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 전쯤 장터에서 치자꽃 화분을 샀어요
꽃망울이 튼실한게 다닥다닥 달리고 싱싱한 잎사귀도 가득해서 제 눈에 쏙 들어와 세련된 모양새의 다육이와 함께 집에 들였어요
꽃망울이 꽤나 커서 곧 필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 두고봐도 그대로길래 처음엔 기다려보자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피지도 않고 말라버리는거 아닌가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그사이 먼저 자리잡고 잘 자라는 화초들은 열심히 꽃을 피워댔죠
노랑색으로 피었다가 분홍으로 바뀌는 아가별 카랑코에, 쭉쭉 뻗은 진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방울방울 하얀 복주머니 모양의 꽃을 맺어가는 댄드롱, 베란다에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리며 연분홍 가녀린 꽃을 피우는 붉은 사랑초, 화분 한가득 보라색 한지로 접은듯 예쁜 꽃의 캄파눌라…
그런데 요넘은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고.. 뭐가 잘못되었나 싶고, 이리 많은 꽃망울이 왜 꿈쩍도 안하는지..ㅜㅜ
그런데 어제 아침, 여느때처럼 일어나자마자 침실 베란다에 가득한 초록이들에게 눈인사를 하는데 치자꽃망울 하나가 밤새 쑥 키가 커지고 갑자기 부풀어오른거예요
뭐지? 이제 피려나?
아이 가졌을 떄 배에 튼살 생기듯 초록색 꽃망울에 하얀 줄이 쭉쭉 그어져서는..
그래도 저렇게 부풀기 시작했으니 피려면 또 며칠 기다려야겠지 하며 오전 일과를 마치고 침실 베란다 창가 책상에 앉아 초록이들을 보는데 아니! 몇시간 사이에 손바닥만한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네요^^
이거슨 데자부~
제가 첫아이 낳을 때 병원에 도착하니 8센티가 열렸지만 초산부라 아직 멀었다며 간호사가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집에서 주무시고 내일 오시라고 돌려보내는 사이 제가 아이를 낳는 바람에 가다가 연락받고 다시 돌아왔을 때의 일을 남편이 종종 얘기하곤 했는데 그때 남편의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더라는..
끝내주는 달달한 향기를 맡으며 사진도 찍고 식물일기도 쓰고 기분좋게 집안일하고 두세시간이 지났나.. 다시 책상 앞에 앉으니 그 옆의 꽃은 부푸는 것도 몰랐는데 어느새 반이상 피어있는 것을 보고 두번째 놀람 ㅎㅎ
바닐라 요거트를 스푼으로 휘저은 것처럼 뽀얀 꽃잎을 뒤틀며 피어대는 꽃이 참 예쁘네요
최근에 정말 힘든 일이 있었는데 저에게 24시간 언제든 바라보기만 하면 힘을 주고 달래주는 요넘들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이 순간들.. 50년 넘게 수많은 기다림을 겪었지만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설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