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고등학교 때 저를 왕따시키던 애를 봤어요.

제목 그대로에요.
어젯밤 아들이 발가락을 세게 찧는 바람에 급하게 야간에 하는 정형외과를 찾아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소파 정면에
원장 세 사람의 대형 프로필이 눈에 들어오는데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셋 중 유일한 여의사가 바로 저의 중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원래 저와도 친했는데 무리 중 제일 셌던 한 아이와 다투고 사이가 멀어지면서 그 그룹에서 저의 왕따는 시작이 되었고, 그 원장이 된 아이는 저에게 어떤 신체적 위해를 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복도나 학교 어디에서 만나든 늘 한결같은 투명인간 취급을 했었어요.
아예 제 쪽으로는 눈길을 안 주고 정말 없는 사람 취급을 했었어요.
말해도 안 들리는 척,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아니 그냥 벌레 따위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듯 그렇게...
제법 친했는데 더 친한 다른 아이와 트러블이 있었단 이유만으로 3년동안 단 한 마디의 말도 저에게 하지 않았고, 고개 돌려 저를 쳐다본 적도 없었어요. 얼마나 철저했는지...

늘 당당하던 그 애와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할 땐 심장이 빨리 뛰며 어디로라도 피하고싶던 제가 생각나요.
워낙 기가 세고 무서울 게 없던 애라 고1 초에 그렇게 멀어진 후 3년 내내 보이기만 해도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복도에서 엑스레이 기다릴 때, 반쯤 열린 그 애의 진료실이 보이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하더라고요.
밉고 싫은 감정보다도 막 땀이 나고 어쩌지 못하며 심장이 두근대는 저를 발견했어요.
정말 우습게도 아직도 저는 걔가 무섭더라고요. 이 기분이 정말 비참한데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직도 걔랑 눈이 마주칠까, 걔가 복도로 나와서 나랑 눈이 마주칠까 너무 걱정돼서 미칠 것 같더라고요.

뭐 때리고, 욕하고 호되게 당한 피해자들에게 제 경우는 새발에 피도 안 되겠지만, 어제 다신 한 번 느꼈어요. 
아무리 별 거 아닌 왕따였다 하더라도 당한 쪽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힘든 거구나.
제 아들이랑 같이 있는 그 시간에 비참해지더라고요. 

정작 그 아이는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의사가 되었고, 개원도 했고, 저 같은 동창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별에별 생각이 나는 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혹시라도 정면으로 마주쳤으면 나는 어땠을까? 
이런이런 말을 하면 걔가 어땠을까?

다 부질없게도 저는 아직도 어젯밤의 후유증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털어놓기라도 하면 좀 가벼워질까.. 알지 못하는 익명의 힘을 빌려 이렇게 글만 쓰고 있네요.
답답하고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합니다.
제 자아는 고1 때 그 아이들이 무서워 피하던 그 소녀에서 더 자라지 못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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