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어린시절 화장실 이야기 (더러움 주의)

저는 산동네 무허가건물에 살았어요. 어렸을 때는 연탄을 땠고, 좀 커서는 기름보일러를 들였지만 그래도 추워서 이불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집이요. 집에 소파나 식탁 같은 건 없어서 집에 있다는 건 내내 이불 속에 누워서 작은 TV만 보는 거예요. 대학 오기 전까지, 제가 기억하는 모든 어린 시절을 그 집에서 보냈어요.

 

그 집엔 화장실이 밖에 있었어요. 한 사람 들어가서 용변 볼만한 작은 공간인 화장실은, 벽은 벽돌을 쌓아 대충 시멘트로 발라놔서 손등을 스치기라도 하면 상처가 났어요. 나무문은 어디서 주워온 판자로 대충 못질해두었던 거 같아요.

 

화장실 바닥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었는데, 꽤 컸고, 거기엔 식구들이 눈 똥과 오줌과 구더기가 가득 있었습니다. 다 보였어요. 휴지통은 가득 차면 그대로 태워버리는 철로 된 통이었는데, 식구들의 용변이 묻은 휴지들이 그대로 보였어요. 그걸 좀 안 보이게 버릴 순 없었을까요. 모두 다 싫었지만, 제일 싫은 건 곱등이였습니다. 툭, 툭, 툭 튀어오르다가 엉덩이에 닿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아빠도 엄마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아빠는 지팡이가 있어야 걷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화장실에서 참 힘들었겠다 싶어요. 엄마는 제게 짜증을 자주 냈었지만 그래도 저를 사랑했던 마음은 압니다. 엄마는 생리통 증상으로 구토하곤 했었는데 그 화장실에서 고개 숙여 토하기, 참 힘들었겠죠.

 

기저귀 뗀 저는 그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기 시작했고, 생리대 가는 법도 그 화장실에서 스스로 깨우쳤어요. 그래도 바깥 화장실은 귀찮으니까, 추우니까, 요강도 같이 썼고, 생리대쯤은 방 안에서도 갈았습니다.

 

아, 씻는 곳이요? 기름보일러로 바꾸던 무렵, 부엌에도 입식 싱크대가 들어왔어요. 저는 그곳에서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따뜻한 물이 잘 나와서 세수하고 머리감기엔 괜찮았어요. 싱크대에서 발도 씻고, 요강도 비우고 했으니, 우리집 부엌은 화장실이자 욕실이자 주방이었네요.

 

이런 집에 살아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저의 불편이 아니라(익숙하니까 불편한지도 더러운지도 몰라요),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친척언니가 집에 왔는데, 똥이 마려운데 이 화장실은 도저히 못쓰겠다고 해서 밖에서 신문지 깔고 똥을 누고 갔어요. 그 언니가 그때 6학년쯤이었는데 저희 집 화장실 쓰는 것보다 본인 똥을 보여주는 게 나았나봐요. 웃기게도 그 친척언니가 밖에서 누고 간 똥이 저한테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지금 참 깔끔쟁이인데, 그 때는 매일 씻는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중3 때 담임선생님이 저에게 머리 좀 감고 오라고 하셨어요. 기름이 잘 지는 머리인데, 그 당시의 저는 기름진 머리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나봐요.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빠와 할아버지 덕에, 교복에 담배 냄새까지 베어서 다녔네요. 바디로션이나 선크림 같은 지금은 매일 바르는 것들도, 대학교 때 혼자 자취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서울로 대학을 와서 엄마가 얻어준 자취 집엔 하얀 도기 변기가 있었어요. 세면대 있는 집을 얻는 건 더 나중 일이었는데, 변기가 있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마음만 있는 부모 밑에서 사교육 하나 없이, 왕따도 살짝살짝 당하면서 자랐는데, 저, 공부는 참 잘 해서 대학은 잘 갔어요. 근데 성공은 못했네요. 제 마음의 그릇이 작아서 일까요. 가난하게 자랐어도 마음 넉넉한 사람들은 정말 성인처럼 느껴져요. 저는 그렇지 못해서, 남이 잘 된다하면 질투하게 됩니다. 별일 아닌 걸로 짝지에게 화내고 짜증내고 그러다가 내가 안쓰러워져 잘 울고요, 나쁜 사람이지는 않았던 엄마와 아빠 탓을 해요.

 

종종 화장실 꿈을 꾸어요. 창문이 크게 있어서 다른 사람이 훤히 볼 수 있는 화장실이라거나, 교실 한 가운데 놓인 변기를 써야 한다거나, 벌레가 우글거리는 화장실이라거나, 더러운데도 참고 용변을 보아야 한다거나, 내 오줌이 그대로 바닥으로 흘러버린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어린 시절 생각을 하곤 해요.

 

새벽에 화장실 꿈을 꾸고 나서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제 친정 같은 공간에 풀어놓아봅니다. 이십대 초반쯤 이곳에 가입했었는데, 엄마에게 못배운 것들을 이곳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더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참 삼십대 후반이에요. 그 집에 산 시간의 길이만큼이 지나왔는데도 여전히 저는 거기에 머물러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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