구요. 제가 올케 것도 사줬었는데...

저는 동생보다 늘 더 능력이 있으니까 또 미래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이 더 있으니까 누나니까 항상 제가 많이 쓰고 인심이 후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랬던 제가 모지리같다가도 가족끼리 그게 얼마나 된다고 치사하게 그런 생각이 드나 싶고 괴롭네요.

그리고 동생네도 똑같이 아들 둘이었는데 동생은 세째 딸을 낳아서 아주 집안의 꽃이에요. 제가 어린 시절 어두웠던 집안 분위기에 꽃이자 활력소였던 것처럼, 조카가 사랑스러워요. 올케는 어려운 집 장녀였고, 생활력이 강해요. 직업정신이 있어서 눈치도 빠르고 사회생활을 잘해요. 능력도 있구요.

처음 결혼해서 부잣집에 시집오니 일 안하고 편하게 쉬고 싶다고 했고 이미 임신중이어서 자연스럽게 퇴직하고 아기 낳고 저희 부모님과도 서서히 정이 들면서 잘 지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저를 경계하더라구요.

전 정이 많아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너무 사랑했고 K장녀 노릇 다 했다고 생각해요. 또 매형을 따랐고( 저의 이상형이 동생에게 좋은 형이 될만한) 올케한테 난 누나랑 한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했다네요 ㅋㅋㅋ

사실은 동생이 하도 영어, 국어, 국사 같은 문과적 머리가 안돌아가서 제가 엄청 구박, 갈구면서 엄청 이해하기 쉽게 재밌게 잘 가르쳐 주고 대화 많이 했어요. 제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렸고 제 후배들도 동생한테 관심 보여서 동생 관리 하느라 신경 좀 썼네요. ㅋ

내성적인 동생이라 성향은 달랐지만 동생이 참 착해서 저도 동생을 사랑했는데 올케가 우리 가족이 저를 중심으로, 특히 제가 친정 식구들과 사이가 좋은게 이상하다고 그러더래요. 예상하기로는 자기는 없는 집에서 가족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며 자라서 억척인데 시누이는 고상하고 우아하고 찌든 모습이 없으니까 질투를 하는것 같다고 동생이 그러길래 나는 네가 결혼생활 잘하는게 중요하니까 네 보조를 맞추겠다 하고 이해한다고 했던 그렇지만 그때로부터 우리 관계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현재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남편도 그 점을 매우 아쉬워해요....

 

문제는 다 잘 살아요. 저희 가정만 흔들리고 제 마음이 돌아선 것 빼곤......많이 괴롭네요....

 

외국에 살게 되면서 어려움이 커졌어요. 저도 이렇게까지 안풀릴 줄 몰랐네요.

능력있어서 승승장구 했던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고,

대도시의 주거비용,  교육비, 생활비...돈이 많이 들어가요. 아껴쓰는 것도 한계가 있고, 최소한 삶의 질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문제죠. 문제....

결혼 이후로 사치라고는 해본 적 없지만 초라하지 않을 정도로 입히고, 가끔 밥도 사고, 커피도 사먹고 하는 그런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아주 어린 시절의 결핍이 트라우마 처럼 남아 있는지 가끔 뭔가에  꽂히면 꼭 사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어요. 사치품은 아니에요. 제가 몸뚱이도 모델같았던 동생( 강동원 같은 미소년)에 비하면 지금은 영락없는 뚱땡이 아줌마라 좀 체형 커버할만한 마음에 쏙 드는 백화점 옷이나 자라나 유니클로에서 뭉탱이로 가거나 질좋은 가전 제품 사는 정도죠....이것도 소비라면 과소비겠죠...ㅠ

 IMF처럼 코비드때 사업이 버틸려면 (사업의 아이템은 4차 산업과 관련이라 포기할 수 없었어요) 1억만 도와달라고 했는데 누가 사업을 하랬냐며 난리치시고 아들과 딸은 다르다고....

그때 저의 마음이 줄을 놓아버린 것 같아요.

그때 큰 애가 고 3,  착해서 집안이 어려워진거 알고 부모한테 도리어 우리 잘 버티자고. 아빠는 열심히 살아왔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잘 될거라고 자기도 열심히 할게 하며 전세계가 힘들고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 많다며 약할대로 약해진 엄마를 위로해줬어요. 

다행히 고비는 넘겼지만 자금부족으로 한번 때를 놓치니  영 올라서기가 힘드네요. 선두주자였는데 꽃도 못펴보고 후발주자로 밀려난 것 같아요. 그때 섭섭한 감정이 두고두고 가슴에 쌓여서 원망과 분노로 자리잡았어요.

이제 가지고 있는 재산은 다 털어서 회사로 들어갔고. 토끼가 숨이 넘어가길 기다리는 사자가 머리 위에서 잡아먹으려고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대기업들이요.

어려서 영재 소리 듣던 둘째는 선진국에서 자라다보니 어려움이 뭔지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똑똑한데 헝그리 정신이 없네요. 그냥 요즘 애들같이 좋은 컴퓨터 갖고 싶고, 헤드폰 폼나는거 음질 좋은것 사달라고 가끔 이쁜 옷 좀 사달라고 조르는 고등학생이에요. 학교에서 모범생이고, 지쳐있는 부모에게 며칠이라도 힘이 될 만한 상도 받아오고 그래서 보상도 해주고 싶은데 과외 시키느라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남편이 맨날 중고폰이나 옛날 모델만 쓰게 해요. 정말 간절하게 원할때 다른 아이들 많이 갖고 있는 수준에서 가끔 조르는데 전 정말 해주고 싶어요. 돈 없어서 안돼라는 말이 냉정하게 안돼요. 착하고 지금까지 저에게 행복바이러스 같았던 둘째가 사춘기라고, 기대만큼 헝그리정신으로 공부하진 않아도 무뚝뚝하게 성격이 변해가도 여전히 성실하고 모범생인 둘째가 택배가 언제 도착하는지 받으면 얼마나 좋아서 씩 웃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렇게 자식이 사랑스러워 뭐든지 해주고 싶은데 우리 엄마 아빠는 왜 그렇게 냉정하고 차가웠는지...그렇게 키웠기때문에 저희 남매를 잘 키웠다고 자부하세요. 동생은 몰라도 저는 상처투성인데 제가 이상한건가요?

몇일 전에 누가 올리신 글에 자식은 조금 부족하게 키워야 한다는 말에 저를 많이 돌아봤어요. 그런데 큰애는 동생 과외비 들어가는거는 이해 한다고 어쩔수 없다고 이해한대요. 몇년 후면 끝이 나니까요. 그런데 다른거는 지금은 우리가 형편이 안된다고 냉정해지라고 엄마가 너무 마음이 약하다고 뭐라고 하네요.

특히 남편은 저를 너무 몰아세워요. 결혼 후에 돈을 벌지 않은 거에 대한 원망까지 묻어나오네요. 

요즘 공부가 돈이 없이는 안되는것 같아요. 위로 갈수록 돈으로 경쟁하는... 그런데 이 녀석은 극한으로 노력하고 경쟁하고 그런걸 싫어해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냐고  아직 어려서 그런건지...

그런걸 모르시는 엄마가 지금까지 이룬 이 아이의 성취만 보고 교육비를 조금 도와주고 계세요. 동생도 엄마한테 앞으로 기대가 되니까 도와주라고 했대요. 내동생 착해요. 그런데 올케가 무슨 일로 동생하고 싸웠는지 엄마한테 전화해서 친정이나 친구한테는 못하니까 어머니한테만 하소연한다고...가끔 그래요. 동생네 정말 멋진 2층 주택에 큰 개 키우며 투자이익으로 여유있게 잘 사는데 가끔 트러블 생기면 엄마한테 하소연하고 그럴때마다 차도 바꾸고, 명품 가방도 생기고....이번에 조카 교육비 주기로 했대요. 서로 동갑인데 저희 아이 2배로...제 조카는 동생 닮아서 진중해요. 또 올케 닮아서 욕심도 많은가봐요. 우리 둘째가 의대 간다고 하니 올케가 조카한테도 너도 의대가라고 할머니가 교육비 대준다고 한것 같아요.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쓰다보니 악플도 두렵고...

문제는 저에요. 의욕도 없고 무기력하고 초라해진 나,

눈은 높은데 삶의 질은 떨어지고, 여유있고 긍정적이었던 본성은 사라지고 시기와 질투가 올라와요. 내가 이렇게 탐욕적인 인간이었나 싶어서 괴로워 죽고 싶을 만큼....

사랑했던 부모님,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어릴때 몰랐지만 엄마의 폭언과 차별, 지능적인 조종에 의해 길들여진 세월에 대한 억울함과 상처가 왜 이제야 드러나는지

엄마랑 몇번 고비를 거치면서 전화를 할때마다 싸우게 되요. 75세인 엄마는 80세의 아버지가 엄마한테 굽히지 않는거, 다른 남편들은 나이들면 변한다는데 아빠는 여전히 위풍당당한게 못견디게 미운데 그 아빠를 똑같이 닮은 딸인 저한테 그 감정을 쏟아네요. 작년 방학때 대학생이 된 큰아이와 친정에 가서 지냈는데 큰아이가 그러더라구요. 어릴때 잘해주기만 해서 몰랐는데  한두달 같이 살아보니 엄마가 정말 힘들었겠다며...어느날 대화중에 저희 큰애가 할머니는 정말 외삼촌을 사랑하시네요. 엄마도 좀 사랑해 주세요. 하나밖에 없는 딸이잖아요. 그러니까 좀 찔리셨는지 저의 약점을 끄집어내며 너네 엄마 그렇지 않냐고 하니 큰애가 아니라고 엄마는 엄마 위해서 암것도 안하고 자기나 동생 위해서만 가족을 위해서만 희생하고 고생한다고 하니 엄마가 비웃으시고 그 뒤로 몇번이나 애를 찔러보는데 애가 질문의 의도는 눈치 못채고 순진하게 있는 그대로 대답했을때 더이상 따지지 못하고 띠꺼워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며 너무 통쾌하면서도 정말 씁쓸했어요. 지방에 흩어져 사는 이모들 만나러 큰애랑 엄마 모시고 그 추운날 식당에 모였는데 앉자마자 제 흉을 보시고 비교하면서 며느리는 내 맘에 쏙 든다. 나한테 다 잘한다..심지어 저의 유일한 위로인 신앙생활까지 이젠 며느리도 딸만큼 발전했다고 그리고 아빠 닮아서 성격이 똑같다...제가 순간 울컥해서 처음으로 내가 그렇게 밉냐고..그렇게 싫으냐고 대들었네요. 나이 오십에 아들앞에서 이모들 앞에서....

똑똑했으나 약아빠진 막내이모는 어디 엄마한테 대드냐고 나무라시고, 저랑 마음이 잘 통하는 엄마와는 결이 다른 큰이모는 부모 자식간에도 서로 상처되는 말은 하지 말아야 된다며 제 편을 드시면서 저한테 삶의 지혜가 될만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엄마 성격을 아니까 니가 힘들겠지만 네가 중심잡고 바로 서라고....

막내이모는 본인도 남존여비의 피해자면서 저한테 공감해주는게 아니라 자식생각만 하고 자식들한테만 돈쓰지 말고 동생들한테도 화끈하게 쏘라는 이모는 쏠쏠히 엄마한테 잘 뜯어내요. 하와이여행 같이 가자고 부추기고 엄마보고 내라고,  짠순이 엄마 아빠라 이모들 성에 차지도 않겠지만 실제로 이모나 친척들이 생각하는 만큼 부자도 아니에요.  정말 많이 벌었지만 그 많은 양쪽 동생들 공부시키고 경제적으로 자리잡고 살게 도와주고 조부모님 노후도 거의 저희 부모님이 감당하셨거든요. 저는 잘 알아요. 그 역사를 같이 겪으며 컸고, 전 예민했고 영민했고 가족을 사랑했으니까 그 어려움들 보면서 부모님 위로하며 격려하며 힘든 부모님의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은 저였으니까요.

 

이 글을 쓰면서 너무 눈물이 나네요.

살고 싶은 의욕이 이렇게 바닥인 적이 없어서요.

엄마와 마지막 통화가 한달전이네요. 엄마가 교육비 대신 것도 있고 작은 아이가 큰상을 받아서 기뻐서 고마워서 전화했고 기뻐하셨는데, 그러면서 엄마가 의대에 보내라고 제가 가능성은 있지만 너무 힘들고 어려운 길이니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또 아이가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는 타입도 아니구요...그랬더니 너네 주제에 애를 의사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거냐고, 되지도 않는 사업은 누가 하랬냐고 요즘 돈없이 어떻게 공부시키냐고....큰애도 왜 대학원 안가냐고 너네만 보면 속 터진다고 하시는데 너무 비참하네요.

 

그리고는 조카와 비교하며 조카도 어릴때는 몰랐는데 커가면서 공부욕심이 많아 우리 애 두배로 교육비 대주시느라 엄마가 요즘 돈을 못써서 짜증난다고, 남들은 딸이 능력있어서 엄마한테 잘한다는데 나는 남편 성질 평생 맞추고 살고 양쪽으로 돈 대주느라 이나이까지 힘들다고 하시니 너무 속상해서 못들어주겠더라구요.

부모님이 너무 성격이 세서 자식들 다 쥐고 사셨고, 사랑한다거나 정서적으로 격려같은거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저는 항상 사랑받고 싶어서 그 정이 그리워서 차갑고 냉정한 부모님한테 먼저 다가가고 또 다가가고 부모님 비위 잘 맞추며 집안 분위기 화목하게 만드는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나봐요. 엄마가 늘 딸이 있어서 좋다고 하셨어요. 아빠는 말할것도 없죠.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커녕  야생마같은 아빠를 엄마 방식으로 길들이려고 하니 아빠와의 관계가 삐걱거릴때마다 제가 다 받아들였고 아빠도 그런 가족 중에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게 딸이었으니까요.

 그 와중에 저는 그나마 결혼해서 독립적으로 잘 살다가 몇년전부터 일이 잘 안풀리니 이런 무시를 듣고 정말 절실할때 필요할때 부탁했는데 너무 차갑고 냉정하게 거절당해서 일어서야 할때 일어서질 못했어요. 너무나 원망스럽고 그때 마음의 문이 완전히 닫힌것 같아요. 더이상 부모님을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질 않아요. 그때 그 시점에 동생은 자산을 불려가서 지금은 정말 잘 살아요. 조카들도 조부모한테 풍성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선지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 하고 잘 사네요.

 

전 남의 나라에서 아무 도움 없이 억척스럽지도 않은데 부모가 물려줄 것 없는데 순진하기만 제 아이들이 자라서 삶이 얼마나 버거울지 아니까 적어도 이렇게 나약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겠다 마음 먹는데 정말 바뀌지가 않네요. 삶이 너무 비참하고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어요. 제가 너무 나약한거 알아요. 그런데 힘이 드네요....뭐라고 한마디씩 해주세요. 너무 아픈 말은 말고요....시간이 좀 지나면 펑 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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