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정장입고 개 산책합니다

전업의 길을 택했던 게 저의 크나큰 실수였지요.
아이가 워낙 예민하고 불안이 심해서 모든 걸 떨치고 아이 곁에 있었어요.
공부하던 것도 끝까지 갈 수 있었는데 접고요.

지금 50줄에 들어서 새로운 일 어찌어찌 하는데
일도 거의 없고, 돈도 거의 못벌고
맨날 츄리닝에 노브라에 시쭈그리하게 쭈굴쭈굴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할미꽃 같은 내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그럴 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수트를 꺼내 입어요.
하하하
수도권의 신도시로 이사와서 여기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고립되기 딱 좋고 정신이 시들어가기 쉽거든요.

제가 웨이트도 20년 되었고 운동의 생활화로
몸 좀 빳빳하고 괜찮거든요. 군살도 없고.
수트발 좀 좋은 편.
화장은 안해도
썬크림에 버킷햇 같은 거 쓰고
정장 수트 쫙 떨쳐 입고는
강아지 하네스 매고 동네 한바퀴 돌고 옵니다.
그럼 기분이 한결 나아지더라고요.
참 쉽다.
나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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