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친정아버지 장례 후 시모가

며칠전에 친정어머니 장례 후 시모가 한 말에 대한 글이 있었지요. 그걸 읽은 다음부터 지난 일이 생각나 잠을 못잤습니다.

7년 전 친정아버지가 위암4기 판정을 받으시고 아버지 는 스스로 모든 치료를 안받으시겠다고 결정하셨어요. 84세셨는데 살만큼 살았으니 통증만 가볍게 해달라셔서 요양병원에서 4개월 후 돌아가셨어요. 마지막까지 낄끔하고 다정하게. 주위 누구도 힘들게 안하셨어요.

장례절차를 모두 마치고 같은 도시에 사는 시가에 인사하고 서울 가려고 들렀어요.

시아버지는 수고 많았겠다. 너무 맘상해하지말고 어머니 위로 잘해드려라 하셨구요.  그런데 옆에 있던 시모가 갑자기 깔깔 웃으면서 " 내가 요즘 교회에 가봐도. 동네 아파트에도. 친척들을 다 봐도 내나이에 남편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깔깔깔. 정말 남편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구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자식들이구 교회에서구 다~ 귀하게 대접받고 산다. 깔깔~" ......

남편과 시어버지는 늘 하던대로 시모말이 안들리는 것처럼 모른체하고있고. 저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다시 봤어요.

그러자 시모는 다시 몇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며 웃더라구요.

82세 시모가 그동안 상상도 못해볼 미친 말을 그토록해왔어도 입 꾹 닫고 참아왔어요. 미친 소리를 해도 같이 듣던 시아버지와 남편은 그냥 안들린것마냥 무시해버리니까 저혼자 정색하기도 이상한 분위기거든요.

그런데 결혼 당시부터 시모가 우리 엄마를 몹시 질투하는건 알고 있었어요. 엄마는 나이에 비해 젊고 예쁘셔요. 성격도 여성스럽고 정이 많아서  누구나 좋아합니다. 자식들도 저희 친정형제들이 모두 전문직으로 잘살아요. 손주들도 다 공부도 잘하고 노후도 여유로워서 저희에게도  정말 잘해주시거든요.  그래서 질투심 많고 남잘되는걸 죽어도 못보고 흉만보는 시모에게는 엄마가 해주시는건 말안할 때도 많았지만 시모는 속으로 샘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겠죠.

그런데 친정아버지 돌아가셔서 엄마 혼자 되신게 얼마나 신나고 좋았으면 그걸 감출수가 없었나봐요. 서울에 잘 도착했다고 남편이 전화하니 또 그소리를 하더니 며칠 지나 남편과 밤에 저녁 먹고 쉬고 있는데 시모가 전화하더니 또 그소리를 하는거에요. 주위에 남편있는 사람 자기밖에 없다고. 너무 좋다구요. 남편은 싸늘하게  굳은 제 눈치를 보며 "엄마는 아버지가 옆에 살아계셔서 참 좋으신가봐" 하더군요.

제가  " 아니요. 어머니는 우리 어버지가 돌아가신게 좋은거지요. 우리 엄마가 과부되서 좋은거잖아요."했습니다. 평소같으면 우리 엄마 원래 그런거 몰라? 우리 엄마가 속마음을 못감추는 분인거 몰라? 하며 소리를 지를 남편도 이번엔 한마디도 못하더군요.

그 순간으로 저는 이제부터  시모얼굴을 다시는 보지않겠다.두분 장례식에는 당신 체면봐서 첨석하겠지만  나에게 며느리노릇은 강요말아라. 싫으면 바로 이혼하자 했어요.

 이혼절차 의논하자고 말하고나니 그동안 26년간 참고 살았던 제가 어리석게 느껴지고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어요. 남편은  결혼생활 내내 시모 자신밖에 사랑  못하는 그어머니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눈물나는 노력을 하고 저에게도 시모와 똑같은 시각으로 굴종을 강요하던 사람이었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불쌍한 딸 살려주신거같아요. 남편은 그후로 시가 일은 입밖에 꺼내지도 못합니다.

딱 일년 후에 시아버지 위암 3기 진단 받으시고  고생하시다 2년 후에 돌아가셨어요. 장례식에 갔더니  죽일듯이 째려보는 시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3일간 있다 돌아와서 다시는 얼굴 볼일없겠구나 속이 시원하더군요. 

이젠 담담히 아버지 추억을 그릴 정도는 돠었다했는데 며칠동안 옛상처가 덧나 얼마나 쓰리고 아픈지 ....

이렇게 82에 한번 쓰고 이젠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이번 추석엔 남편도 시모에게 안가고 둘이 뭐하고 놀까?하는데 젊고 힘있던 시절엔 자기 엄마바라기하느라 신경도 안쓰더니..반갑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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