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엄마 #1

내가 중학교 되던 무렵 엄마는 하루 아침에 가출을 했다.
서울의 어느 반지하 방에 세 살고 있을 때였다.
학교 다녀와 보니 집안의 모든 세간살이가 사라지고
촌스러운 자주빛 밍크담요 몇 개가 바닥에 추레하게 쌓여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분명히 사람이 있었는데
별 잘난 것도 없는 살림살이와 함께 엄마는 휴거되었는가. 
그집에 처음 이사들어갈 때,
반지하 치고 밝게 빛이 잘들어온다고 엄마가 좋아했었는데
집은 아침과 다르게 잿빛 동굴로 변해 있었다.

빈 공간을 보고, 오빠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고
가슴 한쪽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내 기억의 저편에 엄마가 나와 둘이 있을 때 몇 번
'엄마가 갈 건데, 너는 데리러 올게' 라고 웃으며 했던 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 이런 거였어? 
엄마가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 줄, 나는 버려지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 본능은 이런 기억을 얼른 숨기라고 종용했다.
엄마가 자식들을 버리고 간 것은 분명 나쁜 짓이고,
그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은 공모자 이므로 나는 이걸 숨겨야 한다고. 
게다가 말썽을 자주 피우는 오빠는 말고, 나만 데리고 간다고 했던 것은
더 잔인한 일이니 이건 의심할 여지없이 숨겨야 할 일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이 사실을 철저히 함구했다.

충격은 눈물도 감정도 아예 원천부터 막아버렸는지
눈물 한 방울, 한숨 한 줄기 새어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남기고 간 괴발개발 써내려간 편지에는
차라리 불가피하게 두고 가는 모정의 피눈물이라도 서려있으면 좋으련만
두고 가는 자식들에 대한 어떠한 염려도 애정도 비치지 않았다. 

다만 낡은 놋쇠 쪼가리 같은 십원짜리 4개가 같이 들어있었다. 
공중전화 두 통을 걸 수 있는 돈이었다. 
벌써 몇 년 전 이혼한 늬 아빠에게 전화하라는 거였다. 
뒤에서 바람핀 상대의 아내가 칼을 들고 쫓아와도 이리 급하지 않을텐데
양육권을 찬찬히 넘기고 갈 여유도 없이 
구차한 살림살이를 하루아침에 쓸어 담아 달아난 엄마는 
과연 무엇에 미쳐있던 것일까...
행여 물건을 실는 중 우리가 학교에서 예상보다 일찍 올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이삿짐 인부들을 재촉했을까...
우리가 없을 때를 골라 옷가지를 챙기고 물건들을 고르느라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은밀한 작업을 했을까
방을 빼고 전세금을 받아가는 것을 우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을까.

엄마는 우리에게 들키지 않고 우리를 버리려고
세심한 열정을 기울였음이 틀림없다.
엄마가 가고 난 후 남겨진 사진속의 엄마 모습은 모두 공을들여 도려내져 있었다.
우리가 웃고 있는 우리 옆 자리의 엄마는 사라진 세간살이처럼 텅비어 있었다.

그것은 메세지였다.
이제 너희 인생에서 나는 없는 사람이라는. 
아무도 말로 전하지 않았지만
친엄마가 백주도주했다는 것과, 
우리는 이제 그 사람을 인생에서 도려내야 하는 과업을 받았음은
내 폐부에 깊게 새겨졌다. 
엄마의 자리는 그때부터 도려내져 있었다.
나는 13살부터 엄마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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