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태어나면 안되는 거였는데.. 아이를 낳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냥 태어났으니 살았죠
머리 속은 늘 텅 비어있었어요
하나 의지가 있다면 식탐 정도
밥 때 되면 밥 먹고 밥 때구 아니면 간식먹고 멍 때리고

어릴 때 친구들 가벼운 몸 폴폴 날리며
재잘거리고 뛰어다니면
부럽고 예쁘고 빛나보였어요
저 아이들은 뭐가 저리 즐거울까
저렇게 하고싶은 말이 많을까
저렇게 뛰어다니고 싶고 팔다리를 움직이고 싶을까
말수도 없고 생각도 없고 몸짓도 둔하고
친구 사귀기도 힘들어서 학창시절은 늘 지옥이었죠
대학 가서도 빵이나 사서 빈 강의실에서 혼자 먹는게 낙이었어요
공무원시험 준비한다고 휴학하고 하루종일 누워 지낸 적도 있어요
닫힌 방문 너머 아빠가 울화통을 터뜨리시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죠
어휴 남의 집 자식들은 다들 잘 나가는데
우리집 애들은 하나같이 왜 다 이 모양이야?
하지만 감사하게도 저를 채근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졸업하고 취직도 제대로 못하고 빌빌대다가
어찌저찌 작은 회사에 취직해서
지각이나 안하면 다행인 삶을 살다가
(네 어쩔 땐 몸 아프다고 거짓 핑계로 출근 안 한 날도 있어요)
그냥 시계바늘에 떠다밀리듯
결혼하고 애낳고 휴직했다 퇴직하고…
어쩌자고 결혼을 해서 또 한 사람을 구렁텅이로 빠트린 걸까요
어쩌자고 애를 낳아서 ㅠㅠ 또 그 애가 지옥을 살게 한 걸까요

신생아를 키우는 일은 너무 무섭고 힘들었어요
아이와 둘이 있으면 공포심이 들었어요
매일 엄마한테 전화해서 무섭다고 울다보니
애가 어느덧 중학생이 됐네요

아이 성향이 저랑 비슷해서
먹는 거나 좋아해요
의욕도 의지도 에너지도 없고
친구도 못사귀고 운동도 못하고
주변 정리도 못하고
계획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네요
약간 덜떨어져 보이기도 하고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고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제가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그 지옥으로..

조직화된 사고가 안되어서
이 나이에 돈도 하나도 못모으고
빚만 산더미…
집안도 엉망진창이에요
건강도 당연히 다 망가졌어요
안그래도 의욕 없는데
몸이 안좋으니 더 불안하고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그냥 폐인처럼 살아요..

어제 새벽 알람 왔을 때
이렇게 다같이 죽는구나 잘됐어..
라는 생각 잠깐 했어요.
앞날이 안보이고
주변 사람들한테 한없이 미안하기만 해요
매일 매 시간이 가혹한 형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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