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들어 주세요.

이 글은 좀 이따 지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도 써 보려고 했는데 그냥 제가 답답해져서 쓰다가 지웠어요.

 

저는 모 학교에서 일종의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이에요.

일종이라는 건... 실제로 '기간제'라는 명칭은 아니기 때문인데

일단 계약직이기는 해요. 계약을 계속 연장해 가면서 오래 근무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큰 잘못이 없고 본인이 원한다면.

 

여기 종종 글을 쓰기도 했는데

(애들이 귀여운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제가 주로 맡는 아이들은 고등학생이고요)

 전 원래 사교육 강사이고

아이들과 잘 지내면서 제 일을 잘 해 왔어요. 그러다가 주당 얼마 있는

학교 수업을 맡아 근무하게 됐습니다.

사교육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이 학교는 고등학교이고 제가 맡은 학년은 1학년은 아닙니다.

 

첫 학기부터 학생들과 꽤 무난히... 잘 지내 왔어요.

저는 사교육계에서도 아이들에게 인기가 꽤 있기 때문에 그게 이상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예뻐하는데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그걸 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은... 어른과 다르죠.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이 생각은 앞으로도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 생각이 저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 정말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지나가는데

그냥 몇 가지만 할게요.

 

1학기.

수업 첫 시작에 들어올 때마다 곧 울 것 같은 표정 + 화난 표정

중간의 어디쯤의 표정을 하고 들어오는 학생이 있었어요.

무거운 가방을 메고 비뚤어진 자세로 몸을 흔들며 들어옵니다.

그리고 책상에 가방을 턱!!!! 놔요. 크게 호를 그으며 던지듯이.

그리고 훅!!! 엎드리고 한다는 말이 주로

아...! 인생...!

인생은 너무 그지같애...!

라고 하거나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하고 소리지르거나.

 

그리고 주로 졸아요. 아예 엎어져 자거나.

깨우면 3초 뒤에 또 잡니다.

 

깨우고 깨우고... (저는 수업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함)

그러면서 이 학생에게 신경이 쓰였어요.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은 이 학교에 한 명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데

그와 별개로 가정 환경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점점 학생들이 저를 파악하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좋아하게 되면서

(저에게 이런 일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이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답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어젯밤에 뭐 했는데 학교 와서 그렇게 내내 자느냐.

넷플릭스 봤대요.

...?

그럼 다른 고민이나 뭐 그런 게 있어서 잠을 못 잔 건 아니네요;;;

 

자꾸 자서 지적받는데, 이 수업 중요하지 않느냐,

밤에 그런 걸 좀 덜 보고 안 졸도록 하면 안 되겠느냐 했더니

똥 씹은 표정으로 저를 봐요. 

힘든 걸까...? 물었더니

아뉘요오오... 눼에에.... 해볼게요...

이런 답이 돌아왔어요.

 

이 학생은 숙제도 거의 안 해 왔어요.

학생들의 숙제가 완료되어야 수업에 지장이 없는 방식인데

(자세한 설명은 안 할 게요)

이 학생이 계속 걸림돌이 돼요.

이번에 안 해 온 숙제를 언제까지 해 올 수 있느냐, 

하고 날짜를 다시 잡고 기회를 줘도 안 지키고...

안 지키고 안 지키는 일의 반복.

 

무슨 고민이 있는 걸까, 내가 도움이 될 순 없을까

슬쩍 물어봤어요. 아무 일도 없대요. 별 말도 안 하고 싶대요.

 

그래? 하고 그 후로 더 묻진 않았어요.

 

숙제를 내야 하는데 안 내서 새로 약속을 잡아 개별제출하기로 한 경우,

안 지키고

늘 ㅠㅠㅠㅠ 표시 가득한 카톡을 보내는데

보면, 다른 고민이 있는 게 아니고

친구랑 하루종일 놀다 와 보니 지금 이 시간이어서 피곤해서 못 하겠다...

하려고 했는데 잠이 들어 버려서 지금 일어났다(아침 7시 카톡)
이런 식이었어요.

 

제일 문제는, 수업 시작할 때마다 이 학생이 부정적인 기운을 마구마구 뿌리고 시작한다는 거예요.

책을 꺼내라고 시키면, 꺼내서 책상에 탕!!! 내려놓으면서 

하아아아아...! 한숨을 쉬기도 하고요.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차분하게 말을 해 봤어요

 

ㅇㅇ아, 아침에 그렇게 기분 안 좋다고 선언하고 시작하면

진짜로 하루종일 기분이 별로인 날이 되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매일 웃으면서 수업 시작하지만, 나라고 뭐 좋은 일만 있겠냐.

여러 사람을 대할 땐, 내 기분을 남들 다 알게 티내는 건 좋지 않은 거니까 

내 기분을 내 선에서 조절하면서 시작하는 거지.

 

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하자.

오늘의 기분은 안 좋을 수도, 내일은 좋을 수도 있지만

그걸 그냥 다 쌩으로 팍팍 드러내지 말고, 태도는 좀 일관되게 유지해 보자고.

알겠쥐...?

 

이러고 수업을 무난히 시작했죠.

 

뭔가 필기를 시킬 게 있었는데 이 녀석이 안 자고 하긴 하더군요.
그래서 기특한 마음에 다가가서 봤는데

낙서를 하고 있었어요.

뭐지? 하고 보려고 하는데 노트를 제 손에서 낚아채려고 하네요.

왜 저러나 싶어서 노트를 보니...

내가 뭐? 내 태도가 뭐?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 선생이라 이거지 ㅇㅋ 그래 인정 씨발 존나 기분 드럽네  그래 가르쳐라 가르쳐

뭐 이런 낙서를 하나 가득 해 놨더라고요.

 

 

하...

저요, 진짜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들도 저한테 오면 순한 양이 돼서 

고3 졸업하는 날까지 별말 없이 잘 다니곤 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거기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죠.

그걸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지는 말았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뭐 폭언이나 차별을 했다거나 태도를 나쁘다고 지적하며 비난을 했다거나 하면

정말 억울하지 않겠는데...

이건 너무 억울하더군요.

 

 

억울하긴 한데 화도 안 날 만큼 너무 기가 막히고...

 

어찌저찌하여 이 일은 이 아이가 사과의 편지를 쓰는 것으로 끝났어요.

 

이 일은 1학기 때의 일입니다.

 

***

2학기.

 

학생들 속에는 저의 팬클럽 비슷한 게 형성되었고... 다른 반에서도 저를 보러 오는 학생들이 있고.

저는, 고맙지만
다른 반 선생님도 좀 신경 쓰이고
저에게 팬심을 마구 드러내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다른 학생들(위의 그 학생을 위시한) 몇몇은

단지 동의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뒤에서 비꼬고 빈정거릴 것이 환히 그려져서

좀 덜 했으면 했어요.

 

하여간 그러던 어느 날

지난 주, 지지난 주... 에도 있던 일인데

아이들이 종종 이 사람 저 사람의 뒷담화를 해요.

점심 시간 같은 때에 제가 있는 교실에서(저는 교실에 주로 머물러요, 대기실이 따로 없기도 하고

/ 이해를 못 하는 분이 있어서 덧붙이자면

그 교실이 제 교실입니다. 하루종일 거기에서 수업해요. 저를 보고 싶은 학생은 그 교실에 난입하죠.)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기도 하고 저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어하기도 하는데

뒷얘기 할 때 가장 신나 보여요.

남의 욕을 할 때 얼굴에 생기가 돌고 유난히 말이 많아지는 사람. 그런 캐릭터.

본 적 있으시죠.

여자 고등학생들은 장난 아니네요.

 

다른 과목 선생님들의 흉을 보는 게 듣기 불편했어요.

새로 부임한 교장 선생님의 욕을 하는 것도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라면 학생의 하소연이라 생각하고 들어줄 수 있겠지만...

 

키가 작다, 키가 작아서 웃긴다

저기 창문으로 우리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아마 까치발 들어도 안 될 거다

(외모를 까고 나서는 주로

꺄하하하하하! 하고 찢어지게 웃음)

우리랑 친해지려고 교복을 입고 왔는데 그때부터 쎄했다, 킹받는다 웬 교복이냐

왜 점심 때 식당에 와서 자꾸 많이 먹으라고 하냐, 불편하다, 싫다 등등

 

제가 말을 끊고 그랬죠.
얘들아, 정당한 이유가 없이 욕하는 건 관두면 안 되겠냐
뭐라고 한 마디 하자니 꼰대 같고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가 한 패 같아.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말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항의해, 건의해, 지지해 줄게

근데 이건 아닌 것 같아. 안 그러냐?

 

 

어제는, 반 1등 겸 전교 1등 주로 하는 학생이 뭘 잘못했어요.

이 학생이야말로 뭔가 많이 쎄...합니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자기에게 누가 뭐라고 한 마디라도 지적을 하면

눈이 홱 도는 그런 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아주 잘 감추고 있어요.

저에게는 어쩌다 보니 그걸 들켰습니다.

 

하여간. 이 학생을 이쯤에서 더 봐 주면 안 되겠다 싶은 때라서

그 잘못을, 그러지 말라고 말했어요.

그게 잘못이라는 걸 인정하게까지 저의 진을 빼더군요.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지...

 

얘기 끝에, '그러니, 제발 바라는데 

잘못한 게 있으면 그냥 깔끔하게 인정을 하자.

이렇게 질질 끌며 비겁한 모습 보이는 게 더 나빠.'라고 하고

마무리지은 다음에, 오늘의 중요 핵심이 뭐였는지 알겠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전하고 싶은 건 이거였거든요. 잘못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이 되자.

십대 학생들에게 기대하는 건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잘못을 해도, 몇 번이고 수정하고자 하고 나아지고자 하는 희망 있는 모습이라는 거.

 

근데 이 학생이 그러더군요.

저는 선생님 기분을 상하게 해서 혼난 겁니다.

 

아... 제 '기분'이 문제가 아니었는데요.

 

 

 

어찌저찌 이것도 마무리되는 와중에, 학생들에게도 말했어요.

얘들아, 비겁하지 않게 구는 건 중요해!

뒷담화 하지 말라는 것도 그런 거야.

키가 어떻고, 외모가 어떻고, 교복을 입으면 킹받고...

그게 그 선생님이 너희에게 잘못한 건 아니잖아?

그런 걸 가지고 말하는 건 비겁해!

모르지, 난 교장샘을 만나본 적이 별로 없어서, 말해 보면 내가 정말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최소한 그 분이 외모나

잘 해 보겠닥 하는 행동으로 욕을 먹는 건 정당하지가 않잖아, 너희는 그런 걸 안 느껴?

 

그럼, 너희는 다 키 커?

외모가 완벽해? 학생으로서 너무너무 완벽한 학생이야?

아니잖아.

우리 모두 서로 대충 양해하고 감싸고 그러면서 지내는 거 아니야?

도대체 누가 누굴 깔 수 있다는 거야...

 

너희 앞에서 그런 얘기 하는 애들, 말하고 꼭 큰 소리로 웃지? 농담한 것처럼.

자기도 아는 거야, 그 말이 되게 비열하다는 거.

그런 식으로 눙치는 거야.

그런 농담을 좋아하는 친구를 너무 믿지 마. 그런 애가 다른 데서 네 욕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오늘 이 말을 하는 거다.

 

...

 

분위기 정리하고,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어제는 특히 '대화를 하지 말고 수업에 집중할 것, 벌칙임'을 강조했어요.

 

아까 1학기의 그 학생과 위의 반 1등 그 학생이 가까이 앉아

까르르거리며 속닥거리더군요.

대화 하지 말라고 했더니 필담을 나누기 시작해요.

 

...저는 최소한, 집중력 짧은 이 애들이 

수다라도 떠는 것이기를 바랐어요.

 

이 멍청한 녀석들은 제가 걷을 예정이었던 수업용 노트에 낙서를 했어요.

그래서 제 눈에 그 필담은 다 보였죠.

 

 

이런 말을 써 놨더군요.

-그냥 이 학교가 정신병이야

-ㅇㅇ쌤은 좀 좋은 편임
-근데 좋긴 한데 잘 못 가르치는 듯

-집에 가고 싶다

-ㅇㅇ샘도 별로

 

...

 

 

저는 도대체 누굴 데리고 무슨 말을 한 걸까요?

제 얘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1학기의 그 학생은 (필체를 보아 '정신병' 운운이 그 학생이 쓴 겁니다)
도대체 뭘 끄덕인 걸까요. 이 학생은 사과 편지 이후로 

정.............말 정말 조금씩이지만 바뀌고자 하는 것 같아서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었어요...

 

 

 

 

그냥, 인간이 너무 싫어집니다. 

허균의 글을 출판한 책 중에 '숨어 사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요.

원래 허균을 좋아했지만...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 환멸을 느껴 괴로워했던 그와

마주앉아 얘기라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들입니다.

 

 

덧.

자녀 때문에 괴로워하는 많은 글을 보았으므로 

이렇게 토로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저는 말이죠. 어떤 부모님들이 너무 원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왜, 아이를 이렇게밖에 못 키우셨나요?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게 100% 그 분들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왜 인성이 중요한 걸 모르세요? 왜 자꾸 아이에게 지고 그러세요? 왜... 저런 괴물을 만들어서 밖에 내놓으시는 겁니까. 하고. 붙들고 울고 싶어질 때가

예전에는 종종 있었는데 최근에는 자꾸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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