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외박한 날.
2층에 가게랑 아빠 방이 있었고
3층 옥상에 내 방이 있었음
우리집 입구는 길가에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바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었음
계단을 올라오면 2층 끝에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2층에 있는 가게문을 열면 그게 우리집임
가게라고는 하지만 손님도 없고 매출도 없고
그저 아빠랑 아빠 친구들이 종일 도박하면서 노는 곳임.
아주 어린 유아기 시절부터 반복되었던 일상이라
그게 나쁜 환경인 것도 모르고 그냥 자랐음.
그날은 아빠가 어디를 가서 외박하는 날이었음.
어릴 때부터 잠을 잘 자지 못했던 나는
그날 밤도 늦게까지, 새벽까지 티비 보고 있었음.
그런데 갑자기 3층으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음
티비 소리 줄이고 귀를 기울여 들었는데 잘못 들은 게 아님
분명히 3층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였고
나는 방문 뒤에 숨어있었음.
발자국 소리가 3층 옥상 마당을 지나고
내 방 앞에 있는 나무 마루를 올라와서
내 방 문 앞에서 멈췄음
누구냐고 소리를 빽 질렀더니 후다닥 도망가는 발소리가 들렸음.
3층 창문 밖으로 지켜봤음. 우리집에서 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집에 매일 놀러오는 앞집 미용실 아저씨였음
술에 취했는지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라.
무서워서 2층에 있는 아빠방에서 자기로 함.
무서워서 2층 문을 잠금. (문을 안 잠그고 잤었음)
잠글 수 있는 건 새끼손가락 보다 얇고 작은 걸쇠 한 개가 끝이라서
플라스틱 노끈이라고 하나? 아무튼 그걸로 문 손잡이랑
벽에 있는 고리랑 칭칭 감았음
밖에서 못 열 거라고 생각하고 티비 보는데
또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나서 슬그머니 나가 봄.
어떤 남자가 문 밖에서 라이터로
내가 감아둔 노끈을 지지고 있었음
누구냐고 소리를 빽 지르니까
엄청 당황해서 발걸음이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더니
잠시후에 "삼촌이야~ 화장실 가려고 들렀다"고 하면서
화장실 가는 발소리. 화장실 문 여는 소리 나고
잠시후 계단 내려가는 소리 남.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인가부터 보았던
삼촌이라고 부르던 사람이었음
아빠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말했더니
(아빠가 나가면서 전화번호는 남겨줬음.
어려서 어딘 줄 몰랐는데 아마 호텔이었을 것 같음)
1층 문을 잠그라고 했음.
그제서야 1층에 내려가서 문을 잠갔음
문 잠그는 것도 모르고 살던 나.
그럴 생각도 못 하고 살던, 멍청하고 세상 무서운 걸 몰랐던 나.
1층 문 잠그라고 했던 아빠.
그런 나쁜 생각도 못하고 살던 우리 부녀.
서운하고 원망도 모르고 살던, 착하고 멍청했던 젊었던 나
마흔 중반이 된 지금은 서운한 게 많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대부분 이런 범죄는 면식범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딸 가진 분들. 항상 어디에서나 주의하시고, 조심하시고
딸한테도 항상 주의시키고, 조심시키세요.
우리 모두 안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