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신 동네에서 평생을 사셨고 직업은 농부셨어요
제가 막내며느리인데 결혼하고 시댁에 가보니 시아버님이
70대이신데 현직에 계시는거죠 자식들이 40대 50대인데
돌아가실때까지 쌀 과일 채소 김치를 끝없이 보내주셨어요
쌀이 떨어지기 전에 항상 다음 쌀을 보내 주셔서 집에 쌀이
떨어진 적이 없어요 저는 55세에 정년퇴직하고 집에만 계시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보았는지라 그 연세에 일을 하시는
시아버님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저희집에 오시면 아파트
갑갑해서 못 있겠다고 식사 한끼 드시면 바로 터미널 태워
달라하셔서 버스 타고 집에 가셨어요
자식들 집 사거나 큰일 있으면 꼭 얼마간 돈 보태주시고
자식한테는 일절 아무것도 안 받으셨어요
오토바이타고 다니셨는데 제가 결혼하고 얼마안돼서
아버님 옷이 좋은게 없다 싶어서 오리털패딩을 사드렸는데
한번 활짝 웃으시며 이 옷을 입으면 오토바이를 타도
몸에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참 좋다 하셨어요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셔서 어디에 계시든 그 시간에는
들어와 사랑방에 혼자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계세요
아버님 돌아가시고는 전국노래자랑 볼때마다 아버님 생각이
나요 그 방 어딘가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계실것 같아요
커피믹스를 좋아하셔서 꼭 한잔 드시고
며느리들 와 있으면 커피 드실때 며느리들한테 타주기도 하셨어요
우리말대잔치를 좋아하셔서 항상 저에게 나가보라고
권하셨어요 도전골든벨도 좋아하셔서 제 아이 크면 내보내라고
하셨어요 투석받다가 암 전이로 돌아가셨는데
마지막은 저희집에 와 계셨고 저는 왠지 아버님 돌아가시는거
볼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몇번이나 인사하라고 의사선생님이
말해서 지방에서 자식들 다 와서 인사하고 가고 했는데
마지막날 어머님하고 저하고 아버님 임종을 봤어요
사람이 그렇게 울 수 있는지 병원복도를 울리던 제 울음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버님때문에 농부라는 직업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아버님은 국졸이셨어요 배운 것도 물려받은 것도 가진 것도 없이
평생 성실하게 삶을 일구고 자식과 가족을 돌보고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고 가꾸다가 떠나셨어요
그리고 저는 사랑도 많이 받았어요 부족해서 아버님 힘드실때
잘 해드리지 못했어요 그날 복도를 울리던 제 울음소리는
반성과 후회 죄책감의 눈물이었어요