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저에게 날카로운 ㅇㅇㅇ의 추억이란

좀 길어요 ^^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예요

제목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쓰려다가 키스 얘기도 없는데 낚시라고 하실까봐 고건 뺐어요 ㅎㅎ

'날카로운 추억'이란 표현이 딱 제가 하고 싶은 말이예요

아침에 할 일 끝내고 커피를 마시다 떠오른 생생한 추억을 계기로 문득 사람의 경험과 기억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멋진 추억이든 잊지못할 기억이든 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어둠 속에서 성냥불 켜듯 유난히 날카롭게 번쩍하고 추억을 비춰주는 일상의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 보통의 아침처럼 커피를 내리며 커피향을 맡으며 잔도 받침도 두터운 커피잔에 담아 한모금 마시니 순식간에 머리 속에서 '순간이동'이 일어납니다 

여행갔던 도시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2019년 가을의 나로...

저는 그곳에서 투박하고 묵직한 커피잔의 입술에 닿는 촉감에 흐뭇해하며 진하다 못해 크레용 잘게 부셔서 녹인듯 텁텁함이 매력인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어요 

밖에는 아침을 시작하는 현지인들이 바쁘게 자기 갈 길 가고 있고 카페 안에는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커피를 만들고 주문한 고객의 이름을 부르고 커피향 가득한게 활기가 넘쳐요 

그때의 그곳의 느낌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한 10초간 시간을 거슬러 후다닥 바다건너 여행을 합니다 

하루에도 몇잔씩 커피를 마시고 수많은 카페에도 갔었는데 오늘 콕찝어 '그곳'이 떠오른게 신기해요  

제 몸이 커피잔의 촉감과 커피의 맛과 그 커피를 마실 때의 날씨 등을 정확히 기억하고 그 모든 것이 가장 비슷하게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그 기억을 소환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어느날 귀가하다가 유리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어요 

집앞에 공사를 하느라 자잘한 소음들이 있거든요

순간 그 유리와 쇠가 낸 소리는 귀를 뚫고 뇌를 지나가 어릴 때의 저를 불러냅니다

7-8살때쯤, 제가 무슨 일인지 아파서 끙끙거리며 누워있는데 겨울이었는지 방안에는 기름넣고 천으로 된 심지에 불붙여 작동하던 난로가 있고 옆에서 아빠가 제 이마에 수건을 갈아주고 계시네요 

제 남동생은 난로 옆에서 파랗고 빨간 무늬가 들어간 푸르스름한 유리구슬로 구슬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다 그 유리구슬이 툭 튀어 난로의 가장자리 둥근 홈에 들어가 또르르 굴러갑니다

꽤나 아파서 정신 못차리던 저에겐 그 소리가 칠판에 분필을 잘못 긁었을 때 나는 소리만큼 괴로운 소리로 새겨졌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팔에 소름이..)

그 이후 그 기억은 유리와 쇠가 긁히는 소리를 들을 때 불쑥 떠오르고 그럴때면 저도 모르게 몸이 아픈 것처럼 느낍니다 

 

 

- 최근에 길을 가다가 훅~하고 코를 건드리는 냄새가 있었는데 그 냄새를 맡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중얼중얼

"앗 이거슨 고등학교때 학교 앞 ㅇㅇ분식 알감자 냄새다 ~ ㅎㅎ"

에그샐러드 샌드위치와 알감자 볶음으로 유명했던 그 집은 뭔가 다른 1%가 있어서 옆동네 학교 학생들도 몰려와서 먹던 유명한 집이었죠 

그 분식집 주인 아주머니가 거봉 포도알 크기의 기름에 굴려 번들번들한 알감자를 굵은 소금과 함께 플라스틱 접시에 담아 우리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나던 바로 그 냄새를 맡은거죠

그때부터 저는 길을 걸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그 분식집으로 날아가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샌드위치도 먹고 알감자도 한입에 쏙쏙 넣으며 역쉬~ 이맛이야!라고 호들갑을 떱니다 

아.. 행복해요 ^^

요즘 널리고 널린 버거집에 가도 감자튀김 냄새를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데 희한하게 학창시절 그 분식집 알감자 냄새는 아니예요 

 

 

 

이렇듯 저의 기억을 소환하는데는 정확한 비율과 조합의 레시피가 있는게 분명해요 

그 레시피가 정확할수록 기억 혹은 추억은 날카로워요 

하지만 어떤 추억들은 날카롭게 기억하고 싶은데 아직 레시피를 못 만났어요 

제 아이가 아가 때 제 배에 안겨 짧고 통통하고 보드라운 팔로 제 목을 감싸고 또닥이던 온기와 촉감..

치매에 걸리셔서 지금은 나눌 수 없는, 엄마의 또랑또랑 밝고 유쾌한 목소리로 시간가는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나누던 대화..

돌아가실 때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를 볼 때마다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딸~" 하시며 아기처럼 웃으시던 아빠의 목소리와 환한 미소....

날카로운 추억이 건드려질 때마다 행복할 때도 많지만 때론 아쉽기도 합니다 

컴퓨터 파일 목록에서 최근 클릭한 것들은 제일 위에 뜨고 오랫동안 클릭하지 않은 것들은 자꾸 뒤로 밀려나듯 그 기억들이 나중엔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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