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5 쯤... 격렬한 육탄전 끝에 한 이혼을, 나도 누구보다도 바랐다.
문제 덩어리를 떼내 버리고 평화를 가지고 싶은 그런 마음뿐이었다.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우릴 버리면 어떡하나 싶었다.
귀가하면 빨랫줄의 빨래가 아직 축축한지 만져보며
엄마가 빨래할 정신이면 아직 집나간건 아닐거라고 오늘의 평안에 안도하기도 했다.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 미웠고
아빠가 별 말 없이 떠난 이후에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았다.
어차피 이혼 전에도 몇 년 간 별거했었으니까 보이는 생활에는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속까지 아무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름날 뒷덜미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머리카락처럼
성가시게 내 마음에 엮여있는 미움, 두려움, 불안함을 어찌할 길이 없었다.
아빠가 좋지도 않았지만 아빠 흉을 엄마에게 볼 수도 없었다.
더 길게 아빠 욕의 홍수로 돌아올 것 같아서 같았고
거기에 나에 대한 위로는 1/100 근도 섞여 있지 않을 것이 뻔했다.
엄마는 자기 삶을 살아가기에도 분주해 보여서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이혼 후에는 더더더 우리 눈을 맞추지 않았다.
우리를 확연히 더 성가셔했다.
마치 양육권을 가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것 같았다.
우리 남매는 자전 축을 잃어버린 지구처럼 우주의 쓸모없는 행성이 되어갔다.
어느 혼자있는 날에는 알루미늄 세숫대야에 아빠 사진을 놓고 불을 붙였다.
바로 2-3초 후 일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비닐 장판을 동그랗게 태워먹고 겨우 불을 껐다.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불태우고 싶었다.
불이 타올라 아빠를 태우는 순간에는 왠지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이혼 후 가끔 오는 아빠 전화가 그렇게 어색했다.
이미 끈을 잃어버린 우리 사이에
까만 허공을 사이에 두고 더는 대화할 것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괜히 학교 성적을 묻는 질문에
무난하게 '중간쯤 한다'고 얼버무리며 얼른 끊기기만 간절히 바랐다.
얋은 전화선으로는 아빠의 애정 같은게 하나도 전해지지 않아서
왜 구태여 전화를 해서 우리의 어색함을 상호 확인하는지 의아했다.
자다가 눈을 뜨면 엄마가 없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엄마는 내가 몇 등을 하는지,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아무 관심이 없어보였다.
하나 있는 오빠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은 더 고역이었다.
피떡이 될때까지 나를 두들겨 패기도 했고,
일부러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스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잘때는 꼭 껴안게 해달라고 하며 내 배에 손을 넣고 손바닥으로 쓸었다.
나도 악이 받쳐서 욕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살면 살수록 더 모르겠다.
피를 나눴다고 남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 가족은 벗어날 수 없는 형틀 같았다.
죄목도 모르면서 죽을 만큼 아팠다.
어느 날 깜깜한 저녁 가겟방에 뭔가 사러 나가는 길이었는데
문밖에서 서성이던 아빠가 시커먼 그림자를 입고 '**야' 하며 다가왔다
반갑지 않은 놀라움에 일부러 '누구세요?' 하면서
냅다 뛰어 도망쳤다.
아빠에게도 아픈 기억이겠지만
그 순간 아빠를 받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없어서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길 택했던 내 자신이
나도 비겁하고 비정해서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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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쓰다보니 지쳐서 오늘은 여기까지..
사실은 이혼 후 자녀 결혼 과정까지 쓰려고 했는데..
결혼할 때 정말 그 번거로움과 번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