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삼수하는 아이이야기...

아이가 삼수를 해요.
많이 아팠습니다.
그 아픈게 정신과 질환이었고요.
재수할 때 학원을 간다고 나서선 대치동 주변을 하염없이 걷고 술 마시고 울고 
학원들어가선 자다 깨다 하고
시대인재나 대성 같은 재종반이 아니라 그리 관리도 잘 안 되고 
제가 밤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말짱한 얼굴로 차에 타니 전혀 몰랐어요.
성적표는 조작하거나 안 보여주거나.

그럴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뿐더러 어려서 너무 자율성을 강조하고 스스로의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며 키웠나 후회했었어요.
뒤늦게 아이를 어떤 테두리 안으로 넣기도 힘들었고 어려서도 늘 그런 테두리를 빠져나가던 아이라.
어려서는 제뜻대로만 하려고 해도 공부도 스스로 야무지게 했었고 손하나 안 가는 아이라 
사람들이, 학교 선생님들도 감탄하던 아이여서 아이가 스스로 잘 해 나갈거라는 믿음으로 기대로 키웠는데 아이가 아프고 더이상은 부모의 간섭이 전혀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온 거죠.

그렇게 재수... 수능을 당연히 잘 못 봤죠.

 

정신과적 문제 있는 아이들 중 소위 외모 정병 있는 애들 있거든요.
몰랐는데 제 아이가 그랬던 거에요.
수능 보고 대학 지방대 어딘가를 붙을 거 같은 곳에 정시 원서 넣고 수술비 대줬어요
하필 제가 아이 수술이 있는 시기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외국 정부기관의 실사있는 시기여서
같이 가주지도 못 하고 애는 그저 너무 신나서 성형외과 가서 대수술 받고 하루밤 자고 왔어요

그 수술받던 날 밤에 저도 잠을 못 잤네요.
그간 아이를 키우며 했던 모진 말들 괜히 미워했던 순간 
잘 하고 예뻤을 때 왜 더 사랑해주지 못 했을까 왜 그걸 당연하다 생각했지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가 너무너무 커서 밤새 악몽꾸다 깨다 반복했었네요

퇴원해서 퉁퉁 부운 얼굴을 마주하니 다른 사람일이었으면
지가 이뻐지고 싶어 하고 싶어 한 수술 뭐가 불쌍하나 저런게 당연하지 라 생각했을텐데
내 아이 일이 되니 왜 그리 그 얼굴이 그리 안 되고 불쌍하고 마음 아프던지.

수술 받으면 많이 걸어야 붓기 금방 빠진다길래 아이와 올 1월 칼바람 부는 날부터 매일 걷기 시작했어요
시작하며 이렇게 또 한번 삼수 하고 지금 이렇게 춥다 춥다 하는 날들 지나면 따뜻한 봄 될거고
어느순간 더워 죽겠네 싶다보면 가을오고 그럼 또 수능보고.. 그땐 좋은 결과 있을거다 생각하며 10개월을 견뎠네요.

아이는 수술을 받고 뭐랄까 팽팽했던 마음의 긴장과 불안과 불만 감정의 요동이
건들이면 터질거 같던 상태가 김 빠지듯 조금씩 빠져 안정을 찾아갔고요.
다니던 병원도 옮기고 옮긴 병원 선생님이랑도 잘 맞는지 충동성도 많이 사라지고
산책하며 잡아주는 손이 많이 참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10일 후면 아이 수능 보고 
아이의 상태가 수능결과로 나빠질 지 어떨지 또 충동적 거짓말로 제 마음을 슬프게 할 지 두렵기도 한데
제 방으로 책상 옮겨 놓고 10개월간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아마도 이번엔 그래도 어디라도 선택해서 학교를 갈 것 같습니다. 그러길 바라고요. 

 

고등1때까지 공부 잘 하던 아이가 아무 학교도 안 가고 지내는 걸 궁금해 하는 주변인들이 많았는데

 

이런 얘기는 친구 엄마 언니들에게 못 하는데 어딘가 그냥 좀 털어놓고 싶었어요. 지난 시간들 제 아이와 제가 지내온 날들을.
좀 있다 삭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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