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저는 제가 영재였었는데요...

잘난 척  욕 먹을까봐 조심스럽긴 한데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아이큐 검사하면 항상 전교에서 제일 높은 점수였었어요. 보통 150 안팎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성적은 그냥 그랬어요. 학교 공부 하는걸 너무 싫어해서 반에서 3~4등 정도 했어요.  수능 시험 첫 세대인데, 6개월 공부해서 전국 천등 안에 들어서 특차로 대학 갔어요.  전국 1등이나 수능 만점자도 수두룩한데 저야 하잘것 없는 머리죠. 

 

근데 백강현 이슈 보면서 안타까운 게,  저 어린 시절이 자꾸 떠올라서 그런가봐요.

돌이켜보면 저는 늘 주변 눈치를 보고 살았던거 같아요. 자존감도 굉장히 낮은 편이고요.

 나는 그냥 하는 말인데, 친구들이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물어보면 쉬운 말로(제 기준에선 애기 말) 다시 설명해줘야 했어요. 잘난 척 하지 말란 말도 많이 들었어요. 어른한테도요.

수업시간이 너무  지루했어요. 선생님 말을 서두만 들으면 결론이 다 예상이 되는거예요.(특히 수학, 과학) 그래서 수업시간엔 늘 다른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떼웠어요. 초등학교 때 그렇게 딴짓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칠판에 루트 문제를 적고 풀어보라고 시키시더라구요. 안 배운 건 당연히 못 풀었죠. 이런 것도 못 풀면서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반 애들 앞에서  혼났는데, 넘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때 월반 권유도 많이 받았는데, 부모님이 거절하셨어요. 평범하게 크는게 좋고, 여자는 공부 너무 많이 하면 안된다구요.

중학교 땐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저렇게 공부를 안하는데 성적이 잘 나오는 게 이상하다며 부정행위 하는거 아니냐는 말 하고 다녀서 싸움 난 적도 있었어요.

또래 친구들, 학교, 주변 어른들 눈치 보면서, 제 영재성이 서서히 깎였던 거 같아요.  너무 안 튀게, 뒷말 안듣게, 평범하게...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외로웠어요. 고등학교 때 자살시도도 했었는데, 지금은 대학 나와 직장생활 하다 결혼하고  애 낳고 평범하게 살아요.

 

영재, 천재들이 가지고 있는 핵심 능력은 추론 능력과 집중력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무섭게 집중하고, 끊임 없이 생각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능력이죠. 그 분야가 과학이 되면 과학자 되는거고, 미술이면 화가 되는거예요. 영재라고 무조건 학업 성적이 우수하거나, 어릴 때 수학 공식 만들고  이러는 건 아니예요. 물론 기본 머리가 있으니 남들보다  쉽게 공부하긴 할거예요.

영재의 삶이 행복하진 않아요. 큰 성취를 이룬 과학자나 철학자들도 우울증 이나 자살 충동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잖아요.

사회에 동화되기가 힘들어서 그런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 하고 소통도 잘 안돼고, 이해 받기도 힘들고. 특정 분야에 집중력이 큰 대신 전반적인 사회기능은 떨어지기도 하고. 사회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계성 지능이나 지적 장애아들하고도 양상이 비슷해요.

 

가끔 부모님이 나를 월반을 시켜주거나, 유학을 보내줬으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친구들이나 선생님, 주변 어른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분위기에서 자랐다면 어떻게 컸을까 궁금하기도 해요.

이상한 아이라고 손가락질 받는게 아니라, 대단한 아이라고 사랑받았다면.

 

백강현에 비하면 택도 아닌 머리지만, 고작 열살 아이가 지금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까 안쓰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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