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타인은 공감하기 어려울,
저 자신만의 약소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초딩시절 전학을 가서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집은 어느 정도 살았지만 부모님은 엄격하기 그지 없어 친구들과 잘 놀지 못하게 한 데다
집이 멀어서 한번도 친구들과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고
집에 놀러 갈 수도 없었고
우리 집에 오라고 할 수도 없었죠.
공부는 잘 하는 편이었지만
친구를 깊게 사귈 수가 없었고
항상 겉도는 느낌으로 학교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제 생일에는 엄마가 친구를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겨울 방학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혹시 부른다고 해도 멀어서
아무도 올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반 친구들 몇 명이 일요일에 학교 앞에서 만나서 놀자는 얘기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너무 너무 기대 되고 흥분되어 거기에 꼭 가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집에서 허락을 받는 게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었어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저희 아빠는 너무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라
나가서 자고 오고 놀고 하는 것을 한번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존심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애걸복걸 이번만 보내 달라, 다시는 이런 부탁 안 하겠다
제발 이번만 보내 주시면 정말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
울며 불며 겨우겨우 허락을 얻게 되었어요.
너무 기쁜 나머지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약속 장소였던 학교 정문 앞으로 달려갔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어요.
삼십 분, 한 시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아마 한 친구 전화번호가 있었던지
그 애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너무나 여상하게
너 나갔냐? 나는 안 갔는데, 다른 애들도 안 나왔냐?
뭐 그랬던 것 같아요.
걔가 사과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미안해 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어요.
내가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엄청난 노력을 해서
겨우겨우 만나러 왔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은 것이 믿기지 않았어요.
자기가 뱉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그게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도 너무 충격이었죠.
걔들에게 일요일에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었을 텐데
저는 아니었던 거죠.
다음 날 학교에 가서도 말도 못 했던 것 같아요.
너무 상처 받고 힘들고 괴롭고
집에 가서도 애들 못 만났다는 말도 못 했던 것 같아요.
자존심도 상하고
지금 이 나이 되도록
그 장면이 떠오르면 눈물이 나요.
생각해 보면
그 또래 아이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저에게는 트라우마처럼
한번씩 생각나며 여전히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걔들에게 놀이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었을 것이고
저와는 다른 입장이었을 거라는 것도 알지만
그때 받은 충격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어요.
이런 얘기를 선뜻 하기 쉽지 않아서
아는 분께
아주 줄여서 지나가듯 한 번 해 본 게 다인데
한번씩 떠오르면 울컥하고
서러움이 치밀어오릅니다.
부끄럽지만
이 글로라도
아직도 자라지 않은 상처 받은 내면의 아이를 드러내며
잘 안아 주고 싶어요.
"왜 그랬니? 애들아.
나는 그때 내 목숨을 거는 심정으로
무서운 아빠에게 허락을 받아 그 자리에 간 거였어.
좀 나와주지 그랬어.
단 한 명이라도.
나는 그때 너무 힘들었어.
아무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너무 상처 받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너덜너덜해졌었지.
지금껏 극복하지 못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
내 마음은 그렇게 많이 아팠었단다.
너무 너희가 미웠고, 원망스러웠어."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아무 것도 생각 안 나는 애들이에요.
그때 제가 너무 외로워서
그토록 친구가 고팠던가 봅니다.
트라우마라고 이름 붙이기도 웃기는 거지만
이젠 털어버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