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두서없는 생각들

대학 졸업하고 10년 일했어요.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 직장이었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했고요.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고 남편이 원하는 내 할 일의 범위가 참 넓었어요. 지금 같으면 그 이기심을 깨닫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 무시했겠지만 그 때는 사랑이라 생각하고 생색도 안내고 꾸역꾸역 다 해냈어요. 시부모가 돌아가며 입원하시는데 9-6 정규직 직장인이 간병하거나 못하면 매일 들러 안부라도 묻고 가라는 식이었으니 휴가도 못가고 연차를 그런 식으로 소진하는 게 보통이었죠. 결국 퇴사하고 가사, 육아 전담했는데 그렇게 10년 넘게 지내다보니 과일 하나를 맘 편히 못먹고 있는 저를 보게 됐네요. 남편 연봉 1억 넘은지 오래됐고 저는 원래 아끼고 아끼는 스타일이라 돈이 없어 과일 못살 형편 아닌데도 참 희한하게 눈치를 줬어요. 어느 과일이 맛있다 싶으면 며칠 지나 다 먹고 그거 누가 다 먹었냐고 꼭 물어봐요. 그걸 산 지가 언제이고 식구가 몇인데 다 먹었다 하면 맛있는 건 항상 누가 다 먹는지 모르겠다, 혼잣말처럼 해요. 근데 그런 것들 남편이 거의 70~80% 먹거든요. 얘기해도 자기 생각 안바꾸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몇 천만원, 억 넘는 돈이나 혜택도 참 쉽게 베풀어서 그것 때문에 나는 화병도 났는데 나한테는 하다못해 먹는 걸로도 눈치를 주니 이렇게 살기 싫어 늦게 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 나이에 좋은 학벌, 좋은 직장 경력 무의미하네요. 이 분야에서 나는 그냥 경력없는 나이든 여자일 뿐이고 사람들은 자기 이익 안되면 1분의 시간도 쓰기 싫어하고요. 나를 제 부모 수발에 마음껏 써먹었던 남편과 시집 식구들, 가족이니 해야한다고 다 떠안았던 젊은 시절 나를 생각하니 너무 한심스러워요. 그 귀한 시간을 나를 위해 투자했다면 지금 이렇게 살진 않을텐데요. 인간 관계,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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