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소아과 의사가 본 아동학대

페이스북 퍼옴

-페이스북 의사샘이 직접 쓴글인데 다른 사이트에서도 보이네요.
참...세상이 ...




올해 초 일입니다.
생후 8개월 환아가 진료실에 왔습니다.
방문 사유는 '피부 상담'.

아이가 들어왔는데
보자마자 뜨악-합니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봐도 이건 바로
'아토피 피부염'인 것을 알겁니다.
상당히 심했거든요.

"어머님, 아이 피부가 심하네요.
이건 아토피 피부염이 강하게 의심되는데."

"예. 안 그래도 걱정이 돼서요."

"언제부터 그랬나요?"

"신생아 때는 태열인 줄 알았는데
100일이 지나도 심하고
6개월이 지나도 심해서 왔어요."

"애가 많이 긁나요?"

"예. 한 5-6개월 지나서부터 엄청 긁어요."

"엄마 아빠 알레르기 질환이 있나요?

"신랑과 저 둘 다 비염이 있어요."

"다른 병원에 먼저 가보셨을 것 같은데."

"예, 근데 쉽게 안 나아서..."

"우선 치료는 아이가 너무 긁어서 힘들어해요.
항히스타민제를 짧게 먹이는 게 좋겠고,
그 동안 스테로이드 연고와 보습을 통해
치료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혹시 먹는 이유식이나 환경 등 영향도 있으니
알레르기 검사(CAP)도 해보면 어떨까요?"

"어...꼭 해야 할까요?"

"저도 아이가 어리고 갑자기 두드러기 났다 이럴 땐
굳이 검사 권유는 안합니다.
그런데 증상이 너무 심하고 오래됐다고 하시고
아토피 피부염으로 진단이 되니
혈액 검사는 꼭 한 번 해보면 좋겠습니다."

"예 그럼 해주세요."

"예 3일 뒤 결과가 나오기 그 때 뵙지요."

3일 뒤 외래.

"어머님 아이 결과가 나왔습니다.
같이 보시면...
우선 아이 호산구 비율이, 와."

"왜요?"

"우리가 호산구 비율이 4%만 넘어도
알레르기를 강하게 생각하는데
일단 아이 기준으로 18%가 나왔습니다.
18%요.
뭔가 아이에게 민감한 것이 분명하다는 거겠지요."

"예."

"그리고...
에, 이건 높긴 한데요."

"뭔데요?"

"개털 수치가 상당히 높은데,
아토피 피부염이 심하니 동물은 안 키우실 거고."

"아, 저 개를 키우는데요."

"예?"

"강아지 한 마리 키워요."

"아니, 언제부터요?

"출산 전부터 키웠어요."

"개가 집 안에 아이랑 같이 있나요?"

"예."

"(모니터의 결과를 직접 보여주며)
어머니 여기 보면 개털 수치가 아주 높죠?
이건 UNICAP이라고
알레르기 검사 중 아주 정확한 검사법이에요.
아이는 개털로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요."

"......"

"아토피 피부염 치료 이전에
무조건! 아이는 개와 분리시켜야 합니다.
치료는 원인 회피와 동시에 시작하는 겁니다."

"개를 같이 키우면 안되나요?"

"당연히 안되지요."

"왜요?"

"아니, 왜라뇨? 지금 결과 보셨잖아요
개털 수치가 만점에 가까워요.
다시 한번 보세요. 결과지 출력해서 드릴 수도 있어요.
이 결과지를 들고 서울대 교수님을 찾아가도
저랑 똑같은 말씀을 하실 겁니다."

"아니, 근데..."

"예?"

"개를 잠깐씩만 분리시키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루씩 친정엄마 집에 보낸다든지..."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다음 날 개가 다시 아이 집에 오면
아이는 또 감작되서 엄청 간지러워할 건데."

"근데 인터넷 찾아보니
어릴 때부터 개랑 같이 키우면
아토피 예방이 된다고 하던데..."

"아니, 그건
이렇게 이미 아토피 피부염이 심하고
그 원인이 개털임이 확실한 이 아이한텐
전혀 해당이 안되는 얘기죠."

"그러면요,
지난 번에 두드리진(항히스타민제) 먹이니까
좀 덜 긁더라구요.
그 약으로 관리하면 안되나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거죠.
약은 잠시 덜 간지러우라고 주는 거고.
개가 있는 한 개털이 계속 아이를 괴롭힐 거고
약은 간지럼증에 도움이 되는 거지
아토피 피부염 근본 치료는 안되는 거에요."

"하나만 더 물어보면
그럼 강아지를 자주 목욕시키면 안되는 거에요?

"논문엔 개를 목욕시켜도 3시간 지나면
다시 알레르기가 발생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럼 하루에 8번씩 개 목욕시키실 거에요?"

"......"

엄마는 어떻게든
개를 분리시키지 못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본인 입에서 그 말이 안 나오고 있을 뿐이에요.

뒤에 아빠가 아이를 안고 있어요.
아빠와 잠시 눈이 마주쳤는데
한숨을 푹 쉬면서
뭔가 답답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에요.

아빠도 아는 거에요.
개를 분리해야 우리 애가 산다.
그런데 이 아내는 도저히 고집을 못 꺾고 있다.
선생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

"원장님, 사실 오늘 온 것은
결과를 들으러 온 것도 있지만
그 먹는 약을 좀 오래 처방받으러 온 거에요.
애가 확실히 덜 긁어서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요."

"어머님, 다시 못박아 얘기합니다만
아이에게 개를 분리하지 않는 한
밑빠진 독에 물붓기밖에 안됩니다."

"그래도 주세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고
개는 꼭 분리시키세요.
먹는 약으로 절대 안 나을 거에요."

"......"

보호자가 문을 닫고 나가는 찰나
보호자의 불만스런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 진짜,
약만 좀 받으러 왔더니
의사가 무슨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ㅇ..."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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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자신이 사망에 이르겠고
모 종교인처럼 수혈을 거부하면 자신이 쇼크에 이르듯
성인은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책임을 지는 존재겠지만

소아청소년과만의 당연하면서도 독특한 점은
대상 환아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기에
치료든 피해든 그 결과는
의사와 독대하여 결정하는 보호자가 아닌
상황을 모르고 있는 아이가 받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기에 환아의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개념은
적시에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뿐 아닌
의사의 검사와 치료 계획에 순응하겠다는
보호자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아토피 아이에게 개털이 분명한 원인임에도
개를 분리시키지 못하겠다고
개를 분리하라는 저에게
불만스런 태도를 나타내는 엄마들은
이제 1년에 5-6명 이상 만날 수 있는
잦은 사례가 되었어요.

모 소아알레르기호흡기 교수님이 말씀하시더군요.
개털이 원인인 아토피 피부염 아이 보호자에게
10년 전에 개를 멀리하라 하면
90%가 바로 개를 분리시켰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개를 멀리하라 하면
90%가 납득하지 않고 결국 개와 같이 살더라

그 중 아토피 피부염이 호전된 환아는
당연히 한 명도 없더라 -

이런 유사한 사례는 아주 많습니다.

급성 폐색성 후두염으로
즉시 스테로이드 주사를 권했는데
스테로이드는 독약이라며 거부하고 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응급실에서 진탕 고생했던 아이

전혀 먹을 필요가 없는데도
보호자 본인이 책임지겠으니
단순 감기에도 무조건 항생제 달라 하여
결국 위막성 대장염으로 혈변이 조절 안되어
대학병원에 입원했던 아이

탈수가 심하여 왔는데
수액은 안맞고 장약만 받겠다
하루 종일 소변 못 보고 다음날
BUN/Cr (콩팥기능검사) 90/3.5로
급성 신부전으로 즉시 전원했던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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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兒童虐待)'
보호자를 포함한 18세 이상의 성인이
18세 미만인 사람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 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왜 가려운지도 모르고 밤새 긁는 아이
돌도 안된 아이가 진물이 가득하고
피부엔 상처가 한가득
그런 아이의 보호자가
분명한 원인과 원인을 해결하는 법
그것도 아주 쉬운 방법도 알고 있으면서
아이를 그 환경에 방치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뭘까요?

목이 타는 아이와 엄마를 우물가로 데려가
두레박으로 물을 떠서 입에 넣어주는 데도
엄마가 그 물을 아이 입에서 끄집어 내고 있다면
우리가 뭘 더 해줘야 할까요?

아무리 개가 중요해도
아이,
그것도 내 아이도 아니고
부모 당신이 낳은 아이라면
개와 비교 대상 자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좋은 부모란 아이에게
뭔가 거창한 것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
그 판단이 내 아이에게 해가 될지 득이 될지만 생각하면
되는 거에요.
평범하면서도 배려가 있는 부모 말이에요.

소아청소년과 최고의 비극은
의대생들의 낮은 지원율도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의 몰락도 아닌

이기적인 어른들의 방조로
피해는 죄없는 아이들이 본다는 것 -

이것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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