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학생들이 저를 좋아하는데 말이죠

저는, 사교육 강사예요.
학생 때 학원 알바로 시작해서 과외 쪽으로 풀리고
대치동에서 자리잡았고,
지쳐서 일 좀 줄였다가
다시 늘리려고 학원 쪽 일도 다시 하고 있어요.

오래 이 일 하면서 별별 에피소드가 많았죠 ㅎ
요즘 종종 올라오는 '학생들이 급속도로 변해 가서 너무 힘들다'는 글에 
근본적으로 깊게 공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예쁜 면이 있다! 는 게 변하지 않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 때, 82에 글을 남긴 적도 종종 있었어요.

근데 글을 몇 번 써 보니 드러나는 특징이 뭔지 아세요? ㅋㅋ
그 글이 여학생에 관한 글이면 그런 댓글이 안 달리는데
남학생이 등장하는 글이면, 꼭 누군가는
느낌이 어떻다, 선생이 학생을 좋아하는 것 같다, 는 요상한 관심법 댓글이 하나 둘은 달린다는 거예요.
(그럴 내용이 전혀 아님,
다른 댓글들은 다행히 정상적으로 글을 읽고 이해해서 이런 관심법 댓글에 낚이지 않고
어이없어함)

와... 그런 글 볼 때의 느낌은... 모욕적이다? 기가 찬다? 아니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인데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기에 이런 소릴 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저와 학생의 세대차, 연령 차를 말할 것도 없이 
그냥 학생은 학생이라서 예쁜 거고, 어리니까 양해가 가능한 거지,
저와 대등한 또래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자면
...음...
...
말을 맙시다 ㅋㅋ


아무튼, 그러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당.
아, 그 댓글러들이 아주 100퍼센트 눈먼 사람들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 눈먼 와중에도 글 속에 드러난 '상대에 대한 호의'만은 읽었다는 얘기인 것도 같으니까...
하고요.
어찌 되었건 저는 아이들을 예뻐하고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한 번 말하면 못 알아듣고 잘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징징대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십대들의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을
'그래도 너희가 잘 자라면 좋겠어'
'상처받지 않고 자라났으면 좋겠어'
'나중에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생각하니까
그런 '인간애(!) 어린' 마음이 행간에 묻어날 수도 있겠죠.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누군가의 (세상에 남녀만 존재한다는)흑백논리적 불순 필터에 걸리면 그런 식으로 해석되는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이해가 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얘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요즘, 여학생 여러 명을 팀 지도하고 있어요. 올해 처음 맡은 반이고, 고등학생들입니다.
저는 과목 때문인지 주로 남학생들을 지도해 왔는데, 이렇게 많은 여학생을 한꺼번에 맡은 건 처음이에요.
근데 뭐, 똑같아요. 아이들도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이들이 예뻐요.
...라고 쓰고 보니, 좀 다르기도 하네요. 여학생들은 확실히 좀더 적극적이고 섬세한 게 있는 것 같아요.
뭐 요즘 애들이 우리 때와 달리 표현을 잘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ㅎㅎ
종이로 하트와 학을 접어서 저에게 줘요.
저에게 가까운 자리를 맡으려고 잽싸게 들어와서 경쟁적으로 앉아요.
처음엔 낯가림도 좀 있었는데 요즘은
쉬는 시간이 되면 ㅋㅋ 정원의 3분의 2 정도 아이들이 의자를 끌고 저에게 스스스스... 다가옵니다.
자리잡고 앉아서 말 걸려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나 할 일 있는데...;;;;
 
- 선생님도 좋아하는 그룹 있으세요? 영화 뭐 좋아하세요? 
말해 주면 메모해요;;; 그거 찾아서 본다고.
- 선생님 ㅇㅇㅇ 보셨어요? 그거 꼭 보세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권해요.
책을 들고 와서 읽어보라고 빌려줘요.
귀엽지 않나요 ㅎㅎ

다른 팀 애들에게 뭐라고 소문을 냈는지
복도에서 만나면 다른 팀 애들이 인사를 해요. ㅋ 교환학생(???) 제도 없냐고 물어요.

만약 위의 상황에 남학생들이 등장했고 '학생들이 참 예뻐요'라고 썼으면 또 누군가가 헛소리 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저에겐 그 학생들이 누구든, 똑같아요,..
(사실 저도 인간이니, 그 중 정말 저만 보면 얼굴이 환해지는 아이가 좀더 예쁘고 
늘 뚱하니 있는 애가 그 정도로 예쁘진 않고 그런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티는 안 냅니다)
이 아이들이 저에게서 필요한 걸 다 얻으면, 자라나면
아주 금방 저를 떠날 거라는 것을 알고
그 때까지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얻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 똑같아요.

넓은 세계로 나아가서 고등학교 때 학원/과외쌤은 생각도 안 날 만큼
바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도 똑같아요.
세상의 비극적인 면에 되도록 덜 휘말렸으면 좋겠고
그 아이들의 삶에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저에게서 배운 것이 학업에도 도움이 되지만
살아가는 데 상식으로도,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ㅎ


자석에 철가루가 끌리듯이 의자를 끌고 스스스스... 오는 아이들을 생각하다가
써 봤어요.
헤어지는 날까지 잘 지내고,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또 82에 쓸 수도 있겠죠.
그 땐 헛소리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덧.
애들은 절 왜 좋아할까요 ㅋㅋㅋㅋ 하 이놈의 인기
재밌는 건 말이죠,
좋아는 하는데 편하게 여기지는 않는다는 게 너무나 잘 느껴져요. ㅎ 
저 깐깐하거든요 ㅋ 그걸 또 알기는 아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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